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급 전함
최근 편집일시 : (♥ 1)
1. 개요[편집]
일본 제국 해군의 전함.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탈퇴한 일본 제국이 장래의 함대결전시 해군의 전력비상 열세를 질로 만회하고자 계획하였다. 군축조약에서 탈퇴하고 건조한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이다. 초도함 야마토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부터 건조를 시작해 얼마 안 지나 취역하였으며, 크기나 배수량은 현대의 대형 크루즈선이나 중형 항공모함에 필적한다.
거함거포주의의 정점에 달한 전함으로서, 이제는 깨지지도 않을[1][2][3][4]
사실 일본제국의 해군 내부에서도 건조여부를 둘러싸고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거함거포주의 파벌들은 워싱턴 군축조약을 파기하자마자 어떻게든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상세한 제원과 예산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였고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같이 항공모함 시대라며 야마토급 전함 예산으로 제로센 1000대는 족히 찍어낸다며 반대하던 파벌도 있었다. 그러나 거함거포주의 파벌이 해군의 주류인 반면 이소로쿠 제독과 같은 이들은 소수였다. 게다가 이소로쿠도 야마토급 전함 건조 찬성파벌들로부터 뭔가 거래를 받아들여서 결국 건조된 케이스다. 이에 관해서 이들로부터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시킬 생각이냐"며 압박했다는 소문도 있다.
한자까지 똑같기 때문에 일본 고대국가 야마토의 이름을 땄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율령국 가운데 하나인 야마토노쿠니(大和国, 지금의 나라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일본 해군의 전함 명명법은 옛 일본의 율령국에서 따온다. 그 예로 나가토나 무츠도 율령국의 이름이었다. 자매함 '무사시'와 '시나노'의 어원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무사시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 시나노는 시나노노쿠니(信濃国)에서 따왔다. 항공모함인 카가 역시 원래 전함이었기 때문에 번국을 함명으로 쓰는 것이다. 카가급 전함 문서를 참고하자.
다만 예외는 있어서 시키시마와 후소(扶桑)는 애초에 일본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일본이 당시 후소급 전함에 걸었던 기대와 염원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예외는 야먀토에게도 적용된다. 야마토는 일본의 별칭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고려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쇼와 덴노가 야마토와 시나노라는 이름 중에서 야마토를 선택하여 1번함에 야마토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야마토의 승조원이었던 해군 장교 이시다 나오요시의 증언에 의하면, 길을 잃을 때를 고려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를 알려주는 화살표가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 건물 안에 붙어있는 안내판과 같은 것으로 현대에도 이런 표식이 있는 경우는 상당히 큰 배에 한한다.
야마토급은 두터운 장갑 때문에 건조 당시 기준배수량 65,000t에 달했고 만재 배수량이 72,000t에 달하는 거구였다. 이 기록은 1950년대 말에서야 미국의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이 깬다.
게다가 잠수함 단 1척의 어뢰에 격침당한 가장 큰 군함도 야마토급을 개장해 건조한 항공모함이다.
관련기사
2. 제원[편집]
3. 동형함과 건조계획[편집]
당초에는 총 8척이 계획되었고, 야마토급 전함 완성에 따라 이전 함급이었던 공고급, 후소급 전함, 이세급 전함은 모두 스크랩 처리하고, 나가토급 전함은 연습용으로 쓸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산문제와 전쟁발발 등으로 인해 실제로 군함으로서 완성된 것은 3척, 이마저도 시나노는 건조 도중 항공모함으로 개장했기에 전함은 단 2척에 불과하다.
최초 건조 계획은 A140 설계안이라 명명되었으며, 더 무거웠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G, J,[7] K는 화력 집중을 위해 넬슨급 전함처럼 주포탑 3기를 모두 함수 쪽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토네급의 주포 배치가 전방 집중형이 된 것은 실험 제작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외의 설계안에 따라 2연장 주포 탑을 사용하는 설계도 있었다. 출력은 20만 마력에 속도는 30노트로 충분히 고속전함이라 불릴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연료가 많이 먹힌다는 이유로 속도가 삭감됐다. 배수량은 68,000톤으로 계획되었다.
3.1. 1~4번 함(이름: 야마토, 무사시, 시나노, 111호 함(키이))[편집]
이 설계 계획에 따라서 1937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다. 1941년 8월 8일, 1번 함 야마토가 진수되었다. 진수는 선대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 도크에 물을 채우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엄중한 보안 유지를 위해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오직 관료 100명과 진수식 작업 인원 1,000명만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거대한 전함답지 않게 아주 외롭게 진수되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직후인 1941년 12월 16일에 1번 함 야마토가 취역, 1942년 8월 5일에 2번 함 무사시가 취역했다.
그러나 당시 해군 내에서 야마토급의 존재 그 자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해군병학생들을 태운 연습기가 도크 상공을 날며 학생들에게 야마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 관계자들은 카츠라기급 슬루프 2척인 야마토, 무사시가 폐함된 사실 때문에 신형전함의 함명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고 한다. 오죽 하면 군비 사용 내역이 4만 톤급 전함 1척과 구축함 1척 건조 비용 등으로 위장되었다.
그리고 비밀엄수에도 불구하고 야마토급 전함의 예측을 어느 정도 한 경우도 있다. 나치 독일은 야마토의 제원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한 부분이 있다. 일본이 건조하는 신형군함이 함저가 삼중일 것이며 47,000톤 이상, 18인치 이상의 주포를 탑재하는 전함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덩치에 걸맞게 건조비도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퍼먹었다. 1억 4287만 엔(3번 함 시나노 기준)으로 이는 당시 일본 제국 국가 예산의 1% 수준이며, 당시 일본 제국 교사의 월급이 50엔인 것을 감안하면 현대 기준으로 1척에 적어도 1조 엔(한화 10조 원)씩 쏟아붓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것은 야마토 단 1척으로 일본 고속철도인 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 전체 구간을 건설 가능하다.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다른 일본 대형함들과 비교해보자면, 쇼카쿠급 항공모함이 8,500만 엔, 다이호가 1억 엔, 운류급 항공모함이 9,000만 엔. 여기서 비용 절감 양산형인 운류급이 쇼카쿠급보다 비싼 이유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나노의 1억 4천만 엔도 이 영향을 받았고, 전쟁 이전에 건조된 야마토와 무사시는 그보다 조금 적은 1억 1천만 엔 정도다. 이런저런 사유를 감안해도 엄청난 건조비로 폭주하는 군사비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건함경쟁이 있을 당시 47%대까지 증가하던 군사비가 워싱턴 해군 조약 이후 28%대로 급락하는 것만 봐도 전함 건조가 국가재정에 얼마나 압박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전쟁으로 일본 제국의 경제가 개판이 되고 더불어 미드웨이에서 일본군 항공모함들이 격침되자 1940년부터 만들어 1945년에 취역하려던 3번 함 110호는 1942년 6월 건조를 중단하고 함포 대신 비행갑판을 깔아서 항공모함으로 개조했는데 이것이 시나노(信濃)다. 이미 선체의 45% 정도를 완성했으나 개장하게 된 이유는 표면으로는 항공전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실제로는 건조에 필요한 인력과 작업 공간 부족 및 예산의 심각한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실제로도 상황 좋아지면 다시 전함으로 완성하려고 건조 중단 후에도 도크에 방치하는 바람에 해당 도크에다가 운류급 항공모함 2척을 건조하려고 했을 때 건조중의 선체를 철거하려면 폭파해체가 필요한데 그러면 도크가 무너진다는 이유로 인해 운류급 항공모함 2척의 건조를 취소하고 항공모함으로 개조한다는 계획이 수립된다.
