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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신)명인전

덤프버전 :

1. 개요
2. 최종 예선
3. 출전 기사 명단
4. 본선 리그
4.1. 도전자 결정전 플레이오프
5. 도전 7번기



1. 개요[편집]


1979년 12월부터 1980년 11월까지 진행됐던 명인전.

파일:조치훈과오타케.jpg[1]


2. 최종 예선[편집]


1조우시노하마 사쓰오하네하네하네 야스마사
하네 야스마사
미야모토 요시히사아베
아베 요시테루
우시쿠보 요시타카우시쿠보후지사와
미야자와 고로하시모토
하시모토 요시미
후지사와 히데유키후지사와
히사이 게이시

2조야마시로 히로시야마시로야마시로야마시로 히로시
나가하라 요시아키나가하라
스기우치 마사오
도키모토 하지메소노다
소노다 유이치
다카기 쇼이치다카기다카기
이시이 마모루가타오카
가타오카 사토시
이시다 요시오기요나리
기요나리 데쓰야

3조이와타 다쓰아키구도이시이고바야시 고이치
구도 노리오구도
사토 마사하루
이시이 구니오이시이
호시가와 노부아키
이케도 가즈미고바야시고바야시
고바야시 고이치
나카무라 히데히토도노
도노 히로아키

3. 출전 기사 명단[편집]


타이틀 보유자출생 년도출생지리그 출전 횟수우승 경력도전기 패배 경력
오타케 히데오 九단1942년 5월 12일후쿠오카현12회 연속, 총 12회 출전4회1회

이름출생 년도출생지리그 출전 횟수우승 경력도전기 패배 경력
사카다 에이오 九단1920년 2월 16일[2]도쿄도6회 연속, 총 15회 출전2회4회
가토 마사오 九단1947년 3월 15일[3]후쿠오카현4회 연속, 총 4회 출전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1951년 1월 1일도쿄도2회 연속, 총 2회 출전
린하이펑 九단1942년 5월 6일대만17회 연속, 총 17회 출전8회4회
조치훈 八단1956년 6월 20일한국4회 연속, 총 4회 출전
하시모토 우타로 九단1907년 2월 27일[4]오사카부7회 연속, 총 8회 출전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1952년 9월 10일홋카이도첫 출전
하네 야스마사 八단1944년 6월 25일미에현첫 출전
야마시로 히로시 六단1958년 8월 12일야마구치현2회 연속, 총 2회 출전



4. 본선 리그[편집]


서열이름사카다가토다케미야하시모토고바야시하네야마시로결과
1사카다 에이오 九단XOXXOXXO356위
2가토 마사오 九단OXOXOOOO62[A]
3다케미야 마사키 九단XOXXOOOO533위
4린하이펑 九단OXOOOXXO534위
5조치훈 八단OOOXOXOO62[A]
6하시모토 우타로 九단XXXXXOOX26탈락
7고바야시 고이치 九단OXXOOXOO535위
7하네 야스마사 八단OXXOXXXX26탈락
7야마시로 히로시 六단XXXXXOXO26탈락


4.1. 도전자 결정전 플레이오프[편집]


일정승자패자결과
8월 21일 목요일조치훈가토 마사오흑 4집반승


5. 도전 7번기[편집]


대국 구분일정승자패자장소결과
1국9월 10, 11일 수, 목요일조치훈오타케 히데오도쿄도 시부야구백 불계승
2국9월 17, 18일 수, 목요일조치훈오타케 히데오효고현 다카라즈카시흑 불계승
3국10월 1, 2일 수, 목요일오타케 히데오조치훈시즈오카현 이즈나가오카정[5]흑 불계승
4국10월 8, 9일 수, 목요일무승부아이치현 나고야시[6][7]
5국10월 22, 23일 수, 목요일조치훈오타케 히데오시즈오카현 이즈시흑 불계승
6국11월 5, 6일 수, 목요일조치훈오타케 히데오시즈오카현 아타미시백 1집반승
7국11월 19, 20일 수, 목요일-가나가와현 유가와라마치-

조치훈, 첫 명인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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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측 도전자 조치훈이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좌측은 오타케 히데오.[2] 2010년 10월 22일 타계[3] 2004년 12월 30일 타계[4] 1994년 7월 24일 타계[A] A B 도전자 결정전[5] 현재는 이즈노쿠니시[6] 원래 규정대로라면 2대1로 앞선 4국에서 흑을 잡은 조치훈의 반칙패가 돼야 하는 게 맞지만, 무난하게 두던 와중 갑자기 팻감을 써야 할 차례라는 걸 잊어버려 기록자에게 지금 패를 두어도 되냐고 질문해버린다. 그런데 이걸 또 기록자였던 히코사카 나오토 (당시)四단 두어도 된다고 답하는 바람에 조치훈이 정말로 팻감을 안 쓰고 패를 되따내 버렸다. 원래대로면 조치훈에게 반칙패가 선언되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사태를 만들어낸 심판에게도 책임이 컸기 때문에 갑론을박 끝에 대국은 무승부로 결론지어진다.[7] 당시는 이를 제재하는 규정도 없었을 뿐더러 기록자도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해당 사건이 터진 이후 착수와 관련된 질문은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