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사다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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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신 타이거스 소속 좌완 투수. 2019년까지 선발이었다가 2020년부터 구원으로 포지션 변경 이후 필승계투가 되었다.
2. 프로 입단 전[편집]
쿠마모토시 출신으로 소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외야수로 시작했으나 고교 진학 후에는 1루수 겸 투수가 됐고, 최종적으로 투수로 정착했다. 1학년 때부터 벤치에 앉을 만큼 소질은 탁월했으나, 고시엔 대회는 진출한 적이 없었다. 요코하마 상과 대학에 진학해서도 1학년 때부터 벤치에 들어갈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고, 미일 대학야구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한 적 있었다.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신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1라운드에서 중복 지명을 했고, 제비뽑기에서 한신이 이기면서 한신 선수가 되었다. 우메노 류타로, 이와자키 스구루와 입단 동기가 되었다.
3. 한신 시절[편집]
프로 첫 시즌이던 2014년엔 스프링캠프 도중 팔꿈치 통증 등이 겹치면서 2군에서 개막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죽음의 원정 기간에 1군 진입에 성공했다. 8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8월 17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요코하마 스타디움 원정 경기에서는 프로 첫 승이자 첫 선발승을 거뒀다.[1] 최종적으로는 1승 4패 평균자책점 4.60을 기록했다.
2015년엔 이와자키와 6선발 자리를 경합하다 결국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먼저 6선발로 낙점받은 이와자키가 부진에 빠지자 대체 선발로 1군에 올라왔고, 6월 4일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고시엔 홈경기에서 시즌 첫 승이자 고시엔 첫 승을 거뒀다. 이 해에는 5경기 등판 1승 1패 평균자책점 4.35를 기록했고, 시즌 후 대만 윈터리그에 파견되기도 했다.
2016년엔 개막 엔트리 진입에 성공했고, 25경기 선발로 뛰어 10승 9패 2완투 2완봉 158.1이닝 156탈삼진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했다. 특히 10승째가 되었던 경기는 2016년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의 전통의 일전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5월 27일 전통의 일전에서는 프로 첫 완투완봉에도 성공했다. 구단 역사상 최초로 첫 완봉승을 1-0으로 교진 상대로 해낸 투수가 되었다.[2] 이 시즌의 활약을 기반으로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예비 대표로 뽑혔으나 최종 승선하진 못했다. 다만 2017년은 꽤 부진했는데, 18경기 출전으로 경기수도 줄었고, 8월 도쿄 돔 전통의 일전에서는 4회 도중까지 5사사구나 헌납하는 제구 난조를 보여 당시 감독 카네모토 토모아키로부터 경기 도중 교체 후 2군행 지시를 받기도 했다. 최종 평균자책점 4.96에 5승 10패로 부진했으며 1경기 4피홈런을 맞기도 했다.
2018년에도 7승 10패 132이닝 평균자책점 3.48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 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선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빈볼을 던져 1회말부터 퇴장을 당한 적도 있었다.[3] 2019년에는 인플루엔자 감염을 당하기도 하는 등 1군 8경기 등판에 그쳤고, 2020년엔 몇 경기 선발로 나오다가 시즌 도중 구원으로 전환했다.
2021년 중간계투로 이와자키 스구루 - 이와사다 유타 - 로베르트 수아레스로 이어지는 철벽 불펜진의 한 축을 맡아 4승 무패 12홀드를 기록했으나, 정작 평균자책점이 4.66으로 제법 높았다. 소화 이닝수는 38.2이닝. 2022년에는 유아사 아츠키 / 하마치 마스미 - 이와사다 유타 - 이와자키 스구루 / 카일 켈러로 이어지는 철벽 불펜진의 한 축을 맡아 53경기 42이닝 2승 1패 11홀드를 거뒀다. 시즌 후 17번을 아오야기 코요에게 넘기고 본인은 노미 아츠시와 천웨이인이 달던 14번을 달게 되었다. 동시에 FA 대상자가 되었으나, 니시 유키 및 이와자키 스구루와 함께 FA 권리 미행사 및 잔류 선언을 했다. 구단은 3년 3억엔의 다년계약으로 화답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최대 154km/h까지 낸 적이 있다. 좌완 투수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메리트다. 그 외에는 130km대의 컷 패스트볼을 던져서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공략하는 투구를 한다. 그 외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등의 변화구도 가끔씩 던진다고 한다. 다만 프로 초창기 때는 제구가 안 돼 고생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5. 기타[편집]
2015년 시즌 종료 후 일반인 여성과 결혼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 본가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지진 며칠 후 나고야돔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 선발로 나가서 7이닝 4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했고, 경기도 이기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인터뷰에서는 경기 직전까지 집중할 수 없었으나 본인이 흔들리면 주변 모두에 폐를 끼친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한다. 이후로는 모금 활동에 참가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는 유니폼에 이와사다를 I WAS ADA로 읽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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