4번 함인 111호는 선체가 30% 정도 건조 중이었는데, 1941년 12월에 건조 취소 명령이 내려졌다. 역시 예산 부족이 원인이었다. 그나마 111호는 부품도 일부 만들어진 상태라서 111호 용 부품과 자재는 야마토급 전함의 수리 보수용으로 사용되거나 시나노 건조에 사용되었다.
111호의 정식 함명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후보 이름은 구 번국명 중 오와리, 미카와, 사누키 등 여러 가지 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전후 공개된 해군 자료 내용 중 키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키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참고로 키이는 당초 88함대 계획 5번째 전함에 붙여질 예정이었다.
3.2. 5번 함 (개 야마토급)[편집]
5번 함인 797호함은, 야마토의 155㎜ 부포를 완전히 없애고 98식 10cm 65구경장 함포의 개량형인 100㎜ 대공포를 다수 장착하는 설계였다. 대공화력을 강화한 전함이었지만 건조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으며 이유는 역시 예산의 부족이 주요 원인이었다. 건조를 위해 준비했다가 남은 자재는 역시 시나노 등 다른 함선의 제조에 사용되었다.
현측장갑과 갑판 장갑은 각각 400, 190mm로 야마토급에 비해 10mm 줄어들었지만 함저의 방벽은 이중에서 삼중으로 강화되었다. 그리고 주포를 50구경장으로 바꾸는 방안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어 위키 참조.
797호함의 정식 함명은 없다. 전후 해군학자들의 함명 예측에 따르면 개 야마토급 및 초 야마토급은 옛 키이급에 예정된 함명에 따라 오와리, 스루가, 오미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당시 일본 해군 전통상 함명은 진수식에서 천황이 직접 명명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4번 함 이후는 어디까지나 예정일 뿐 정식 함명이라고는 볼 수 없다.
3.3. 6, 7번 함 (초 야마토급)[편집]
일명 798호 함과 799호 함은 초 야마토급, 슈퍼 야마토급으로 불리기도 하며, A-150 전함 설계안에 따라 만들어지려 했으나 예산 낭비로 판단되어 취소되었다.
4. 대단한 스펙[편집]
더 강력한 화력을 추구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큰 대구경인 함포(460mm = 18.1인치)를 탑재하고 기준배수량만 6만 톤이 넘는 이 거대전함은 그 존재 자체로 거함거포주의의 극한을 추구했으며, 후소급과 공고급 전함을 비롯해 다양한 군함들을 건조하며 축적한 건함 기술과 당시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을 집대성해서 만든 물건인지라 적어도 카탈로그상으로는 타국의 슈퍼 드레드노트급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설계 사상만을 놓고 보면 매우 평범한 전함이다. 더 높은 화력을 추구하기 위해 더욱 커다란 포탑을 탑재하고, 커다란 포탑을 싣기 위해 더 큰 배를 만들고, 그렇게 커져 버린 몸집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도 두꺼워지는 식. 단순히 화력만을 위해 포신을 늘리거나 포탄을 개량함과 같은 동 시기의 다른 전함과 비교하자면 정말로 전함의 정석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야마토는 분명 세계 제일의 스펙을 지닌 전함이었지만 이는 전함의 정점, 피크에 달한 것이다.
4.1. 구조[편집]
기존 전함들을 운용하면서 생겼던 문제점들을 뒤늦게나마 야마토급 설계에 적용했기 때문에 개선점이 많이 보인다.
- 최대급이면서 배수량을 최대한 억제
- 3연장 주포탑 채택
- 연돌 집중화 및 위치선정 최적화
- 360도 선회식 부포탑 도입
- 대공 무장 강화
- 함체 성능향상
- 각종 시설 첨단화, 고급화
4.2. 무장[편집]
압도적인 규모에 걸맞게 탑재한 무장도 일본 제국은 물론 열강의 주력 전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우선 주포는 일반적으로는 18인치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는 18.1인치이다. 1인치가 2.54㎝이니 야마토의 주포는 정확히 460㎜이므로 18.1인치가 맞다. 이는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주포 구경 제한인 14인치는 물론이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주포 구경 제한인 16인치조차 넘어선 것으로, '함선에 장착된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함포로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그러나 바로 아래 구경과 그리 큰 격차라고는 못하는 것이 2위가 겨우 0.1인치 작은 18인치 포이기 때문이다. BL 18인치 Mk 1이라는 영국의 함포인데, 퓨리어스라는 순양전함에 장착되었다. 심지어 탄두 중량은 더 무거웠다. 퓨리어스는 진수식 이전에 개장되어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이 되었고 HMS 제너럴 울프와 HMS 로드 클라이브라는 모니터함이 이 포를 물려받았다. 다만 해당 함포는 단장 주포탑이고 야마토급은 3연장 주포탑이므로 전체적으로는 차이가 크다.
함선으로만 한정하는 이유는 지상 병기중에서는 유명한 구스타프 열차포(800㎜)를 비롯하여 칼 자주박격포(600㎜), 리틀 데이비드(914㎜, 36인치), 차르 대포(890㎜)같이 흉악한 구경을 가진 괴물 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량에 연연할 필요가 그다지 없는 대구경 열차포나 구식 화포였기 때문이었기에 운송과 발포가 가능했다면 구경은 큰 상관이 없었다. 열차포에 주로 쓰이는 구경이 보통 중순양함 급인 구경 240㎜ 급이었고 전함급인 300㎜나 400㎜ 급도 소수 제작되어 쓰였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 건조에 매우 공을 들였기 때문에 미국 등 해군 열강이 기존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제한을 넘는 전함 건조 동기를 못 유발하기 위해서 '94식 40㎝ 포'라는 명칭을 붙여서 16인치급 주포로 위장하였다. 이런 위장은 이전의 사례가 존재하는데 나가토급 주포는 16인치(406mm)보다 근소하게 큰 41cm인데, 워싱턴 조약 이후로는 서류상 그냥 40cm으로 표기했다. 포신에 각인된 四十一糎를 四十糎로 고쳐야 했다.
