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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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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마단 이란1.jpg
파일:이란 하마단 1.jpg
유럽풍으로 지어진 옛 기차역
1. 개요[편집]
페르시아어: همدان
영어: Hamadan, Hamedan
이란 하마단 주의 주도. 인구는 2019년 기준 783,300명이다. 과거 메디아의 수도로 시작된 고대 도시 엑바타나가 있던 곳이며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과거부터 계속 번영을 누려왔고, 현대 이란 내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지방도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해발 1850m의 높은 고원 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수도인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약 360km정도 떨어져 있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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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기원전 1100년경 아시리아의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 시기의 쐐기 문자 토판에서도 언급되나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것은 기원전 7세기 메디아가 수도를 삼으면서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역사는 엑바타나 문서 참조.
2.1. 중세[편집]
파일:이란 알라비.jpg
12세기 셀주크 제국기에 세워진 곤바드 에 알라비아 (수피 영묘)
고대 이후에는 633년 나하반드 전투가 벌어져 하마단은 이슬람 아랍인들의 세력에 넘어갔다. 이슬람 도래 이후 지방 세력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하마단은 잠시나마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될 정도로 중서부 이란의 주요 도시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다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파괴되었고 그 이후 티무르의 침입 때 완전히 파괴 당했으나 사파비 제국 때 재건되어 번영을 누렸다. 18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에게 항복하여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나디르 샤의 활약으로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란에 반환되었다.
2.2. 근현대[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러시아군과 오스만-독일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영국군이 도시를 잠시 점령했다가 1918년 전쟁이 끝날 때 이란에 반환되었다.
3. 기후[편집]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대체로 습윤 대륙성 기후를 띈다. 겨울에는 눈까지 내리며 이란에서 가장 기온이 낮은 곳으로 꼽힌다. 시원하다는 특징 때문에 고대에도 페르시아 시절부터 여름 수도로 종종 기능했다.
4. 여담[편집]
엑바타나-하마단은 나무위키에서 동아시아 밖에서 역사 시대의 도시와 현대 도시 문서가 분리되어 서술된 몇 안되는 경우(니네베-모술, 카르타고-튀니스 등)에 속한다.
5. 갤러리[편집]
파일:하마단 이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