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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10세 구스타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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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웨덴 팔츠츠바이브뤼켄 왕조의 초대 국왕.
2. 생애[편집]
팔츠츠바이브뤼켄클레부르크[1] 궁정백 요한 카지미르와 스웨덴의 카타리나 공주의 아들로, 칼 9세의 외손자이자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외조카였다.
어린 시절 스웨덴 왕실에서 외사촌인 크리스티나 여왕과 함께 자랐으며,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휘하 장수 렌나르트 토르스텐손(Lennart Torstensson 1603~1651)으로부터 군사 교육을 받았다. 30년 전쟁 후반부에 스웨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654년 크리스티나 여왕의 양위로 웁살라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즉위하였다.
즉위 초부터 30년 전쟁으로 인한 재정 문제에 시달렸다. 그 후 카자크-루스 차르국 연합군의 공격에 정신 못차리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공격해 대홍수를 일으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연방의 동맹국인 덴마크가 공격해오자 폴란드에서 물러나 코펜하겐을 기습해 로스킬레 조약을 체결하여 스코네와 블레킹에 등 덴마크의 스칸디나비아 영토를 얻어냈고 오늘날 덴마크와 스웨덴의 국경을 확립했다.
하지만 로스킬레 조약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덴마크와 노르웨이 전역을 집어삼킬 야심으로 재차 전쟁을 일으켰다. 두 번째 전쟁은 이전만큼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 전쟁 도중 폐렴으로 예테보리에서 사망했다. 사후 덴마크와는 코펜하겐 조약이 체결되어 노르웨이 영토의 트뢰넬라그와 덴마크 영토의 보른홀름 섬만 돌려주었고, 폴란드-리투아니아와는 올리바 평화 조약으로 폴란드 바사 왕조의 스웨덴 왕위 계승 주장을 완전히 철폐시키는 한편[2] , 리보니아를 스웨덴 영토로 공식적으로 편입시키면서 대외원정으로 인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