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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리나 미카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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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페인 펠리페 2세와 그의 세번째 부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의 차녀. 프랑스 왕국 앙리 2세의 외손녀이자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의 조카다.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결혼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명장 사부아 공자 외젠의 증조할머니이다.
2. 생애[편집]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는 장녀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를 낳고 다음해에 다시 딸을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엘리자베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대천사 미카엘에서 따와 카탈리나 미카엘라라고 지어졌다. 펠리페 2세는 연이어 딸이 태어나자 조금 실망했지만 딸들을 매우 사랑했다.
1585년 3월 11일에 사라고사에서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결혼식을 올렸다.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의 아버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프랑스에게 점령당했던 사보이아 공국을 탈환할 때 생캉탱 전투에서 본인이 직접 스페인령 네덜란드 주둔군을 이끌고 프랑스군을 무찔렀기 때문에 스페인과 우호적인 관계였다.[1] 펠리페 2세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우호관계를 이어나갈 필요성을 느끼고 둘째딸을 사보이아 공작에게 시집보냈다.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의 궁중에서 카탈리나 미카엘라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녀는 지적인 미인이었지만 오만했고, 스페인에서 입던 옷들을 고수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수완을 보여 사보이아 공국에 이익을 가져다주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카탈리나 미카엘라는 전쟁으로 자주 궁을 비우는 남편의 자리를 대신했다. 남편과는 금슬이 매우 좋았다. 부부는 떨어져 지낼 때면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를 낳았다. 30살이 되는 1597년에 카탈리나 미카엘라는 막내 조반나를 조산하고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펠리페 2세는 딸의 이른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일부 학자들은 그녀의 죽음이 펠리페 2세의 죽음을 앞당겼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