호르스트-귄터 폰 파송

덤프버전 : (♥ 0)

파일:Horst-Günther von Fassong.jpg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Horst-Günther von Fassong : 1919년 4월 1일~1945년 1월 1일)
1. 개요
2. 생애
3. 서훈



1. 개요[편집]


독일의 전투기 조종사.


2. 생애[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루프트바페에 종군하면서 136기를 격추한 수퍼 에이스 파일럿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19년 4월 1일에 공업 도시 카셀에서 태어났다. 성장 후 독일 공군에 입대한 파송은 엄격한 파일럿 훈련을 통과한 다음 제51전투항공단(JG 51) 제3비행중대의 편대원으로 배속되었다.

귄터 폰 파송의 첫 격추는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다. 1941년 7월 3일에 벨라루시 지방의 라하초우(Рагачоў) 상공에서 조우한 I-16 전투기가 그의 첫 공인 격추 1호였다. 그전부터 전투에 여러 번 참가했던 파송은 몇 번의 격추를 주장했으나, 그것들은 인정을 받지 못하여 이것이 기록상으로는 파송의 첫 전과가 되었다.

7월 13일에는 MiG-3를 격추한 후 제10중대장이 되면서 소속 중대를 옮겼다. 1944년 초에는 항공단을 옮겨 본토 방공 임무를 하고있던 제11전투항공단(JG 11) 예하의 제7비행중대에 배속되었다. 5월 28일에 B-17을 격추한 파송은 JG 11/제III비행단장이라는 지휘관 보직에 임명되었다. 7월 15일에 Il-2mH를 격추시킨 그는 7월 27일에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5년 1월 1일,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 대위는 독일 공군의 모든 것을 털어넣은 대공세인 보덴플라테 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출격이 되는 이 임무에서 네덜란드 동남부의 마스트리히트(Maastricht)로 날아가 연합군 비행장을 기습했다. 파송의 슈밤 편대에서 편대장인 그에게는 윙맨으로 아르민 메흘링(Armin Mehling : 1924~2008) 상병이 함께 날고 있었는데, 그는 중대장이 타고 있던 Fw190A-8(Werknummer 682 792) 전투기가 상공에서 덮쳐 내려온 2대의 P-47 썬더볼트에게 격추되었다고 보고했다. 귄터 폰 파송의 기체를 6대의 P-47이 급습했을 때, 그들의 슈밤은 지상 목표물에게 기총소사를 가하느라 아주 낮은 고도인 15~20미터까지 내려와 비행하고 있었던 탓에 제아무리 뛰어난 에이스인 귄터 폰 파송이었더라도 피할 길이 없었다.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이 타고 있던 Fw190A-8는 2기의 중전투기에서 뿜어내는 16정의 중기관총 세례가 만들어낸 화망에 포착되면서 순식간에 밝고 큰 불덩어리로 화해버렸다. 그의 기체는 곧바로 추락하면서 지면에서 또 한번 폭발을 일으켰고, 그와 같은 추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귄터 폰 파송은 전사할 때까지 136대를 격추했는데, 그 중에서 90기는 동부전선에서 잡은 것이고, 4발 중폭격기 4대를 포함하여 46대는 서부전선에서 격추한 것이었다.


3. 서훈[편집]


2급 / 1급 철십자 훈장
공군 명예컵 (1943년 9월 20일)
독일 황금십자장
기사철십자 훈장 (1944년 7월 27일) : 대위 진급과 함께 제11전투항공단 제III비행단장 임명

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펼치기 · 접기 ]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6 16:12:57에 나무위키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