덕분에 미군은 이 460mm 주포를 레이테 만 해전 이후에나 완전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 이전에 포로를 통해서 18인치 주포를 장착한 전함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무사시와 야마토를 근접 목격한 후에 18인치라는 것을 확실시 했다고 한다. 출처(영어) 심지어 탑승했던 일본군 수병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야마토의 포를 400mm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구경의 차이를 알기 힘든 이유는 원래 40cm와 46cm는 15% 정도의 차이이므로 멀리서는 구경 자체를 확인하기 힘들고 겉에서 보이는 것은 포신의 굵기 정도이다. 가까이서 보더라도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자를 대고 재 보지 않는 이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냥 똑같이 무지막지하게 큰 대포로 보일 뿐. 하지만 저 정도 차이는 위력에서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단순계산도 완전히 같은 구조인 포의 구경이 저정도 커진다면 탄두 부피=중량은 1.15의 세제곱이 되어, 50% 이상 커지며 탄속도 같다고 가정할 경우 운동 에너지도 같은 비율로 증가한다. 실제 탄환은 동일 비율로 커지지 않지만 내부의 장약량은 그보다 더 큰 비율로 커진다.
18.1인치 주포라는 당시 해군 조약이고 표준 규격이고 뭐고 다 씹어먹는 괴물같은 물건이 당연히 기성품으로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일본 제국이 자체로, 그것도 비밀리에 개발해야 했으므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서 주포 제작에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긴축법(自己緊縮式, Autofrettage)이라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포신 내경을 구경보다 약간 작은 상태로 가공해 포신 내부에 고압의 압축수를 채워 가압을 시키면서 내경을 팽창시킨다. 이렇게 하면 포신에는 내경을 수축시키려는 응력이 발생하여 잔류된다. 이 잔류 응력은 포탄이 발사될 때, 폭압에 의해 팽창하려는 응력과 반대 방향의 응력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포신에 걸리는 응력이 상쇄된다. 이로 인해 같은 재질도 포신 두께를 얇게 할 수 있어 제작비용 및 중량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초기에는 영국으로부터 습득한 소감식(焼嵌式, shrinkage fit) 포신 제조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포신을 내통과 외통으로 2층 구조로 하여 외통을 가열해 열팽창시킨 상태로 내통을 집어넣어 급냉시키고 외통을 수축시켜 단단히 조인 상태로 고정된다. 이것은 중소형 포신의 제조에 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대구경 함포의 경우는 강선식(鋼線式, gun wire) 포신 제조법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소감식과 같은 방식이나 내통의 표면에 건와이어(gun wire)로 불리는 강선을 고장력을 걸친 상태로 감아서 외통을 씌우는 타입으로 주로 대구경 포신의 제작에 이용되었다.
그래서 야마토급 주포 제작은 여러 가지 기술이 결합된다. 일단 94식 45구경 460mm 포신은 안쪽부터, 1A 내통, 2A 강통, 3A 강통, 4A 건와이어, 5A 강통인 5개 레이어 구조였다. 각각의 강통은, 소감법을 이용해 압축 응력을 갖게 하여 기본으로는 소감식이지만 강선식(鋼線式)과 자긴식(自緊式)이 동시에 적용되기도 하였다. 참조로 건와이어는 두께 1.5875㎜, 폭 6.350㎜를 사용하였다. 한마디로 종합하자면 가장 강력한 함포를 만들기 위해 당시 일본 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이란 기술력은 총동원된 것이다.
전함용 3연장 주포탑을 결국 완성했지만, 타국 전함들도 겪었던 3연장 주포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떠안았다. 실제로 야마토는 일본군의 다른 전함보다 명중률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다연장 주포를 장착한 전함들에게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조준 장비의 개선이나 주포 및 구조물 개선으로 해결한다.
이후 초기의 1km에 달하는 산포계는 전쟁 중 개선으로 인해 전후 US Naval Technical Mission to Japan report O-45(N) Japanese 18” Gun Mounts 기록에 따르면 최대 사거리, 대강 40km 정도로 연습 사격에서 일제사격에서 500(457미터) ~ 600야드(548미터) 정도인 산포계였다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다른 주포들처럼 어느 정도 개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록은 야마토 침몰 당시 포술사관이었던 쿠로다 대좌의 인터뷰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가키 마토메의 전중일기인 전초록은 이 3연장포가 당초에는 엉망이었으나 연습 사격시 35km에서 300미터(원근) 수준의 살포계를 얻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밈과는 달리 그렇게까지 나쁜 수준인 살포계는 아닌 것이다.
건조중은 물론 종전될 때까지 실제 스펙을 기밀처리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고, 성공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 신형 전함의 주포 구경이 18.1인치인 줄은 몰랐고, 맞서 건조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여 "16인치 주포를 탑재할 수도 있는 14인치 포격전함"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함대결전사상에 따라 일본군이 생각한 함대결전은 미국 전함 중 어떤 전함도 1대 1 승부가 불가능하리라고 예상되었다.
여담으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시찰을 나왔을 때에도 상세한 정보 제공을 거절했으며 레이테 만 해전 등에서 야마토를 지휘하에 뒀던 구리다 다케오 중장도 전후 야마토의 주포가 460mm인 걸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9] , 야마토가 속했던 2함대의 포술참모 미야모토 다카오 대좌도 비슷한 진술을 했다.
부포도 일본제국 입장에서는 기적의 성능이라고 볼 수 있는 155㎜/60구경장 3연장 포탑인데, 해당 포탑과 함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탑재되어 아주 잘 쓰인 물건이며, 나중에 모가미급 순양함이 8인치(20.3cm) 주포탑을 탑재할 때 8인치 주포탑이 연사력, 사정거리, 명중률 면에서 모두 불리하므로 교체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로 성능이 우월한 제품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360도 선회포탑인데다가, 함체 중심선상에 배치되므로 기존의 다른 전함처럼 적이 한쪽 측면으로 붙으면 다른 쪽 부포가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를 막고, 적은 부포 수량으로 충분한 방어가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쓰였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개량을 추가로 해서 장착했고, 나중에 대공포 증설시 철거되지만 함체의 양 측면에 동일한 부포탑이 1기씩 총 2기가 추가 탑재되었으므로 건조 당시의 부포 화력은 어떤 일본군 전함보다 우세했다.
대공포도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와 96식 25mm 고각기총 등의 탑재 수량이 초기부터 많았다. 다른 일본 전함들은 대구경 대공포로 공고급부터 나가토급까지 예외없이 89식 대공포 8문이 전부였던 반면, 야마토급은 건조 당시 12문의 89식 대공포를 갖추었고 나중에 증설을 통해 89식 대공포를 24문까지 늘려 동시대의 미국 전함을 살짝 능가하는 수량의 대구경 대공포를 갖추었다. 그리고 대공화력 증강에 힘써서 필리핀 해 해전 이후 날로 증강되는 미군 항공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증설을 거듭한 결과 나중에는 200여 문에 가까운 수량을 탑재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전함에 가장 좋은 대공포를 탑재했었으므로 대공 능력 면에서는 함재기를 자신의 엄호에 사용 가능한 항공모함을 제외하고는 일본군의 어떤 함선보다도 뛰어났다.
