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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황다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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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중국 북부 허베이성의 지급시.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300여 km, 성도인 스자좡에서는 동북으로 480km 떨어진, 발해만에 접한 해안 도시이며 인구는 약 300만 명이다. 청더, 탕산과 함께 허베이 성의 동부를 구성하는 지급시이다. 지명은 진시황이 연나라의 고토를 순행하며 갈석산 밑에 행궁을 세우고 거처한 것에서 유래하였고, 지금도 그 궁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요서 지방을 대표하는 부동항으로서 석탄과 석유가 하역되었다. 본래 작은 도시였으나 1953년에 인근의 산하이관시와 합쳐졌고 1984년에는 개방 도시로 선정되어 현재에 이른다.
2. 경제[편집]
14개 해안개방구 중 하나로, 친황다오 경제기술개발구(秦皇岛经济技术开发区)가 존재한다. 그 영향으로 인하여 친황다오는 중국에서 가장 거대한 자원수출단지가 존재하며 중국 내 석탄이나 석유는 주로 친황다오항을 통해 해외로 수출된다. 또한 하술할 장성의 동쪽 끝구간인 산하이관이 있는 지역이라서 관광업 또한 활성화된 도시이다.
3. 관광[편집]
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12km 떨어진 해변에는 만리장성의 첫 관문으로서 하북과 요서 지방의 경계점이 되는 산하이관과 장성과 바다가 만나는 노룡두(老龙头)가 있다. 그밖에 주변 해변이 아름다워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시내에서 서쪽으로 30여km 가면 창리현(昌黎县)이 나오는데, 한나라 때에 세워진 유서깊은 도시이며 재야 사학계에서는 낙랑/대방군의 치소가 한반도 북부가 아닌 이곳이라고 주장하지만 신빙성은 떨어진다. 다만 인근 랴오닝 성의 도시인 차오양에 고조선의 초기중심지가 위치해있으리라고 추정되는 만큼 고조선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은 사실이고, 고구려에 의해 한반도 북부 → 요동을 거쳐 북위/수나라 시기에 요서 지방인 창려까지 밀려났을 가능성은 있다.[1] 창려현 읍내 뒤편의 갈석산은 해발고도가 695m 이지만 평지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아있는 자태가 아름다워 중국/한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4. 교통[편집]
관내에 친황다오 베이다이허 공항(秦皇岛北戴河机场)이 존재한다. 국제선은 존재하지만 시엠레아프와 이르쿠츠크만 연결하기 때문에 한국행은 없고 한국에서 가려면 베이징을 통해 가는 것이 좋다.
친황다오 관내에 친황다오 기차역(秦皇岛火车站)이 존재하고 징하 철도(京哈铁路), 다친 철도(大秦铁路), 진산 철도(津山铁路)가 관내를 지난다. 또한 선양역을 연결하는 철도인 친선 여객선(秦沈客运专线)이 최근 개통되었다.
5. 기타[편집]
한국 축구팬에게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축구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를 한 곳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상대는 카메룬이었고 결과는 1대 1 무승부였다.
이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서울특별시 강동구에는 여기서 이름을 딴 진황도로가 있다.
[1] 사학계에서는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이후 요서 지역으로 이름만 같게 하여 옮겨진(교치) 것으로, 낙랑군 수성현이 창려현에 있다거나 수성현에 만리장성의 시작점과 갈석산이 있다는 기록들은 요서 지역으로 낙랑군이 이동한 이후의 기록임을 들어 낙랑군 이동설의 근거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