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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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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타이는 중국 산둥성 동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동쪽으로는 같은 항구도시인 웨이하이시, 남서쪽으로는 칭다오시가 있다. 현재 이 곳은 항구도시이자 어업 도시다. 인구는 701만 명, 면적은 13,852 km²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춘추시대에는 주나라의 제후국이었던 래(萊)나라가 통치하고 있었으며, 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점령하여 제나라 영토로 편입되었고 이후 이 지역의 명칭은 제나라의 명칭을 딴 제(齊) 혹은 이 곳에 있었던 나라인 래(萊)로 불리게 된다. 본래 이웃한 봉래현 (펑라이구)에 밀린 어촌이었으나 근대 개항기에 봉래 대신 항구로 지목되어 성장하였다. 옌타이(연대 煙臺)라는 이름은 명나라 홍무제 시기에 만들어진 봉수대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1] 이후 서구 열강에 개방된 항구였으며, 조계지였다. 당시 옌타이의 명칭은 즈푸(芝罘 )였기에 '처푸'(Chefoo)라는 이름으로 서구에 알려졌다. 아편전쟁 이후 톈진조약으로 인해 개항된 10개 항구 중 하나로 선택되었고, 1861년 5월 근대적인 항구가 개설되었다. 이후 즈푸에는 영국, 미국, 독일 등 17개국이 영사관을 두었고 영국과 독일 등의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다만 중국 현지인들은 여전히 도시를 옌타이라 불렀고, 1911년 신해혁명 당시 동맹회가 산동군정부 (山東軍政府)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 초엽 산둥성의 철도 건설 시에 즈푸 대신 칭다오가 선택되며 옌타이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 신해혁명 후 1913년 옌타이 주둔 수비대가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烟台兵变|煙臺兵變 연대병변) 1차 대전기 칭다오를 장악한 일본은 즈푸를 아시아 함대의 여름 정박지로 삼았다. 1935년 중국 공산당은 옌타이에서 11.4 기의를 일으켜 도시를 장악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중일전쟁기인 1938년 2월 일본군이 일대를 장악하였고, 1945년 8월 24일 해방된 후 즈푸는 공식적으로 옌타이라 명명되었다. 1947년 국공내전의 제동전역(齊東戰役)의 결과 국민당 군이 도시를 장악했으나 1948년 10월 인민해방군이 점령하였고, 옌타이는 옌타이 지구를 거쳐 1983년 지급시로 편성되었다. 현재는 웨이하이, 칭다오와 함께 산둥의 3대 항구 도시 중 하나이다.
옌타이대학(烟台大学)과 루둥대학(鲁东大学)이 위치해 있다.
연대한인상공회에서 설립한 연대한국학교가 위치해 있다.
웨이하이시와 더불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까운 중국 도시인지라, 대한민국 기업들도 옌타이 현지에 활발하게 진출했다. 한국인과 조선족들이 꽤 살고 있기 때문에, 코리아타운도 형성되어 있다. 또한 옌타이 대외투자국가의 수는 홍콩에 이어 2번째로 기록되는데, 홍콩은 엄밀히 말해서 중국기준 외국이 아니므로 실제로는 한국이 제1투자국이다.
한국에서는 옌타이에서 옛 기법으로 빚었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술 연태고량주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그 고량주와는 한자가 다르다. 고량주는 높을 고, 기장 량(高粱)을 쓰지만 '연태고량주'의 고양은 옛 고, 술 빚을 양(古釀)을 쓴다. 발음도 비슷한데다가 하필이면 간화자에서 釀 자를 간화하면서 오른쪽에 良(량)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혼동이 생긴 듯하다. 더구나 지명의 유래에 관해 상술했듯이 옌타이는 연태가 아니라 연대이다. 따라서 한자 독음대로 따지자면 연대고양주가 옳은 표현이다.
한편 중국 내에서는 와인생산용 포도 재배에 적합한 기후조건 덕택에 와인으로도 유명하며.연태고량주를 만드는 산동연태양주유유한공사가 대표적인 연태와이너리로 매출의 90%는 와인이고, 나머지 10%가 한국으로 판매하는 고량주라고 한다. 중국내 고량주 매출은 미미하다고 한다.
파일:PenglaiPavilion.jpg
중국4대명루 중 하나인 봉래각(蓬莱阁)
한국인들에게 상당히 유명한 중국 관광지로 전해진다. 일단 한국과의 교류가 많아 한국인들이 자주 오가는 도시이기도 하고, 항공편 외에도 선편으로도 쉽게 가는 것이 가능한, 한국 기준 접근이 매우 쉬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옌타이 하면 주로 해변 피서관광으로 유명하며, 위에 올라간 사진인 펑라이구의 봉래각도 유명한 관광 명소이다. 또한 와인이 유명한 도시라서 와이너리 및 와인박물관도 상당히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옌타이는 중국 산둥성 동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동쪽으로는 같은 항구도시인 웨이하이시, 남서쪽으로는 칭다오시가 있다. 현재 이 곳은 항구도시이자 어업 도시다. 인구는 701만 명, 면적은 13,852 km²이다.