4.3. 장갑[편집]
야마토급 전함의 또 하나의 장점은 장갑, 그것도 엄청난 떡장갑이다. 기준 배수량만 아이오와급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배수량답게 주포 포탑의 전면장갑 두께부터가 무려 660㎜(약 26인치!) 측면장갑은 410㎜, 즉 16.1인치. 그것도 경사장갑이었다. 갑판은 상부 200㎜, 하부 226.5㎜로 8인치급인 미친듯한 떡장갑을 자랑했다.
그리고 포탑의 전면장갑이나 현측의 측면장갑 등 중요부위는 워낙 두꺼운 관계로 기존의 VH강을 사용했으나 갑판장갑등 200㎜ 이하의 두께를 가진 부위는 가급적 NVNC(New Vickers Non-Cemented)강이라는 특수강을 적용했다. 같은 시기 다른 전함들이 가장 두꺼운 곳도 13인치 대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얇은 게 아니다. 실제로 주포탑 천장에 250kg 급 폭탄이 떨어져도 관통이 안 되었고 전혀 손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사용해온 VC강철의 제조 과정은 무쇠 → 용해 → 압연 → 침탄 → 표면 담금질이며, VH강철은 상기의 침탄 작업을 생략한 표면 경화층만의 장갑판인 데 반해, NVNC강철은 침탄 이후의 작업을 생략한 균질압연장갑이면서도 특수강이었으므로 생산공정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시간 절약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방어력을 증대하는데 성공하였다.
어뢰 대응 면에서도 벌지를 처음 건조시부터 장착해서 나중에 벌지를 추가한 전함처럼 덕지덕지 붙은 벌지가 함선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현상을 안 겪었으며, 그 양과 질도 스펙상으로는 높은 편이었다. 일본의 제철 기술이 연합국에게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는걸 감안해도 카탈로그상으로는 그야말로 최강이었다.
3번함 시나노를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면서 포탑 전면 장갑판이 잉여로 남았는데, 2차대전 종전후 U.S. NAVAL PROVING GROUND(미해군실험장)에서 이 포탑으로 1947년 11월 관통실험을 벌였는데 그 실험결과는 아래와 같다.
* 철강의 재질(PLATE MATERIAL)
Japanese Vickers Hardened (VH) face-hardened, non-cemented armor (used only on YAMATO-Class battleships)
일본 NVNC (New Vickers Non-Cemented) 표면경화 강판 (야마토급에 적용됨)
* 철강의 품질(STEEL QUALITY)
Steel had many tiny pieces of dirt and so forth, being about the same as pre-WWI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 armor steel in quality (VC was used for the first time in the Japanese battleship IJN KONGO, built in Britain, and manufactured in Japan under license thereafter), from which the unique Japanese armors New Vickers Non-Cemented (NVNC), the homogeneous, ductile form of VH used in a number of Japanese post-WWI warships, and VH itself was derived (this steel was not up to U.S., British, or German post-1930 steel quality).
검사에 적용된 철강은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하고 있고, 그러므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영국에서 생산하였던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의 방어 장갑용 강철(armor steel)과 품질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사료된다. (VC 철강은 전함인 공고(金剛)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영국에서 건조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기술 제휴로 생산하게 된 제품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New Vickers Non-Cemented (NVNC)"라는 제품으로, 균일(homogeneous)의 연성재질(ductile)의 VH강으로 WWI 이후에 건조된 일본의 함선에 채용되었으며, VH강의 물성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NVNC라는 철강재는 미국, 영국 또는 독일에서 사용하던 1930년대 이후의 강재보다는 열등하다.)
Carbon content was raised above VC steel level to increase ease of hardening, some copper added to allow some nickel (in short supply in Japan) to be removed (but not much), slight amount of molybdenum added to increase hardenability still more, and the cemented (carburized) thin surface layer used in VC (and in most other, foreign face-hardened armors) was eliminated with no loss of resistance from VC quality (a good design point). Surface of plate face was very smooth, unlike rough, pebbly surface of cemented plates, such as U.S. Navy Class "A" armor.
상기의 VC강의 재질의 경도강화(hardening)를 쉽게 하기 위하여 탄소(carbon)함유량이 증가되었고, 일정량의 구리(copper)를 첨가하여 다소 니켈(nickel, 당시 일본에서는 공급 부족) 성분이 부족한 것을 대체하였으며, 경도강화성(hardenability)을 올리기 위하여 소량의 몰리브데넘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VC강에 사용된 침탄(浸炭) 처리된(cementation- carburized) 얇은 표면층은 VC강에서 (그리고 다른 이종표면강화(foreign face-hardened) 강판에서도) 품질의 저하 없이 제거되었다 (디자인 면에서 아주 우수한 점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A-클래스 강판과는 달리 표면이 아주 매끈하게 유지되었다.
* 결론(CONCLUSIONS)
The U.S. Navy Ballistic Limit (complete penetration minimum velocity with this projectile at normal) estimated at 1839 feet/second (560.5m/sec), plus or minus 3%, which gives it about a relative plate quality of 0.839 compared to U.S. Class "A" armor (estimated, as no such super-thick plate was ever made in the U.S.). This was about the same as the best WWI-era British KC-type armor, which was what the Japanese were trying for--they had not attempted to make improved face-hardened armor, as the U.S. Navy did during the 1930's, for actual ship installation.
"U.S. Navy Ballistic Limit 社"는 시험용 포탄(projectile)이 최소 탄속(彈速)에서 피사체를 완전관통(complete penetration) 하였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560.5m/sec (±3%) 탄속(彈速)에서 미국의 표준 A-클래스 강판을 100% 기준으로 상대 품질 정도를 83.9%로 사료된다. (추정치, 미국에서는 일본처럼 그렇게 두꺼운 강판을 생산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1차 세계 대전 이전 생산되었던 최고 성능의 영국 KC-type의 강판과 동일한 수준이고, 일본이 영국과 기술 제휴로 보유하고자 하였던 것이며, 일본은 미국이 1930년대 실제 건함(建艦)용으로 개발하였던 이전보다 개선된 표면강화 강판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고 KC-type의 강판의 수준에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The plate was excessively brittle internally, with too much "upper bainite" crystal structure due to too-slow cooling. This was due to using the same pre-WWI British Vickers KC-type armor-hardening techniques on plates over 17" (55.8㎝) thick, for which they were never intended. This problem was solved during WWII, but no more VH was ever made except for some thin experimental plates. Brittleness did not seem to reduce resistance to penetration, though cracking might cause problems due to hits that ricocheted off.
