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이 키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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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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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合耆三郎 (카와이 키사부로)
덴포 9년(1838년) ~ 케이오 2년 2월 12일(1866년 3월 28일)

1. 개요
2. 사망


1. 개요[편집]


신센구미 회계.

하리마 국의 다카사고 출신으로 집안은 부유한 쌀 도매상 출신이였다. 오사카로 시집 온 여동생이 신센구미의 소식을 듣고 가입해보라 권유하고 이에 입대했다고 알려져있다.[1]

주로 부대의 회계로써 돈 관리를 맡았으며, 비록 전투원이 아닌 회계였으나 이케다야 사건에도 참가하여 포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2. 사망[편집]


케이오 2년 (1866년) 2월에 국중법도를 어긴 벌로 할복을 하게 되었으며 할복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 회계 실수로 곤도 이사미의 첩이자 게이샤였던 미유키 다유를 술집에서 빼오는 비용[2]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설.[3]
  • 착각으로 인해 미유키 다유가 아닌 다른 게이샤를 빼오는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회계 실수를 일으켰다는 설.
  • 곤도의 거듭된 여성 관계와 그로 인한 낭비로 부대 비용 관리 책임자로써 난색과 쓴소리를 했기 때문에, 배제 대상이 되어 숙청되었다는 설.
  • 회계라는 자리를 악용하여 자금을 빼돌려 몰래 반란을 계획하다가 폭로되었다는 설.
  • 회계로써의 임무를 망각하고 개인적으로 횡령을 했다는 설.

다만 무사 집단이였던 신센구미에서 회계가 가능한 인원을 대체하기가 힘들었는지 할복 기간까지 회계 실수로 인해 없어진 자금을 충당해 올 경우 할복을 면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카와이는 친가로 부족한 자금을 교토로 보내 달라고 사자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당시 친가에선 바쁜 나머지 자금을 바로 보낼 수 없어서 늦게 보내게 되었으며 그 자금은 카와이가 할복 한 후에 도착했다고 한다.

자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늦었다는 이유로 할복을 당한 사실을 들은 친가에서는 매우 분노하였으며 후에 신센구미에서 세운 무덤과는 별도로 아들을 공양하기 위한 공양탑을 당시 신센구미의 주둔지였던 미부데라에 세웠으며 그 공양탑은 아직도 미부데라에 남아있다.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에선 책사인 다케다에게 대출을 해주었다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사망한걸로 각색되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매우 좋게 나왔으며 불쌍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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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문에 나가쿠라 신파치가 카와이의 출신을 오사카 출신으로 적게 된다.[2] 미유키 다유를 500냥을 주고 빼왔다고 하며 에도 막부 말기의 1냥은 약 5만엔 정도로 2500만엔씩이나 지불하고 그녀를 빼온 것이 된다.[3] 다만 이는 미유키 다유를 빼온 시기와 카와이 숙청 시기가 많이 동떨어져 있어 신빙성이 얇다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