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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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시인 만큼 여러 가지로 곡이 붙여졌으나 많이 사라졌고, 현재까지 이 시를 바탕으로 남아 있는 곡은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유명해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현재는 잊어져 있지만 한때 이 시는 이스라엘의 국가인 하티크바의 곡조에 맞춰져 동요처럼 불린 적도 있었다. 하티크바 항목을 참고해 보면 알겠지만 한국에서 꽤나 많이 개사되는 이스라엘의 국가인데, 후렴 전의 소절까지 채택해서 가사를 붙인 것으로 보인다.[1]
아이돌 그룹 빅뱅의 곡 꽃 길의 후렴구도 이 시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가신다면 잡지 않고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리며 보내드리겠다는 어조도 시적 상황과 비슷. 다만 시가 이별의 정서로 완결되는 것과 달리 해당 곡은 다시 돌아와 줄 것을 기약하고 있다.
또한 (여자)아이들 디지털 싱글 1집 타이틀곡 한(一) 또한 리더 소연이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 응원가[편집]
위의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응원가가 있다. 가사는 시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중간중간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꽃 피었네"라는 후렴구를 삽입한 것이 특징. 1990년대까지 대학가에서 응원가 뿐만 아니라 시위현장에서의 민중가요로도 많이 불렀다.
이 곡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한 마디로 작자 미상이고, 제대로 된 녹음도 없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아래 마야의 노래는 이 곡의 멜로디를 많이 차용했다.
1.2. 박재란의 노래[편집]
1960년에 이 시의 내용 그대로 발표된 가수 박재란의 노래. 손석우 작곡으로 1960년 1월 2일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영화주제가로 레코드 취입하였다.
1.3. 최정자의 노래[편집]
1968년에 이 시의 내용 그대로 발표된 가수 최정자의 노래. 서영은 작곡으로 1968년 11월 22일 발표하여 큰 사랑을 받았고, 이후 이선희, 마야 등이 커버하면서 국민가요가 되었다.
1.4. 마야의 노래[편집]
2003년에 이 시의 내용 그대로 발표된 가수 마야의 노래[2] 로 만들어진 곡으로, 진달래꽃이라고 하면 대부분 김소월의 시와 이 노래를 떠올릴 정도로 마야의 대표곡이다. 십이지마냥 리듬을 타야 외우는 사람도 간혹 있다. 부작용으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암송해 보라고 하면 잘 외우다 말고 뜬금 없이 마야의 진달래꽃에만 나오는 가사를 외우는 사람도 나온다. 뮤직 비디오는 쿠바를 배경으로 했다. 또한 걸프전 때의 이라크 모습도 나온다.[3]
여담으로, 노래방에서 진달래꽃을 선곡시 간주 점프는 누르지 않는 편이 좋다. 그 이유는 어째서인지 노래방 기계들이 간주는 물론이고 저음 부분도 같이 건너뛰기 때문이다. 즉, 점프하는 순간 바로 고음 파트의 '나보기가 역겨워~'부터 시작해 고음 부분만 부르다 1분만에 노래가 끝나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전주도 긴 편이 아니라서 정상적으로 나와도 오히려 시간을 더 써버릴수 있다.
원곡은 락풍의 음악이지만 2000년대 초중반 대부분 가수들이 그랬듯 클럽/댄스 리믹스 버전도 존재하며 이정현, 김현정의 댄스풍 노래들이 잘 먹혔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4]
2015년 11월 19일 2015 프리미어 12 준결승전에서 9회 일본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이룬 뒤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중계를 보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5]
1.4.1. 가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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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례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 구절은 해당 국가의 "콜 오드 발레바브 페니마 네페슈 예후디 호미야" 이 부분의 곡조에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절묘하긴 하다.[2] 그 이전에 구전으로 전승되던 노래의 멜로디를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3] 뮤비에서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나 보기가 역겨워 ~ 뿌리우리다' 부분에 벽에 그려진 체 게바라의 얼굴 옆으로 진군하는 영상이 나와 노래 가사를 모르고 들으면 혁명가인 줄 알겠다는 평도 있다.[4] 마야의 원곡을 들려주면 '이게 원곡 버전이라고?'라며 반응하는 것이 대다수다.[5] 김소월이 저항 시인은 아니지만 일생 전체가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환경으로 인한 고단함으로 가득했다. 때문에 시에서 민족한이 강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