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의 유적발굴지는 을씨년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에 쓰였는지 모를 오래된 그릇 조각들이나 뼛조각 따위가 굴러다니는 장소이니 말이다. 그런 장소를 야음을 틈타 침입하는 그림자가 셋 있었다. 선두에 선 것은 재건축 조합장이요,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입주 예정자들이었다. 입주 예정자 중 한 명이 연신 불안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거 이렇게 멋대로 들어와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리요? 오늘밤 이것들을 죄다 치워버리기로 하지 않았소?" "무, 물론 그랬지만.." "반 년이오, 반 년. 지난 반 년 동안 이놈의 유적지인지 뭔지가 발굴되는 바람에 공사가 싹 중단되지 않았냐 말이오? 더군다나 땅을 이렇게 여기 찔끔 저기 찔끔 파놓을 뿐, 도대체 발굴작업이 끝날 생각이 없지 않소?" "조합장님 말씀이 맞아. 기약 없이 기다리라는 건 너무하잖은가?" 공사 중 유물이 출토된 덕분에 본의 아니게 삶의 터전을 내놓게 된 이들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자 유적지를 없애 버리기 위해 침입한 것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결심을 굳힌 뒤 각자 곡괭이와 삽 등을 집어 들었다. "에이, 재수없게. 왜 집터 아래에 뼈 같은 게 튀어나온담?" 한창 유적지를 파헤치던 중 곡괭이가 박혀 잘 빠지지 않았다. 무언가 끝에 걸린 것이다. 간신히 양손으로 파헤치고 보니 무언가 기분 나쁜 게 박혀 있었다. 뼛조각인가? 그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을 멀리 던졌다. 『터-억』 그런데 그걸 낚아채 받아 드는 존재가 있는 게 아닌가? 세 사람은 자신들 이외에 인영이 갑작스레 나타나자 깜짝 놀라 손에 든 것을 높이 치켜들었다. "웨, 웬 놈이냐?" "이건.. 아르르망과 쌍을 이루는 하학부로군." 그는 세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받아낸 오래된 뼛조각을 소중하게 갈무리해 안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곤 곧이어 흉흉한 눈길로 세 사람을 쏘아보았다. "유적이 부른다! 유물이 부른다! 그 가치를 모르는 훼손범들을 벌하라 울부짖는다! 들어라, 악인들아! 나는 분노의 전사! 길티 그린!!" 녹색의 오라가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의 실루엣에 뿔과 꼬리 같은 것이 겹쳐 보이기 시작하자 세 사람은 사색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내는 사납게 미소지었다. "취미로 고고학을 하는 마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