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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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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純朝
1888년 12월 7일 ~ 1962년 3월 20일[1] (향년 73세)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동래(東萊)[2] , 호는 동우(東愚).
1888년 12월 7일 전라남도 광주군(現 광주광역시)에서 아버지 정계운(鄭啓雲, 1849. 3. 7 ~ ?. 4. 16)[3] 과 어머니 밀양 박씨(? ~ ?. 7. 7)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작은아버지 정학선(鄭學先, 1853. 10. 5 ~ ?. 11. 16)에 입양되었다. 부산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법성금융조합 이사,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광산군 지부장, 전라남도 주조조합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그리고 1948년 당시 광산군 송정읍장이던 장안섭(張安燮)과 함께 어느 창고건물을 인수해 광산군청 청사를 확보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박종남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대 국회 기간동안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을 겸임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이정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2년 3월 20일 별세했다.
鄭純朝
1888년 12월 7일 ~ 1962년 3월 20일[1] (향년 73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동래(東萊)[2] , 호는 동우(東愚).
2. 생애[편집]
1888년 12월 7일 전라남도 광주군(現 광주광역시)에서 아버지 정계운(鄭啓雲, 1849. 3. 7 ~ ?. 4. 16)[3] 과 어머니 밀양 박씨(? ~ ?. 7. 7)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작은아버지 정학선(鄭學先, 1853. 10. 5 ~ ?. 11. 16)에 입양되었다. 부산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법성금융조합 이사,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광산군 지부장, 전라남도 주조조합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그리고 1948년 당시 광산군 송정읍장이던 장안섭(張安燮)과 함께 어느 창고건물을 인수해 광산군청 청사를 확보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박종남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대 국회 기간동안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을 겸임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이정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2년 3월 20일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