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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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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1. 개요
2. 결과
2.1. 경상북도 제1선거구 (대구시 중구·북구·서구)
2.2. 경상북도 제2선거구 (대구시 남구·동구)
2.3. 경상북도 제3선거구 (포항시·영일군·영천군·울릉군)
2.4. 경상북도 제4선거구 (경주시·월성군·청도군)
2.5. 경상북도 제5선거구 (김천시·금릉군·상주군)
2.6. 경상북도 제6선거구 (안동시·의성군·안동군)
2.7. 경상북도 제7선거구 (구미시·군위군·성주군·칠곡군·선산군)
2.8. 경상북도 제8선거구 (달성군·경산군·고령군)
2.9. 경상북도 제9선거구 (영덕군·청송군·울진군)
2.10. 경상북도 제10선거구 (영양군·영주군·봉화군)
1. 개요[편집]
본 항목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상북도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
2. 결과[편집]
-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든 선거구에 당선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한 선거구에서 1, 2등을 모두 석권해 22명 중 12명을 당선시킨 민주공화당이었으나, 이번엔 오로지 한 명 씩만 공천해서 모두 당선되어야 딱 절반인 11명이었다. 그럼에도 당선자가 9명 뿐이고 결과적으로 신민당에게 3석이나 빼앗겼다[1] 는 점에서, 박정희의 출신지이자 근거지인 경북에서조차 민주공화당이 심판받았음을 알 수 있다.
2.1. 경상북도 제1선거구 (대구시 중구·북구·서구)[편집]
- 여당 텃밭에 공천된 후보가 겨우 30%도 넘지 못 한 득표율로 간신히 2위로 당선되었다. 이만섭이 대구시 중구에서 제7대 국회의원을 했는데도 중구에서의 득표율은 북구보다도 낮았다. 이만섭은 민주공화당 공천으로 제6-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여당 의원이지만 정부에 할 말은 했고, 그 때문에 설움을[2] 받기도[3] 했다.[4] 민주공화당은 그런 사람을 공천했지만 경북에서 분 여당 심판의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오히려 이만섭이었기에 이 정도라도 득표했을 것이다. 만약 이만섭이 아니었다면,[5] 여당 텃밭의 한가운데에서 신민당이 공천한 조일환과 친야 무소속 한병채가 당선되고 민주공화당 후보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 신민당 공천으로 대구시 중구에서 제8대 국회의원을 지난 한병채가 지난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은 신민당 내의 계파 갈등 때문이었다. 당선된 뒤에 신민당에 입당했건만, 이번에 신민당이 두 명 공천하면 두 명 다 당선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 명만 공천했고 한병채는 또 무소속으로 나섰다. 그 결과 지난 번에 자기 지역인 중구에서 2위, 나머지 지역에서 3위를 하면서 조일환에게 불과 0.2%(300여 표) 앞서서 당선된 한병채는 이번 선거에서 이만섭과 조일환의 표를 합친 것보다 많은 득표로 자기 지역인 중구 뿐만 아니라 조일환의 지역구였던 북구와 서구까지 압승을 거두면서 전체 1위로 당선되었다.
- 지난 선거 때 자기 지역구였던 북구와 서구에서 2등을 차지했지만, 중구에서 4등에 머물면서 한병채에게 불과 0.2%(300여 표) 모자른 3위로 석패했던 조일환은 이번 선거에서 서구에서만 이만섭과 2등 경쟁을 했을 뿐, 북구와 중구에선 이만섭에게 한참 미치지 못 하는 3위에 머물면서 낙선했다. 득표율도 지난 번보다 줄었다. 즉 당선되면 신민당으로 복당할 것이 확실한 친야 무소속 후보[6] 가 있는 상태에서 이 지역의 민심은 굳이 신민당[7] 이 공천한 후보를 지지할 이유가 없었던 것.
2.2. 경상북도 제2선거구 (대구시 남구·동구)[편집]
- 지난 선거에 나왔던 민주공화당의 이효상, 신민당의 신도환, 신민당 공천으로 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8] 한 친야 무소속 신진욱이 그대로 나왔고 여기에다가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떨어지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여 무소속의 이치호까지 4파전[9] 이 벌어졌다. 결과는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이효상이 1등, 신도환이 2등으로 당선.
