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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래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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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왕족. 조지 5세와 테크의 메리의 첫손주이자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장남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고종사촌오빠이기도 하다.
제7대 헤어우드 백작이다.
2. 생애[편집]
프린세스 로열 메리와 헨리 래슬스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요크셔에 위치한 헤어우드 백작저인 헤어우드 하우스에서 자랐다.
1942년, 19세의 나이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2년 뒤인 1944년 6월 18일[1] , 이탈리아에서 총에 맞아 부상을 입고 나치한테 포로로 잡혔고, 결국 독일의 콜디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가 영국의 왕족이자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6세의 조카였기 때문에, 나치는 그를 'Prominente'로 분류하여 잠재적인 협상 카드로 여겼다고 한다.[2] 1945년 3월, 히틀러는 래슬스의 사형 집행장에 사인까지 하고 SS 사령관 고틀로프 베르거에게 집행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이 하루 이틀 안에 끝날 것 같다고 느낀 고틀로프 베르거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채 'Prominente'들을 스위스로 보내 풀어주었고, 그 뒤 조지는 고향 헤어우드로 무사히 귀환하였다.
1947년, 아버지인 헨리 래슬스가 사망하면서 24살의 나이에 정식으로 헤어우드 백작위를 물려 받았다.
생전 클래식 음악 행정가이자 작가였다. 특히 오페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잡지 'Opera'를 창간하고,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디렉터,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glish National Opera) 디렉터,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예술감독 등을 지냈다. 이밖에도 잉글랜드축구협회 회장[3] , 리즈 유나이티드 회장, BBC 이사 등을 지내기도 했다.
1949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자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마리온 슈타인[4] 과 결혼했다. 당시 결혼하려면 국왕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외할머니 테크의 메리가 반대했었다고 한다. 슈타인 가족의 친구였던 벤저민 브리튼이 결혼식 노래 'Amo Ergo Sum'을 작곡했다.
슬하 아들 셋을 두었다. 그러나 외도하고 있었던 호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패트리샤 터크웰이 임신하여 1964년 혼외자 마크를 낳았고, 결국 조지는 1967년 마리온 슈타인과 이혼하였다.[5] 당시 엄청난 스캔들이었으며 이혼 후 합법적인 관계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에게 한동안 외면받았다고 한다. 이혼 후 같은 해 패트리샤 터크웰과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말년의 모습
동생 제럴드의 사망 이후 2011년 사망하기 전까지 조지 5세의 후손 중에서 엘리자베스 2세보다 나이가 많은 유일한 왕족이었다.
3. 가족 관계[편집]
3.1. 조상[편집]
3.2.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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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18일은 아버지 헨리 래슬스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한 날과 같으며, 또 고조부가 워털루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날과도 같다고 한다.[2] 당시 수용된 'Prominente' 포로로 조지 6세의 처조카와 윈스턴 처칠의 조카도 있었다.[3] 1939년부터 왕실 일원이 회장직을 지내고 있다. 현재는 2006년부터 윌리엄 왕세자가 회장직을 맡고 있다.[4]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영국으로 건너왔다. 아버지는 음악가 쇤베르크의 유명 제자 에르빈 슈타인(Erwin Stein)이다.[5] 슈타인은 이혼한 지 6년 지나 영국 자유당 대표였던 제러미 소프와 재혼했다.[6] 글로스터 공작부인의 외증조부이기도 하다. 즉, 조지 5세의 며느리와 사위가 서로 5촌지간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