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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군 박여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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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784년에 황해도 평산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2. 상세[편집]
1784년, 황해도 평산군에 꽤 행세하던 조씨 일가가 살았는데, 조씨 집안에 갓 시집온 새댁 박씨가 갑자기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조씨 집안에서는 박씨가 뚜렷한 이유 없이 죽었는데도 관아에 신고하지 않고 서둘러 장례를 치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씨의 친정에서는, 박씨의 죽음이 의심스러워서 신고했다. 그때 당시 평산 군수 였던 정경중은 검시를 했으나 자살로 판정했다. 그러나 칼[1]
참고로 뽕잎을 써는 칼이다.
이 칼자국이 재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발견이 되는데, 자기 목을 여러 번 찌를 수는 없기에 이 추가로 발견된 칼자국이 자살 결론을 뒤집는 단서가 되었다.
엄사만은 박여인 사건의 검안을 다시 조사한 결과 몇가지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우선 당시의 초검관 정경증과 복검관 이서회가 피의자 집안의 먼 친척뻘이 되어 검시를 맡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검시를 맡았다는 것이었으며 초검관인 정경증은 시신의 가족에게 반드시 주게 되어있는 시장을 박장혁에게 넘겨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사건처리에 하자가 있었다고 생각한 엄사만은 적극적인 재수사를 형조에 요청하였고, 그 결과 암행어사 이곤수가 사건 현장인 평산에 파견되었다. 결국 어사 이곤수는 사건을 재수사한 끝에, 연약한 아녀자가 통증을 이겨가며 자기 목을 3번이나 찌르기 어렵다는 점, 초검에서 보였던 목의 줄 상처가 복검에선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타살로 판정하고 결국 피의자들의 자백을 받아 내었는데…
2.1. 사건의 전말[편집]
이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시어머니 최씨가 친척 조카뻘 되는 조광진과 눈이 맞아 간통을 하였는데, 두 사람은 박여인에게 간통사실을 들키자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해 그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집 안 사람을 다 내보내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둘만 있게 된 어느 날, 조광진과 최씨는 몸이 아파 누워있는 박여인의 목을 조르고 다시 세 차례 칼로 찔러 살해한 후 자살을 가장해 대들보에 목을 매어놓은 것이었다.
3. 둘러보기[편집]
[1] 참고로 뽕잎을 써는 칼이다.[2] 이 칼자국이 재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발견이 되는데, 자기 목을 여러 번 찌를 수는 없기에 이 추가로 발견된 칼자국이 자살 결론을 뒤집는 단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