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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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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비 제국 제3대 황제
이스마일 2세
شاه اسماعیل دوم

파일:Shah_Ismayil_II.jpg
본명
이스마일 미르지(اسماعیل میرزا)
생몰년도
1537년 5월 31일 ~ 1577년 11월 24일 (40세)
재위기간
1576년 8월 22일 ~ 1577년 11월 24일

1. 개요
2. 생애
2.1. 즉위
2.2. 반키질바시 정책
2.3. 수니파 정책
2.4. 암살



1. 개요[편집]


사파비 제국의 3대 샤.


2. 생애[편집]



2.1. 즉위[편집]


1547년에 시르반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오스만 제국과 몇 차례 전투를 하기도 하였고, 1556년에 호라산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나 궁정 중신의 음모로 인해 동북방의 한 성채에 20년 동안 유폐되었다. 1574년 선제 타흐마스프 1세가 병에 걸려 더 이상 살아남을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자 키질바시는 차기 황제 자리를 두고 타흐마스프의 아들인 하이다르와 이스마일 이 2명을 놓고 갈등하였다. 하이다르를 옹호하던 파는 이스마일을 암살하기 위해 암살단을 보내지만, 타흐마스프가 이스마일의 군공을 아깝게 생각하여 암살단의 행동을 저지하였다. 타흐마스프는 1576년에 사망하였고, 하이다르파와 이스마일파료 나뉘어 내분이 시작되었다.


2.2. 반키질바시 정책[편집]


그는 재위 전 19년 동안 유폐 생활을 했으며 이 유폐생활의 영향으로 즉위하자마자 키질바시의 간섭을 이겨내려고 하며 친정을 시도한다. 또한 그는 제위를 공고히하기 위해 친족들을 숙청한다. 또한 그들을 지지하고 자신에게 반항하는 키질바시 수장들도 모두 죽여버렸다.


2.3. 수니파 정책[편집]


그는 당시 국교였던 시아파 대신 수니파를 후원하였다. 또한 그동안 탄압받던 수니파들에게 관용을 베풀었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공존을 추구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당연히 이 정책은 기득권층인 시아파 성직자들이 반발하였는데 이스마일은 그에게 반항하는 시아파 성직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2.4. 암살[편집]


그러나 이스마일 2세의 왕권 강화 시도는 키질바시들에 의해 난관에 부딪친다. 특히 키질바시들은 이스마일 2세의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에 반발하여 계속해서 맞서며 반란을 일으켰고 이스마일 2세는 이 반란들을 진압했으나 불안함과 편집증으로 재위를 보낸다. 결국 궁정 내분에 휩싸여 그는 1577년에 독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