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1937)
최근 편집일시 : (♥ 0)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아나운서.
2. 이력[편집]
한국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1년에 MBC 개국을 앞두고 1기 아나운서로 선발되었고, 1964년 라디오서울(RSB·동양방송 전신)로 스카우트 되어 같은 해 12월 7일에 동양방송(TBC) TV의 개국 방송을 진행하였다. [1]
이후 1980년에 방송 통폐합으로 인해 KBS로 이적하였다. [2] 1986년부터 3년 동안 KBS 아나운서 실장을 맡아 1986 아시안 게임과 1988 올림픽 방송을 총지휘했다. 당시 스포츠캐스터 전원에게 복수(複數)의 전담 종목을 정하게 한 뒤 경기 규칙과 강팀 전력 분석 등을 담은 '88 올림픽 종목별 가이드북'을 만들게 했다. [3]
1982년에 개막 경기를 비롯해 프로야구 주요 경기 중계를 맡았다. 3월 27일 삼성 대 MBC전 10회말 7-7 동점 상황에서 MBC 이종도가 만루홈런을 쳤을 때도 아∼레프트! 레프트 크다! 레프트, 레프트, 레프트! 홈∼런! 만루홈런∼!이라고 중계하였다.
3. 퇴직 이후[편집]
1995년에 한국스포츠TV 이사대우 방송위원으로 근무했다. [4]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5-16 11:26:48에 나무위키 이장우(1937)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김성호 한국방송연구회장은 책 '한국아나운서통사'(2013)에서 "동양방송 아나운서실의 기틀을 잡는데 혼신을 다했는데, 치밀하면서도 대범한 성격이라 초석을 마련하는데 적임자였다"고 적었다.[2] 1982년 방송월보(2월호)에 실은 '위성시대에 스포츠캐스터에게 요구되는 것'이라는 글에서 "스포츠캐스터의 요건은 '입'이 빨라야 함은 오랜 정설임과 동시에 오늘의 시점으로 보아도 옳은 말"이라고 설파했다.[3] 이계진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은 책 '(이규항 김승한 이장우) 3인 아나운서 이야기'(2015)에서 "깔끔한 성품처럼, 캐스터가 장황하거나 군더더기 있는 중계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나운서들에게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표현의 세련된 중계방송을 요구했다"고 했다. 고인과 함께 야구 중계로 유명했던 유수호 전 아나운서는 같은 책에서 "'입추의 여지없는', '천고마비의 계절' 같은 상투적인 멘트를 못 하게 하셨고, '실내체육관'은 '역전앞'처럼 '의미중첩어'라며 그냥 '체육관'으로 하라고 했다"고 기억했다.[4] 이계진 회장은 "맛과 멋을 아는 아나운서였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