시험에 사용된 강판은 내부적으로 과도한 취성(brittle, 잘 깨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고, 저속냉각에 기인한 "upper bainite" 결정조직을 갖고 있다. 이것은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의 "Vickers KC-type armor" 강판의 17" (55.8㎝) 이상의 중후판의 경화 기술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중후판에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내부 취성의 문제는 2차대전 동안에 해결 방안이 개발되었는데, 그러나 실험용 강판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VH강은 생산되지 않았다. 취성(Brittleness)으로 인해 피탄 시의 저항력이 감소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포탄을 튕겨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cracking)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Note that one of these experimental plates 7.21" (18.3㎝) VH plate NPG #3133 was patterned on Krupp KC n/A (probably from data traded with Germany during WWII) and was tested by the U.S. Navy at the NPG using 335-pound 8" Mark 21 Mod 3 and Mod 5 (the latter with the super-hard AP cap, which turned out to be required to penetrate that plate intact) during this same test series. It was found to be THE BEST PLATE OF ITS THICKNESS RANGE (6-8" (15.2-20.3㎝)) EVER TESTED BY THE U.S. NAVY, even though its steel was of the same rather poor quality as the other VH plates tested!!! This caused the U.S. test conductors to state that obviously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it took to make a high-quality Class "A" plate, since the 7.21" VH plate should not have been so good from everything they thought they knew about face-hardened armor!!! Obviously the Japanese could make armor as good as anyone if the specifications had required it!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실험용 강판 중에는 18.3㎝ 두께의 "VH plate NPG #3133"이 독일의 Krupp社에서 KC n/A강으로 특허를 내었다. (아마도 일본과 독일이 기술자료를 공유하여) 그리고 이 강판은 미해군에 의해서 NPG에서 335-pound 8" Mark 21 Mod-3와 Mod-5 함포로 실험이 실시되었는데(Mod-5 함포의 경우는 이 신형 VH 강판의 관통하기 위해 특수강화 관통용 철갑탄(AP)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미 해군이 실험해본 모든 15.2~20.3㎝ 두께의 강판 중 가장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기한 품질이 떨어지는 VH강으로 제작된 강판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실험자들이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고품질의 A-클래스 강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 7.21"(183㎜) VH 강판은 우리의 표면경화 강판 관련 지식에 의하면 이정도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백히 일본은 만약 사양서(specification)에서 요구를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장갑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At about 40,000 yards, the U.S. Navy 16"/50 firing a 16" Mark 8 Mod 6 AP projectile (the later Mod 7 and Mod 8 designs were post-WWII, so I usually do not count them and they were no better ballistically, to my knowledge) will hit at about 45° downward angle and 1607 feet/second (489.8 m/sec). Just as with a point blank hit at 2500 feet/second (762 m/sec) and 45° obliquity, this hit too will barely hole the plate as the projectile is hitting at 0° (normal) obliquity, though not completely penetrate it. Any slight barrel wear will lower the muzzle and striking velocities and no holing will occur at THESE OR ANY OTHER ranges, as mentioned. However, this is so far above any real fighting range (even with radar it is hard to see the target due to the earth's curvature interfering, especially in any kind of imperfect seeing conditions) that I do not even consider it in my computations, while putting the gun barrel up to almost touching the enemy turret is also a pipe dream in real life! Thus, no holing or complete penetrations, ever, though possibly some cracking of the plate and possible jamming of the turret if the crack-off plate piece is dislodged badly enough.
약 4만야드의 거리에서 미 해군의 16"/50 주포가 Mark 8 Mod 6 AP탄을 발사할 경우 (Mod 7과 Mod8은 대전 이후이며 탄도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없음) 1607피트/초의 속도로 45도로 떨어진다. 이 경우 0도의 입사각을 가지므로 영거리에서 2500피트/초와 45도 입사각과 마찬가지로 강판에 구멍을 낼 수 있지만 완전히 관통할 수는 없다. 약간이라도 주포에 마모현상이 있을 경우 속도를 낮추게 되므로 어떤 거리에서라도 구멍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4만 야드는 실제 교전거리를 아득히 상회하므로 비현실적이며 영거리 사격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전에서 구멍이 나거나 완전 관통될 가능성은 없으며 강판에 균열이 가거나, 그 균열로 인해 포탑이 고정될 가능성은 있다.
Therefore, these plates are the only warship armor plates that could not be completely penetrated by ANY gun ever put on a warship when installed leaning back at 45°, as they were in the actual turrets!!! Even to completely hole the plate all the way through at that inclination requires a brand new 16"/50 Mark 7 or German 38cm SK C/34 gun at point-blank range firing the latest versions of their respective AP projectiles; it might be cracked at a lower striking velocity, but no hole put entirely through it! AND THEY SAID GUNS HAD COMPLETELY OVERMATCHED ALL ARMOR--*NOT SO*!!!
결론적으로 이 강판은 실제 탑재된 대로 45도 경사로 설치될 경우, 실존 전함에 탑재되었던 그 어떤 주포로도 관통이 불가능하다. 45도 입사각으로 이 강판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최신 주포인 미국의 16"/50 Mark 7 나 독일의 German 38cm SK C/34를 영거리에서 최신형 철갑탄을 장착하고 쏠 필요가 있다. 더 낮은 속도로도 균열은 갈 수 있지만 구멍이 날 일은 없다! 주포가 장갑을 완전히 능가했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 요약
야마토급 전함의 강판은 1차대전 이전의 구식 강판과 비슷한 구조를 가졌으나 그런 것 치고는 방어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는데, 일본은 이를 자력으로 해결할 정도의 엄청난 기술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강판에 적용하여 구식 구조의 강판을 초월적으로 강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만일 이 강판으로 45도 경사로 적용하여 완전히 무장했을 경우 모든 실존 전함들의 주포를 동원해도 뚫을 수 없으며, 이 경사형 강판을 뚫기 위해서는 당대 최신의 주포를 탑재하여 최신예 철갑탄을 장착한 후 영거리 사격을 이용해야만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방어력을 갖춘 것이다!!!
16인치 45구경장 Mark 6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주포로 위 보고서를 보면 알겠지만 0°도 놓고 사격했다고 나온다. 주 장갑판은 경사각을 준 상태로 함선에 장착되었으며 실제 경사인 45도를 고려하면 단순 수직환산으로도 900mm대는 간단히 넘는다. 실전상황에서는 관통이 안된다는 이야기다.
혹시 SHS의 특성을 살려 장거리 고각 사격을 하면 경사장갑의 효과를 줄일 수 있으니 근거리 사격보다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 할 수 있겠지만 포탄은 어쨌든 가장 에너지가 가장 많을 때는 포신에서 바로 나왔을 때이다. SHS의 장거리 사격시 갑판 타격 능력은 출중하지만 포탑 정면과 같은 주장갑판을 뚫기에는 좀 부족하다.
다만 실험을 위해 16인치 Mark 6 주포의 포구초속을 굉장히 낮춘 상황이었다.(새 주포의 701m/s 대 560m/s). 물론 nathan okun의 사견처럼 16인치 Mark 7 주포(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라면 영거리에서는 뚫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전함과의 전투에서 영거리 사격 자체가 비현실적이므로 야마토급의 포탑 전면장갑은 관통불가라고 보면 된다.
물론 포탑 전면과 비교도 안 되게 넓고 피탄 확률이 가장 높은 선측 주 장갑대는 410mm에 불과하므로 관통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16인치 포탄을 상대로는 대응방어에 따른 안전구획인 20km ~ 30km은 충분히 달성한다. 따라서 실전에서는 목숨걸고 근접해서 포격하거나 초원거리에서 포탄의 비를 뿌리지 않는 한 16인치급으로는 답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주포탑이 아닌 부포탑 장갑. 왜 부포탑 장갑이 문제가 되는지는 문제점 문서에서 다룬다.
