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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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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제성(액셀 월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황거(皇居, 고쿄)는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중심에 있는 궁궐로, 일본 천황과 황후의 거처이다. 황거의 총관리는 궁내청이, 보안은 경찰청에 속한 황궁경찰본부(皇宮警察本部)가 맡고, 의료는 궁내청 병원에서 전속 담당한다.
2. 명칭[편집]
황거(皇居)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8년에 붙여진 호칭으로, 본래는 에도 성이 있던 곳이었다. 영어명은 The Imperial Palace. 가끔씩 별칭으로는 Black House라고도 불린다.[1]
황거 이외에도 여러 호칭이 있다. 내리(內裏)·어소(御所)·대내(大內)·구중(九重)·궁중(宮中)·금중(禁中)·금리(禁裏)·황궁(皇宮)·황성(皇城)·궁성(宮城)처럼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호칭도 있고, 대내산(大內山)·백부(百敷)·자지정(紫之庭)·봉동(蓬が洞)·대궁(大宮)·운지상(雲之上)·운거(雲居)와 같은 일본 고유의 명칭도 있다.
황거에서 천황이 주거하는 곳을 고쇼(御所, 어소)라고 부른다. 각종 공식행사와 정무를 보는 궁전과 궁내청사 등도 황거에 있다.
3.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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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있는 현재 황거는 본래 에도 막부의 에도 성이었다.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1868년에 메이지 덴노가 천황의 기존 거처였던 교토고쇼를 떠나 새로이 에도 성에 머무르면서 에도 성은 도케이 성(東京城)으로 이름이 바뀌고 도쿄의 궁전이 되었다. 이듬해인 1869년 메이지 덴노의 두 번째 도쿄 행차 때 천황이 앞으로 도쿄에서 체류할 것을 발표하면서 도케이 성은 황성(皇城)이 되었다.
메이지 덴노는 옛 에도 성의 니시노마루 어전(西ノ丸御殿)을 궁전으로 삼았다. 1873년 니시노마루 어전이 화재로 소실되자, 옛 기슈 번 저택 자리였던 아오야마 어소(현재 아카사카 이궁)가 임시 황거로 되었다. 1879년 니시노마루의 궁전 신축이 결정되었고, 1888년 메이지 궁전(明治宮殿)이 완공되면서 같은 해에 황성 역시 궁성(宮城)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24년 김지섭 의사의 니주바시 의거와 1932년 이봉창 의사가 도쿄 경시청에서 쇼와 덴노에게 폭탄을 투척한 사쿠라다몬 의거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후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5월 미합중국 육군&의 공습으로 메이지 궁전이 소실되었다. 1948년 궁성이라는 명칭이 폐지되면서 그 뒤로는 현재의 명칭인 황거(皇居)로 불리고 있다. 소실된 메이지 궁전터에는 1968년에 현재의 신궁전이 세워졌다. 소실 이전 메이지 궁전은 비교적 화려한 편이었지만 신축된 궁전은 깔끔한 현대식이다.
4. 일반참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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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설[편집]
5.1. 궁전[편집]
5.2. 어소[편집]
5.3. 동어원[편집]
구 에도 성 혼마루와 니노마루, 산노마루 구역으로, 천수대(天守台)와 대번소(大番所), 동심번소(同心番所)등 구 에도 성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는 구역이다. 황거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1960년 1월 29일에 결정된 각의에 근거, 구 에도 성 유지를 정원으로 정비해 1968년 9월에 완성했다. 일반 개방은 같은 해 10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5.4. 궁내청[편집]
5.5. 황궁경찰[편집]
5.6. 궁중삼전[편집]
궁중삼전(宮中三殿)이란 천황가 전용의 신사 겸 종묘라고 할 수 있는 시설이다. 우리나라의 종묘 및 중국의 9단8묘에 대응한다. 좁은 의미에서 '궁중삼전'이라고 하면 현소᛫황령전᛫신전 등 3개 건물만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세 건물에 부속된 보조전각들도 포함한다. 당연히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는다.
