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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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에 신설된 조로 조명칭은 '설월화'를 기념하여 지어졌다.
전쟁 후, 카스카노 야치요를 중심으로, 특별힌 일본무도나 소작의 아름다움을 평가받은 스타를 많이 배출. 청초한 예를 특색으로, 일본물 연기를 특기로 해왔다. 또 가창력 정평이 있는 스타도 많고 <엘리자벳>을 일본에 소개한 것도, 당시의 톱스타 이치로 마키에 의한 점이 크다. 현재 댄스를 특기로 하는 스타가 많이 재적해 쇼에서도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2016년 공연 <바람의 검심>으로 다카라즈카 가극단 사상 처음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3작품 연속 전 일정 가동률 100%이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
1. 개요[편집]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5개조 중 세 번째 조로 한국에서는 주로 '설조'로 불린다. 이미지 컬러로는 초록색이 주로 사용된다.雪組(설조, 유키구미)
2. 특징[편집]
1924년에 신설된 조로 조명칭은 '설월화'를 기념하여 지어졌다.
전쟁 후, 카스카노 야치요를 중심으로, 특별힌 일본무도나 소작의 아름다움을 평가받은 스타를 많이 배출. 청초한 예를 특색으로, 일본물 연기를 특기로 해왔다. 또 가창력 정평이 있는 스타도 많고 <엘리자벳>을 일본에 소개한 것도, 당시의 톱스타 이치로 마키에 의한 점이 크다. 현재 댄스를 특기로 하는 스타가 많이 재적해 쇼에서도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2016년 공연 <바람의 검심>으로 다카라즈카 가극단 사상 처음으로 다카라즈카 대극장 3작품 연속 전 일정 가동률 100%이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
3. 역대 톱스타[편집]
3.1. 남역[편집]
3.2. 여역[편집]
4. 생도[편집]
5. 출신 인물[편집]
- 사기리 세이나 - 2017년 퇴단
설조의 제 20대 톱스타로 톱스타 취임 이후 '5공연 연속 대극장 가동률 100%'[15] 라는 어마무시한 대기록을 보유한 남역 톱스타였다. 이 기록은 다카라즈카 가극단 100년 역사 가운데서도 사기리 세이나만이 유일하게 갖고있는 기록으로 2010년대 설조 황금기를 연 선구자이다. 2017년 공연 <막말태양전>을 마지막으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약 3년간의 톱스타 활동의 마침표를 찍으며 퇴단했다.[16]
- 키타하라 요코(北原遥子) - 1984년 퇴단
본명은 "요시다 유미코"(吉田由美子).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한 비운의 히로인으로 알려 졌지만,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 이치로 마키(一路真輝) - 1996년 퇴단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설조의 톱스타였으며 들어가기 어렵다는 그 다카라즈카 극단을 아무런 레슨도 없이 찾아가 오직 자신이 타고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들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은 뮤지컬 엘리자벳, 베르사유의 장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이 있다. 특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는 남역이 아닌 여자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 역할을 맡았는데 이것은 여역을 해도 충분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출중한 가창력, 연기력으로 연2년차에 다른 조의 톱여역이 될 뻔 하였으나 본인은 남역이 되기를 희망해 설조에 남았고 1993년 톱스타로 취임하였다.[17] 다카라즈카 퇴단작인 엘리자벳에서 토드역을 맡아 엘리자벳이 성공작이 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이 작품으로 일본 뮤지컬계에서는 전설이 되었다.[18]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을 가지고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카미즈키 아카네(神月茜) - 2004년 퇴단
그 유명한 리브 문의 메인보컬. 거기에 가극단 역사상 유례없는 혼혈[19] 이자 1997년에 음악학교 85기생으로 수석 입학, 99년에 가극단에 입단하여 설조 공연 "재회 - 노바 보사 노바"로 첫 출연하여 그 해 10월 4일에 설조에 배속되었다. 입단성적은 40명 중 6위로 2004년 7월 11일에 "스사노오 -창국의 괴수-"와 "다카라즈카 글로리"를 마지막으로 퇴단하기까지 남역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저음역대를 꾸준히 소화한 덕분에 어떤 노래를 하더라도 음역대가 매우 넓다. 덕분에 고음과 저음을 모두 소화함으로써 4옥타브의 여신이라 불리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게 된다. 다만 활동기간이 약 5년으로 다른 동기들과 달리 짧은 게 아쉬운 부분. 게다가 후술할 무릎 수술로 인한 휴지기, 그리고 퇴단 후 돌연 유학길에 오르는 등으로 일찍 퇴단한 탓에 톱스타의 자리까지 올라오지는 못했다. 또한 그녀가 퇴단하게 된 계기는 매우 특이한데, 음악학교 졸업공연 준비를 하던 도중에 무릎 부상을 당하여 젠느 데뷔 후 이를 숨기고 활동하다가 팬들에게 지적을 받자 결국 수술하기에 이르렀고, 수술 후 요양하다가 해외에서 뮤지컬을 보고 충격을 받자 퇴단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해부터 2005년까지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뮤지컬 활동으로 입지를 쌓아 가수를 준비하게 되었고, 상술한 메탈밴드 리브 문을 2009년에 결성하여 현재까지 가수와 뮤지컬 배우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 모리 나나코(森 なな子) - 2009년 퇴단
6. 여담[편집]
- 톱콤비 사이가 유독 좋은 조로 꼽힌다. 다카라즈카 자체가 남녀 톱콤비를 묶어서 상품화하긴 하지만, 설조는 유독 콤비 간 꽁냥꽁냥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치기미유’로 불렸던 전임 톱스타 콤비 사기리 세이나와 사키히 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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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큐 전철 창유사업본부 가극사업부가 운영하고 있다. 즉,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한큐 전철의 분할회사나 자회사 형태가 아닌 본사가 직접 관할하는 직할조직이다.[2] 당시 남역 톱스타 사기리 세이나는 톱 취임 이후 상연한 모든 대극장 작품(5작품)에서 가동률 100% 이상을 달성했다. 이는 100년 역사를 넘긴 다카라즈카 창단 이래 신기록이다.[3] 화조의 톱스타이기도 했다.[4] 설조의 조장도 겸했다.[5] 이후 전과로 이동해 활동하다 1975년에 퇴단.[6] 이후 전과로 이동.[7] 1961년 퇴단[8] 이후 전과로 이동.[9] 이후 퇴임 후 성조 톱여역 취임.[10] 이후 (1979년 3월 26일)성조 톱여역으로 취임.[11] 이후 톱여역 부재(1979년 3월 26일~1980년 4월 7일).[12] 이후 톱여역 부재(1984년 7월 31일~1985년 4월 30일).[13] 이후 (1998년 1월 1일)주조 톱여역 취임[14] 이후 톱여역 부재(2009년 9월 13일~2011년 3월 23일.[15] 톱스타 취임 이후 전 공연이 매진이었다는 의미.[16] 이전 수정글에 '2018년 바람의 검심으로 퇴단'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잘못된 서술이다. 치기는 2017년에 막말태양전으로 퇴단했다. 2018년에 한 바람의 검심은 외부 주연작이자, 퇴단 후 첫 남역이다.[17] 2년차에 남역의 배우에게 톱 여역의 자리를 제안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18] 이후에 토호 버전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초연부터 오연까지 엘리자벳 역을 맡았다.[19] 폴란드계 스웨덴인 아버지와 한국계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