4.4. 속도[편집]
야마토급 전함의 평속에서 최대 속도는 27노트까지 가능하고, 과부하를 걸면 29노트까지 가능했다. 이는 2차대전 당시의 최신예 고속전함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은 이미 30노트를 내는 공고급 순양전함이 4척이나 있으며, 나머지 전함들의 속도는 개장해서 25노트로 맞췄기 때문에 그 이상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방어력 향상과 손상 시 전체 출력이 모두 나가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보일러와 기관을 분산해서 보일러 - 기관 - 보일러 - 기관 식 교차배치를 했다. 이것은 그 당시 최신예 전함들이 하나같이 채용했으므로 시대의 흐름에도 부합했다.
또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폭이 제한되는 미국 전함과 달리 일본 제국은 드넓은 태평양에 자신의 군함들을 가로막을 육상 지형이 없었으므로 야마토는 그러한 제약을 받지 않고 설계되어 폭을 넓게 만들어서 능파성도 우수했다.
4.5. 장비 및 함내 복지[편집]
일본의 가장 강력한 전함답게 각종 전투용 장비도 일본의 관련 기술 중에서도 가장 최신이었으며 사격통제장치도 뛰어난 편이었다. 광학측거가 15m 측거의로 불리는 것이었는데 렌즈간 거리가 15.5m에 달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종류인 마이크로미터는 렌즈 간의 거리가 멀수록 성능이 좋아지는데, 일반 일본 전함도 고작 5m급 물건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전대미문의 고급 물건을 탑재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성품은 있을 리가 없어서 일본광학(日本光學)[10] 에서 특별히 연구해서 제작한 물건으로, 당시 일본의 광학 기술이 집대성된 물건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의 개량은 레이더까지 탑재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적의 레이더 전파를 탐지해서 경고를 알려주는 전파탐신기(電波探信機)는 1호 3형(1号 3型)이 2기가 장착되었고, 대공레이더로는 2호 1형 레이더가 2기, 수상용 레이더로는 2호 2형이 2기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탐지거리는 항공기면 편대로 비행시 100㎞, 단기로 비행시는 50㎞이었으며, 수상목표물의 경우 전함은 마스트 높은 곳에 레이더를 장착하므로 동급으로도 35㎞까지 탐지가 가능했다.
공/방 전투력 뿐만 아니라, 그 덩치에 걸맞게 승조원들 특히 수병들의 생활 시설 등도 그때까지의 일본은 물론 타국 해군의 열악했던 수준을 벗어나 '해상 호텔'이라 불릴 정도인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당시 함상 생활은 전원 침상이 구비되어 있던 미국 해군 등을 제외하면 장교나 CPO급 되는 상급 부사관이 아닌 하급 부사관과 수병들은 '아무데나 해먹 걸고 자는 것이 기본이었다. 해먹의 숫자가 얼마나 많으면 파편방어용을 겸할 목적으로 아카기나 카가, 시마카제 등 일본 군함의 함교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물체들이 전부 해먹이니 말 다할 수준이다. 선진 해군이던 영국 해군도 해먹을 다수 사용해서 경순양함 벨파스트 박물관에도 수병들이 해먹을 사용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되려 독일 등 타국 해군들이 접이식이나마 수병 침대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인 부분이다. 야마토급은 일본 해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승선하는 모든 수병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침대가 구비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나름대로 고증을 빠삭하게 조사한 남자들의 야마토 같은 21세기 영화에서는 침몰을 앞둔 최후반임에도 수병들이 해먹을 걸고 자고 전투훈련과 배치시 함교에 열심히 건다.
또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장교식당 주방에는 요리사가 징용되어 함내의 요리를 책임졌다. 게다가 그냥 요리사도 아니고 전쟁 전에 세계 주요 항로를 오가던 일본 해운사들의 호화 여객선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 전문가중의 전문가다. 거기다 함장 전용 취사 담당 및 준사관 이상 취사실에는 전기 냉장고가 있었고, 하사관과 수병용 부식들을 위해서 식료품 보관용 대형 냉장고가 있었다고 한다. 용량도 커서 야마토의 식료품 냉장고의 동력은 80,000kcal, 50마력의 터보식 냉동기 4대의 일부였던 데다 식료용 냉장고의 터보식 냉동기는 히타치 제품이었다고 말하는 증언도 있었다고 한다. 자매함 무사시는 야마토는 없는 자동 주먹밥 제조기가 설치되어 한번에 10개씩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일본 제국 육군보다 평균적으로 식사가 좋았다는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야마토와 무사시의 식사는 훨씬 좋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42년에 트럭섬에 해군과 연락차 방문한 대본영 파견참모 츠지 마사노부 중좌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의 면담 후 야마토에서 도미 소금구이와 도미회 그리고 차가운 맥주를 대접받아 매우 감격했다는 등 당시 야마토를 방문한 육군 장교들이 야마토함의 식사에 놀랐다는 일화가 많았다고 한다. 패망에 가까워진 해에도 야마토함의 수병이 "카레라이스가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좋은 것을 먹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라고 회고했으니... 카레라이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 일본 수병이 먹은 식사는 매운 카레라이스와 바나나, 사과가 들어간 마카로니 사라다였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전쟁 말기, 즉 1944년 ~ 1945년에는 일본의 물자 부족이 정말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아는 수병이 해당 메뉴를 특식같이 생각하는데 그게 일반식같이 잘 보급되니 감탄한 것이다. 다만 저거 먹고 배가 침몰할 때 전사했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하러 가다가 미 해군 항공기들에게 격침당하기 전에, 정확히는 점심식사 이전에 전투태세에 들어가면서 전투배식으로 나온 오니기리 2개를 먹은 승조원도 있고 못 먹은 승조원도 있다고 한다. 거기다 침몰한 날의 저녁식사 메뉴로 팥찰밥 통조림과 쇠고기 통조림이, 야식은 단팥죽이라는 제법 푸짐한 메뉴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야마토의 식사에 관한 이야기.
당시 일본 제국은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기시 노부스케(당시 군수차관) 같은 고위 정치인이 버터 바른 군고구마를 자주 먹지 못하는 별미로 손꼽을 정도였다. 일반 국민은 물론, 일본군도 대부분이 굶주리는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짜 대단한 일이다. 이 당시를 다룬 쿠로야나기 테츠코의 자전성 소설 '창가의 토토' 중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면, 시중에 기호품이 거의 나돌지 않아 캐러멜 자판기가 빈 깡통이 되어버렸다든가, 궁핍한 상황에서 음악을 했던 저자의 아버지로 하여금 전선으로 위문공연을 가면 가족에게 많은 식량이 배급나올 거라는 제안이 온다든가, 전선으로 나가는 학교 용무원 아저씨를 송별하며 '대단한 음식' 인 구운 오징어로 연회를 한다든가 하는 부분이 나온다.