5.7. 어부(御府)[편집]
후키아게 어원 궁중삼전 권역 남쪽에 위치한 황실 창고 5개동을 뜻하는 단어로, 일본 제국시기에 벌어진 전쟁의 승전 기념품 등을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시설이었다. 그래서인지 황거 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설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아예 공개는커녕 언급도 잘 되지 않는다. 현재 5개동 중 회원부(懐遠府)는 아예 해체되어 동어원 내 니노마루 정원으로 이축되어 스와의 다옥이 되었고, 나머지 건물들은 위성지도로 존재 자체는 확인되지만 제대로 관리받는지는 불명이다.[8] 패전 후 전시되던 각국으로부터의 전리품은 거의 다 해당국에 반환되었으며 일본군이 쓰던 무기 등도 관계기관 및 대학 등에 양도된 상태로 본래의 전시, 수장기능은 사라졌다.
다만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뤼순에서 가져온 홍려정비(鴻臚井碑)라는 석각이 있는데, 이는 발해의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고 돌아오던 당의 사신이 돌아오던 길에 우물을 파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바위에 내역을 새긴 것으로, 발해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된다. 그런데 크기 때문인지 이것은 반환이 되지 않았고 또 공개도 되지 않고 있어 중국에서는 반환을 요구하고, 일본 내 학자들도 공개를 요구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를 꾸준히 관리하고 공개한다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 및 재무장 등과도 연결된다. 자칫했다가는 주변국과 외교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천황은 물론 궁내청에서도 언급하기를 꺼리는 곳이다. 현재 황거 내부에서 가장 베일에 쌓인 구역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래서인지 일본의 역덕들에게 의외로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5.8. 기타[편집]
6. 관광[편집]
일반인의 경우 동어원(東御苑) 구역은 자유롭게(월,금, 연말연시 제외) 출입이 가능하나, 그 외에 참관이 허가된 구역은 일본 황실을 관리하는 부서인 궁내청에 사전에 신청하여 허가를 받아야만 단체 가이드 투어로 둘러볼 수 있다. 굳이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선착순 3백 명까지 투어에 참가할 수 있다.[11] 물론 이 경우도 모든 구역이 참관 가능한 것은 아니고 장화전 외관과 궁내청 청사 등 일부 구역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에 한정되며, 정전과 어소, 궁중삼전과 후키아게 어원은 관람이 불가능하다. 요금은 무료이며 한국어 가이드도 있다. 궁내청 참관 안내 사이트
대개 도쿄도 여행에서 한 번쯤은 들르는 장소이며, 다른 여행 코스와 묶어서 둘러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궁궐 구경이라고 기대하고 갔다가 정말 외관만 돌아오는 것인데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지금 볼 수 있는 곳들 중 오래된 부분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았던 일반적 관광객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꽤 많다. 특히 여름에는 땡볕을 휴식시간도 없이 걸어다니니... 역덕들에게는 좋은 기회기만 일반적 관광객에게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 곳이다. 히가시교엔 기준으로 JR 도쿄역에서 도보로 10분, 도쿄메트로 오테마치역에서 도보 5분, 타케바시역에서 도보 5분 가량 소요된다. 황거 자체가 부지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그 외에도 다양한 광역전철 및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도쿄역과 국회의사당, 야스쿠니 신사, 일본 무도관과 가까우며, 북서쪽 해자인 치도리가후치는 벚꽃 명소이다.
7. 기타[편집]
- 일본국 헌법상의 천황은 국가원수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냥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만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 안팎에서도 실질적으로는 천황을 영국처럼 실권만 없는 국가원수로 예우하기 때문에 외국의 국가원수들이 일본을 방문하면 총리를 만난 뒤 제일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한다. 이때 그들의 경호를 위해서 황거 관람은 당연하고 황거 앞 2블럭(황거 앞은 고급 호텔이 밀집해 있음)까지 경찰이 차량 통행 및 사람 보행을 엄격히 통제한다. 이 교통 통제는 외국의 국가원수가 탄 차량이 통과하면 풀리지만 그래도 황거는 여전히 통제 상태를 유지한다.