- 민주공화당 의장인 이효상이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도 1위로 당선되었지만, 득표율은 43%에서 27%로 줄어들었다. 동구에서는 11%, 자기 선거구였던 남구에서는 21%가 빠졌다.[10] 그리고 친여 무소속 이치호가 동구에서 16%, 남구에서 17%를 얻어 전체 17%로 3위를 차지했다.
- 지난 선거 때 20%를 득표하며 2위로 당선된 신도환은 이번에 23%를 득표하며 2위로 당선되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야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5%를 득표한 신진욱은 연거푸 친야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도 15%를 득표하며 4위를 차지했다.
- 여당 심판의 바람 속에 중구-서구-북구에서 여권의 지지율이 40%에서 24%로 16%가 빠졌고[11] 남구-동구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의 지지율은 16%가 빠졌는데, 그것이 야권으로 간 것이 아니라 친여 무소속에게 갔다.[12] 당시에는 민주공화당 뿐만 아니라 신민당의 이철승 체제도 심판 대상이었다. 그런데, 신민당이 공천한 신도환[13] 은 자기 계파를 만들어서 이철승을 지원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친야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자니, 신진욱은 신민당의 지도자 정일형을 폭행[14] 한 흑역사가 있다. 그러니 민주공화당도 심판하고 신민당의 이철승 체제를 비판하려는 사람들의 표심이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2.3. 경상북도 제3선거구 (포항시·영일군·영천군·울릉군)[편집]
2.4. 경상북도 제4선거구 (경주시·월성군·청도군)[편집]
2.5. 경상북도 제5선거구 (김천시·금릉군·상주군)[편집]
2.6. 경상북도 제6선거구 (안동시·의성군·안동군)[편집]
2.7. 경상북도 제7선거구 (구미시·군위군·성주군·칠곡군·선산군)[편집]
2.8. 경상북도 제8선거구 (달성군·경산군·고령군)[편집]
2.9. 경상북도 제9선거구 (영덕군·청송군·울진군)[편집]
2.10. 경상북도 제10선거구 (영양군·영주군·봉화군) [편집]
2.11. 경상북도 제11선거구 (문경군·예천군)[편집]
[1] 오히려 대도시인 대구에서는 모두 당선되었고, 시/군 단위에서 낙선자가 나왔다. [2] 이후락의 집요한 공작과 공화당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민심이반으로 여당 텃밭인 대구시 중구에서 낙선했다. [3] 공천에서 박찬에 밀려 탈락했고 대통령 추천 국회의원도 되지 못했다. [4] 같은 대구 출신인 이효상 민주공화당 의장이 그를 위한 당직(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상근부의장)을 만들어주었지만, 탈당해서 야당으로 가거나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했으며 그렇기에 실권도 거의 없는 한직이었다. 무엇보다 이 때의 민주공화당은 대통령의 친위세력 때문에 여당은 커녕 제대로 된 정당의 역할도 하지 못 했다. [5] 그러니까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단독 후보라는 이점으로 전체 1위로 당선되었지만,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구에서 조일환에게 진 박찬이나, 서구-북구 선거구가 서구와 북구로 나뉘고 조일환이 서구로 가는 바람에 북구에서 당선되었던 강재구 같은 사람 [6] 실제로 한병채는 당선된 뒤에 신민당으로 복당했다.[7] 정확하게는 대표인 이철승 [8] 이 때 꺾은 사람이 바로 이효상이었다. [9] 전체 후보는 7명 [10] 자기 선거구였던 남구에서도 21%나 빠졌는데, 동구에서 11% 밖에 줄지 않은 것은 동구가 농촌 지역을 편입해서 만든 지역이기 때문이다. [11] 10%는 신민당에, 6%는 민주통일당에 갔다. [12] 무소속까지 포함한 전체 비율이 여권은 43%에서 44%로, 야권은 35%에서 39%로 거의 변동이 없다.[13] 이승만 시절에 정치깡패(반공청년단)를 조직해서 3.15부정선거에 직접 개입한 사람으로 5.16 군사정변 이후에 이른바 혁명재판으로 8년 여를 복역했다. 단지 자신을 감옥에 보낸 것에 대한 원한으로 신민당에 들어갔을 뿐이다. [14] 자기 동생과 관련한 전국구 공천 헌금 문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