사실, 이건 당시 일본 제국의 정책 방향 중 하나였기도 했다. 당시 일본 제국은 미군의 기뢰밭과 폭격기밭을 무사히 뚫고 돌아온 보급선에서 가져온 물자를 군인들에게 최우선으로 보급하고 있었다. 그런 호화식단의 결정체가 바로 아이스크림과 라무네. 보급품 뿐만 아니라 함 내 소화전(=탄산가스 발생 장치)을 이용한 싸제(...) 라무네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야마토급에 비하면 양이 적기 때문에 야마토 쪽에서 만든 싸제 라무네가 인기를 끌어서 야마토급이 대표적인 싸제 라무네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이건 미군도 마찬가지였는데 경순양함 이상급 함정에 탄 경우 소화전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로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대우를 받았던, 야마토급 전함 승조원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던 것에 대해 기밀 엄수를 강요받았다. 야마토급 전함 승조원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던 일본군은 수상함보다 시설이 열악하기에 그만큼 대우는 더욱 후하게 해줬던 잠수 항모 센토쿠급 승조원들[11] 이나 군 병원 부상자들[12] 정도였으니 사실상 제국 내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여객선 출신 요리사 말고도 민간인 출신 군속들(이발사 3인, 재봉사 1명, 세탁공 1명)이 승선해 있었다고 한다.출처 당시 영국 해군도 함내 PX 운영을 해군과 계약을 맺은 민간인들을 일종의 계약직 군무원으로 고용해 해결했으니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일본 해군 기준으로 저렇게 많은 전문가 민간인이 승선한 거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또한 야마토는 연합함대의 기함 역을 수행하다 보니 각종 고관들이 방문할 때가 많았고, 이를 위한 만찬도 빈번했다. 이를 위해 야마토의 급양관은 호텔급 정식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만찬 때는 함의 군악대가 식사에 어울리는 음악을 연주해 줬다고 한다. 이는 야마토 이전에 기함이던 나가토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도 연출되었다.
5. 문제점[편집]
자세한 내용은 야마토급 전함/문제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실전[편집]
자세한 내용은 야마토급 전함/실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야마토급 전함/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함장들[편집]
일본어위키 야마토에 야마토 함장 6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아래 내용은 일본어 위키를 참조했다. 아래에 서술되었듯이, 영문위키에 실린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야마토에 부임한 함장은 6명이다. 1대 함장은 미야자토 슈토쿠(宮里秀徳)이다. 1941년 12월 16일에 야마토가 취역하기 전에 자리를 옮겼지만, 일본어 위키에 따르면 해군역사보존협회가 발표한 '일본 해군의 역사'에 야마토 초대 함장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2대 함장은 다카야나기 노리하치(高柳儀八)로 1941년 11월 1일부터 야마토 함장이 되었다. 날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사람이 야마토 취역 시에 함장이었기에 야마토 초대 함장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3대 함장은 마쓰다 치아키(松田千秋)로, 1942년 12월 17일부터 함장 자리에 있었다. 그는 야마토 함장이 되기 전인 1940년에 총력전 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이 패배한다는 예측을 한 그곳이다. 야마토 함장을 지낸 후인 1944년 5월 1일에는 4항전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이세급 전함에 타고 레이테 만 해전에도 참전했으며 북호작전의 성공을 이끌기도 했다. 야마토 함장 중에서는 상당히 승진한 인물이라 그런지 영문위키에도 등재되어 있다. 영문위키 마쓰다 치아키 참조.
4대 함장은 오노 다케지(大野竹二)이며, 1943년 9월 7일부터 함장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1943년 12월 25일에 야마토가 미 해군 발라오급 잠수함 스케이트의 어뢰 1발에 명중당하고 3000톤의 물을 먹었을 때의 함장이 이 자다.
5대 함장은 모리시타 노부에(森下信衛)로, 그는 1944년 1월 25일부터 11월 24일까지 함장직을 역임했다. 이 기간은 야마토 함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기간이기도 한데,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함재기들을 팀킬하고 레이테 만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패배하고 줄행랑쳐서 작전을 말아먹은 게 바로 이때다. 구리다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구리다 턴을 시전한 후 암살 위협까지 받은 점을 생각하면,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모리시모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그는 야마토 함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2함대 참모직을 받았으며, 야마토가 오키나와로 자살돌격을 했을 때에도 야마토에 승선하고 있었다. 그는 야마토가 침몰할 때까지 배에 머물렀지만, 야마토가 폭발과 함께 침몰할 때 배 밖으로 튕겨나가서 살아남았다. 1960년에 사망.
6대 함장이 바로 야마토 최후의 함장을 지낸 아루가 코사쿠(有賀 幸作)다. 야마토 함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 사람을 가리키며, 유명세 덕분에 야마토 함장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영문위키 아루가 코사쿠, 일본어 위키 아루가 코사쿠 문서가 따로 있다.
1941년 6월부터 아루가 코사쿠는 제4구축대 사령관을 맡았으며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해서 전쟁의 흐름을 바꿔버렸다. 그 유명한 운명의 5분을 만들어낸 전설의 구축함 아라시가 바로 이 부대 소속이었고, 아루가 코사쿠는 사령관 자격으로 아라시에 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미드웨이 해전 당시 코사쿠는 미드웨이해전 당시 아카기의 승무원을 구조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 때 아카기 함장인 아오키 타이지로(靑木 秦二郞)가 자신은 함선과 함께 침몰해서 최후를 맞이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코사쿠가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뜯어말려서 끝내 구조했다. 정작 이후에 코사쿠는 야마토에서 탈출을 거부하며[13] 최후를 맞이했고, 타이지로는 살아서 돌아왔다는 황당한 이유로 왕따를 당하며 항공대 대장 직을 전전하다가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포로 생활을 한 뒤 귀국해서 더 심한 왕따를 당했다.
