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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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894년 6월 17일
전라도 무안군 외읍면 성내리
(현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내리)
사망1956년 1월 6일
전라남도 무안군
상훈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태연은 1894년 6월 17일 전라도 무안군 외읍면(현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김순기(金順淇)·정순홍 등 10여 명의 마을 유지들과 함께 무안읍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튿날 새벽 이들과 함께 <친일파의 반성, 자숙과 민중의 궐기 촉구>라는 제목의 경고문을 무안읍내 요소요소에 부착했다.

이후 수십명의 군중을 이끌고 인근 남산에 올라 조국의 독립을 경축하는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1시경 공립보통학교 앞에서 일본경찰의 시위방해를 받으면서도 조국독립 경축의 의의(意義)를 그들에게 설명하면서 만세시위를 계속하니 오후 2시경에는 시위군중이 5백여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당황한 일본 경찰이 헌병과 함께 출동하였으며, 목포에서 무안군수(務安郡守)와 목포경찰서장(木浦警察署長)이 급히 달려와서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한편으로는 명망 높은 기관장(機關長)들을 내세워 설득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날 밤 10시경까지 시위군중과 함께 계속 독립만세를 고창(高唱)하면서 시위를 하고 귀가했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무안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6년 1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정태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