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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회(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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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활동





1. 개요[편집]


제2차 조선공산당 결성 전에 화요회, 북풍회,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회의 4개 단체가 모여서 만든 공산주의 단체이다. 이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의 협동전선을 모색하여 신간회 결성에 영향을 미친다.


2. 활동[편집]


민주주의적 노력의 집결로 인하여 전개되는 정치적 운동의 방향에 대하여는 그것이 필요한 과정의 형세인 이상, 우리는 차갑게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 아니 그것보다도 먼저 우리 운동 자체가 벌써 종래에 국한되어 있던 경제적 투쟁의 형태에서 보다 더 계급적, 대중적, 의식적 정치 형태로 비약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전환기에 달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하여는 그 부르주아적 성질을 명백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과정적 동맹자적 성질도 충분히 승인하여, 그것이 타락하는 형태로 출현되지 아니하는 것에 한하여는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대중의 개량적 이익을 위하여서도 종래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분연히 싸워야 할 것이다.

1926년 11월 17일, 「정우회 선언」

제1차 조선공산당이 해산된 이후 화요회, 북풍회,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회는 '합동위원회'를 구성하고 1926년 4월, '정우회'를 발족시켰다. 이 단체는 제1차 조선공산당처럼 화요회가 주도권을 가지고 다른 공산주의 단체과 연합하는 구조였다. 그리하여 정우회는 다시 제2차 조선공산당을 결성하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같은 해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나면서 공산주의자들을 향한 일제의 탄압이 이어졌고, 제2차 조선공산당도 해산되면서 정우회는 위기를 맞이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월회[1]의 합류 덕분이었다. 일월회가 합류한 이후 정우회는 공산주의자들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의 협동전선 구축을 목표로 하는 '정우회 선언'을 발표했다.[2]

[1] 북풍회에서 이어진 공산주의 단체[2] 하지만 정우회의 이러한 선언은 서울청년회 계열의 단체였던 '전진회'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