2. 역사[편집]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춘추시대에는 주나라의 제후국이었던 래(萊)나라가 통치하고 있었으며, 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점령하여 제나라 영토로 편입되었고 이후 이 지역의 명칭은 제나라의 명칭을 딴 제(齊) 혹은 이 곳에 있었던 나라인 래(萊)로 불리게 된다. 본래 이웃한 봉래현 (펑라이구)에 밀린 어촌이었으나 근대 개항기에 봉래 대신 항구로 지목되어 성장하였다. 옌타이(연대 煙臺)라는 이름은 명나라 홍무제 시기에 만들어진 봉수대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1] 이후 서구 열강에 개방된 항구였으며, 조계지였다. 당시 옌타이의 명칭은 즈푸(
다만 중국 현지인들은 여전히 도시를 옌타이라 불렀고, 1911년 신해혁명 당시 동맹회가 산동군정부 (山東軍政府)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한편 20세기 초엽 산둥성의 철도 건설 시에 즈푸 대신 칭다오가 선택되며 옌타이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 신해혁명 후 1913년 옌타이 주둔 수비대가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烟台兵变|煙臺兵變 연대병변) 1차 대전기 칭다오를 장악한 일본은 즈푸를 아시아 함대의 여름 정박지로 삼았다. 1935년 중국 공산당은 옌타이에서 11.4 기의를 일으켜 도시를 장악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중일전쟁기인 1938년 2월 일본군이 일대를 장악하였고, 1945년 8월 24일 해방된 후 즈푸는 공식적으로 옌타이라 명명되었다. 1947년 국공내전의 제동전역(齊東戰役)의 결과 국민당 군이 도시를 장악했으나 1948년 10월 인민해방군이 점령하였고, 옌타이는 옌타이 지구를 거쳐 1983년 지급시로 편성되었다. 현재는 웨이하이, 칭다오와 함께 산둥의 3대 항구 도시 중 하나이다.
3. 교육[편집]
옌타이대학(烟台大学)과 루둥대학(鲁东大学)이 위치해 있다.
연대한인상공회에서 설립한 연대한국학교가 위치해 있다.
4. 교통[편집]
- 버스
- 기차
- 옌타이난역
- 선박
- 옌타이항 여객터미널
- 옌타이항 국제여객터미널
이곳에서 중국 각지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과 인천으로 향하는 국제선 항공편을 탑승 할 수 있다.
5. 한국과의 관계[편집]
웨이하이시와 더불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까운 중국 도시인지라, 대한민국 기업들도 옌타이 현지에 활발하게 진출했다. 한국인과 조선족들이 꽤 살고 있기 때문에, 코리아타운도 형성되어 있다. 또한 옌타이 대외투자국가의 수는 홍콩에 이어 2번째로 기록되는데, 홍콩은 엄밀히 말해서 중국기준 외국이 아니므로 실제로는 한국이 제1투자국이다.
한국에서는 옌타이에서 옛 기법으로 빚었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술 연태고량주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그 고량주와는 한자가 다르다. 고량주는 높을 고, 기장 량(高粱)을 쓰지만 '연태고량주'의 고양은 옛 고, 술 빚을 양(古釀)을 쓴다. 발음도 비슷한데다가 하필이면 간화자에서 釀 자를 간화하면서 오른쪽에 良(량)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혼동이 생긴 듯하다. 더구나 지명의 유래에 관해 상술했듯이 옌타이는 연태가 아니라 연대이다. 따라서 한자 독음대로 따지자면 연대고양주가 옳은 표현이다.
한편 중국 내에서는 와인생산용 포도 재배에 적합한 기후조건 덕택에 와인으로도 유명하며.연태고량주를 만드는 산동연태양주유유한공사가 대표적인 연태와이너리로 매출의 90%는 와인이고, 나머지 10%가 한국으로 판매하는 고량주라고 한다. 중국내 고량주 매출은 미미하다고 한다.
6. 관광[편집]
파일:PenglaiPavilion.jpg
중국4대명루 중 하나인 봉래각(蓬莱阁)
한국인들에게 상당히 유명한 중국 관광지로 전해진다. 일단 한국과의 교류가 많아 한국인들이 자주 오가는 도시이기도 하고, 항공편 외에도 선편으로도 쉽게 가는 것이 가능한, 한국 기준 접근이 매우 쉬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옌타이 하면 주로 해변 피서관광으로 유명하며, 위에 올라간 사진인 펑라이구의 봉래각도 유명한 관광 명소이다. 또한 와인이 유명한 도시라서 와이너리 및 와인박물관도 상당히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6.1. 출신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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