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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라오스 국경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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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1907년 라오스가 프랑스 식민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고있던 시절에 프랑스의 측량사가 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1] 의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국경 근처에 있던 3개의 마을의 소유권을 불분명했지만 프랑스 지도 제작자들은 이걸 무시하고 지도를 제작했다. 이 때문에 라오스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게되었을때 태국과 라오스는 국경 분쟁을 벌이게 되었다.
1984년 태국군과 라오스군 사이에 작은 총격전이 발생했다. 그런데 1987년 태국군이 기습적으로 마을을 점령하고 태국 국기를 게양했다. 라오스는 국경 근처에 있던 마을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태국에 항의했다. 태국 또한 그 마을들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자, 라오스군은 마을의 태국 수비대를 야습했다. 라오스군은 태국군들을 몰아내고 마을을 점령하며, 게양된 태국 국기를 라오스 국기로 교체했다. 휴전이 선언될때까지 양국의 격렬한 전투는 계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을 포함한 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에 군대를 지원하며, 냉전으로 확대되었다.
태국과 라오스는 휴전을 맺었으며,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국-라오스 공동 국경 위원회를 설치했다. 국경 획정은 현재 진행 중이다.
1. 배경[편집]
1907년 라오스가 프랑스 식민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고있던 시절에 프랑스의 측량사가 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1] 의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국경 근처에 있던 3개의 마을의 소유권을 불분명했지만 프랑스 지도 제작자들은 이걸 무시하고 지도를 제작했다. 이 때문에 라오스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게되었을때 태국과 라오스는 국경 분쟁을 벌이게 되었다.
2. 전개[편집]
1984년 태국군과 라오스군 사이에 작은 총격전이 발생했다. 그런데 1987년 태국군이 기습적으로 마을을 점령하고 태국 국기를 게양했다. 라오스는 국경 근처에 있던 마을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태국에 항의했다. 태국 또한 그 마을들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자, 라오스군은 마을의 태국 수비대를 야습했다. 라오스군은 태국군들을 몰아내고 마을을 점령하며, 게양된 태국 국기를 라오스 국기로 교체했다. 휴전이 선언될때까지 양국의 격렬한 전투는 계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을 포함한 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에 군대를 지원하며, 냉전으로 확대되었다.
3. 결과[편집]
태국과 라오스는 휴전을 맺었으며,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국-라오스 공동 국경 위원회를 설치했다. 국경 획정은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