- 국회 보고 정보 <헤이세이 15년(2003년) 국유재산 증감 및 총계산서>라는 문서에 따르면, 국유 재산으로써의 황거의 가치는 2188억 1000만 엔이라고 한다.[12]
- 황거의 위치 자체가 도쿄의 중앙부이자 녹지대이기 때문에 황거의 해자 주변은 달리기 코스로 인기 있다. 황거를 방문하면 꼭 한 번쯤은 그 주변을 달리며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 일명 황거 러너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
- 황거 와다쿠라 방면에서 직선으로 600 m 정도 거리에 도쿄역이 있는 데 천황 내외가 지방 공무로 도쿄역을 이용할 때 여기에서 차량을 타고 도쿄역 내 천황 전용 건물까지 이동하게 된다고 한다.
- 황거 및 아카사카 어소에는 궁내청 직원들 이외에도 주변 환경 미화를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천황 부부는 이들이 모인 곳을 친히 찾아와 감사인사를 하며, 황궁 차원에서도 자원봉사자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준다고 한다.
- 2021년 나루히토 일가가 어소로 이전하기 1주일 전에 임시로 이 궁전의 일부를 개수하여 거차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궁전 내에는 샤워시설이나 식당 등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도쿄의 뒷문이 황거의 깊숙한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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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악관이 White House라고 불리고, 청와대가 Blue House, 중난하이가 Red House라고 불리듯이 색깔 별 별칭이다.[참고] 위 지도에서 기타노마루 공원과 황거 외원은 에도 성의 권역은 맞으나 황거 권역은 아니다. 일본 경찰법 제 29조에 따르면 황거 및 어소 일원은 황궁경찰본부가 담당하도록 하지만 해당 지역은 경시청이 관리하고, 궁내청이 제공하는 황거 안내도에도 저 두 권역은 제외되었다.[2] 봉행 등에 소속된 에도 막부의 하급관리[3]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손녀이며, 이방자 비의 이종사촌 여동생[4]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녀이자, 방계 황족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외손녀.[5] 한국 역덕들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일본이 한국에서 약탈한 역사 서적들을 바로 이곳(서릉부)에 몰래 숨겨두고 공개하지 않는다.'는 음모론으로 소소하게 알려지기도 했다.[6]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7] みこし. 신을 모신 가마로, 마쓰리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8] 위성지도를 보면 건물 출입부에 잔디가 잔뜩 자라고 나무도 우거져서 진천부와 현충부는 지붕만 약간 보이는 수준이다. 유광정은 아예 위성사진으로 확인조차 되지 않으며, 그나마 잘 보이는 건안부와 준명부도 지붕에 풀이 잔뜩 자랐다. 이로 보아 사실상 이 어부 권역 건물군은 그냥 버려져서 방치된 모양이다.[9] 양잠(養蠶), 즉 누에치기의 신이다. 보통은 중국 신화 속 황제(黃帝)의 아내인 서릉씨(西陵氏) 누조(嫘祖)가 처음으로 누에로부터 비단을 만들었다 하여 잠신으로 여겼다.[10]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1393년에 창건된 정토종 사찰이다. 1590년에 도쿠가와 쇼군가의 보리사(菩提寺: 집안 조상들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되었고, 1598년 현 위치로 이전하여 이후로 크게 번창했다.[11] 다만 휴일이나 연말연시에는 금방 마감되니 인터넷 예약을 권한다.[12] 한화로 약 2조 2154억 7300만 원이다. 캘리포니아 주 전체 부동산 가격과 맞먹었다. 혹은 캐나다 전체 부동산 가격과 맞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