다만 그가 아라시에 좌승했으므로, 아라시에서 벌어진 전쟁범죄에 책임을 져야 할 자임은 분명하다. 6월 4일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대패한 후, 아라시에 포로로 잡힌 웨즐리 프랭크 오스무스(Wesley Frank Osmus) 소위는 6월 5일에 도끼로 뒷목을 가격당한 후 바다로 떨어졌으며, 간신히 난간을 붙잡고 매달렸지만 아라시 승조원들에 의해 바다로 밀쳐져서 수장당했다. 일본어 위키 아라시 문서(2021년 6월 20일자)에서는 아라시의 승조원들이 이 전쟁범죄의 책임자로 아루가 코사쿠 사령관, 와타나베 함장, 마츠우라 츠토무(松浦勉) 포술장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전쟁 중에 죽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김으로서 처벌을 피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으나, 부하들의 잘못은 상관의 책임이며 아루가 코사쿠는 그날 아라시에 탔던 사람들 중 최고 지휘관이었다. 전쟁 후에 미군이 이 문제로 조사를 했지만 용의자가 모두 죽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아루가 코사쿠가 전쟁범죄자로서 웨즐리 프랭크 오스무스 소위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루가 코사쿠는 1943년 3월에 중순양함 초카이 함장을 맡았고, 말라리아로 병석에 누웠다가 1944년 6월부터 11월까지 어뢰학교에서 교사가 되었다가, 1944년 11월 25일에 전함 야마토의 함장이 되었다. 그리고 1945년 4월 7일, 야마토는 오키나와 특공작전 도중에 미군의 공습을 침몰했다. 아루가 코사쿠는 배와 운명을 함께 했으며, 전사했을 때에는 대좌였지만 사후에 2계급 특진되어 제독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대체적으로 아루가 코사쿠에 대해 호평을 내리고 있으며,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에 실린 '전함 야마토의 최후'에서도 "아루가 코사쿠 함장은 최선을 다했다. 도쿄의 높으신 분들은 아루가 코사쿠 함장이 과연 세계 최대의 전함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지 의심했는데, 그들에게 아루가 코사쿠 함장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고 나오는데, 다수의 어뢰를 피하는 등 상당한 조함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야마토는 침몰했지만, 워낙 불리한 상황이었으니 아루가 코사쿠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어차피 그 상황에서는 누가 몰아도 침몰을 피할 수 없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우수한 함장으로 보이지만, 위에 언급된 전쟁범죄가 발목을 잡는 인물이다.
9. 기타[편집]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만주, 북중국 지역에 세운 호텔 이름이 바로 야마토 호텔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전쟁 이후 압수된 호텔 건물들은 중국에 의해 개명된 후 호텔 영업을 재개했고, 마오쩌둥 같은 중국 정치인들도 묵을 정도인 고급 호텔이었고 지금도 대부분이 당시 건물을 기반으로 영업하고 있다. 호텔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무사시 료칸이란 이름의 료칸도 실존하며,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일본 나라현 텐리시(天理市)에 있는 오야마토 신사(大和神社)와 관계가 있었다. 오야마토 신사는 격으로는 이세 신궁에 버금가는 곳이며, 야마토번에서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신사였다. 야마토번의 이름을 따 야마토가 진수하자, 이름도 똑같은 오야마토 신사에서 분령을 받아 전함 안에 소형 신사를 설치했다. 야마토가 가라앉은 뒤 오야마토 신사에는 사망자 2736명을 조령사(祖靈社)에 모시고 2015년 전후 60년을 기려 '전함 야마토 연고 신사'(戦艦大和ゆかりの神社)라고 새긴 석비를 건립하였다. 크기도 일부러 2736명을 기리는 의미로 1300 x 2736 ㎜로 맞추었다방문기
미군 정찰기가 야마토의 함대를 발견하고는 "거대한 전함 1대와 중순양함들 및 호위함 발견" 이라고 보고한 일화가 있다. 그 중순양함은 나가토급 전함이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생겨버린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선 정찰기로 비행중에 본 것이었기 때문에 함께 있는 다른 함선들을 통해서 상대적인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크기 자체도 야마토급이 전장 약 263m, 나가토급이 전장 약 225m이기 때문에 이 둘의 크기는 38m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미 해군 함선을 예시로 들어 봐도,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이 길이 기준으로 43m 차이가 나고,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그보다 더 짧아서 뉴올리언스급과의 길이 차이가 28m밖에 되지 않았으니 정말로 야마토와 나가토는 전함과 중순양함 만큼인 크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즉,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야마토가 얼마나 큰 함선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유명한 이야기.
수중에 있는 영상이 공개되었으며, 구레 항에는 야마토 뮤지엄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당시 스펙을 본다면 분명히 세계 최강의 전함이었으나, 종전 후 아이오와급 전함이 2000년대까지 운용되면서 핵포탄도 도입하고 현대화 개장을 받은 덕분에 최강의 전함 타이틀은 아이오와급에게 넘어갔다. 뭐가 됐든 더 오래 살아서 강한 무기를 장착한 놈이 최강인 법이니. 물론 배수량만큼은 전함 중 여전히 세계 최고 기록을 유지하고 있고, 전함 자체가 현대전에서는 이미 오래전 도태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영원히 이 기록이 깨질 일도 없을 것이다. 설령 몬타나급이 있었다 해도 배수량 만큼은 몬타나급을 넘는다.
물론 몬타나급이 실제로 건조되었다면 아이오와급을 대신해서 종전 후에도 오랫동안 살아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현대화 개수를 받았을 것이기에 배수량마저도 역전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야마토급 만재배수량은 약 72800톤, 몬타나급 만재배수량은 설계안 기준 약 70900톤으로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실제 몬태나가 건조되어 야마토랑 포격전을 벌일 경우 현대화 개장 없이도 몬태나가 야마토를 박살냈을 가능성이 높다. 레이더를 비롯한 그 외 장비들의 성능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포가 강해도 적을 먼저 보지 못하고, 포탄을 먼저 맞추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야마토급의 함체가 대응방어가 가능해서 몬타나급 주포로는 침몰시킬 수 없었다 하더라도 상부 구조물까지 대응방어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함체는 견뎌낼지라도 함교가 박살나서 지휘부가 몰살당해 그냥 물 위에 둥둥 떠있기만 한 신세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게다가 설령 야마토가 이겼다 하더라도 전훈을 얻은 미국은 충분히 몬타나급의 발전형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었다. 반면 일본은 고칠만한 여력이 있었는지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고, 설령 고칠 수 있었다 해도 어마어마한 수리비에 등골이 휘었을 것이다.
야마토 뮤지엄의 안내음성에 경우 함대 컬렉션에서 야마토를 연기한 성우 타케타츠 아야나가 목소리를 녹음했다.
10. 모형화[편집]
전쟁때 제대로 실력도 발휘해보지 못하고 침몰했고, 명색이 거대 전함이라는 녀석이 '야마토 호텔'이라고 불려질만큼 함생을 보냈던 전함이다. 하지만 우주전함 야마토를 기점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고 현재는 큼지막하고 멋들어진 생김새와 자태때문에 전 세계 밀덕이나 프라모델러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실제로 여러 스케일 모형들이 온라인을 통해서나 모형 가게에서 거래되고 있고, 길이가 1미터가 넘어가는 녀석들도 있다. 1/350 스케일의 경우 타미야에서 야마토 1944년 버전과 무사시, 천1호 작전 당시를 고증한 신금형 버전을 내놓았으며 하세가와에서는 1/450 스케일, 아리이에서는 1/250 스케일, 후지미에서는 스냅타이트 버전으로 1/700 스케일을 판매한다.
- 1/200
- 니치모
- Kymodel
- 1/250
- 1/350
- 타미야
- 구금형
- 타미야
- 신금형
- 1/700
- 피트로드
- 폰토스 모델
11. 매체에서[편집]
실체가 어떻든 간에 일본 해군이 보유한 최강의 전함이자 동시에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으니만큼, 다양한 매체에서 야마토 혹은 야마토를 모티브로 한 군함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구 일본 해군이 등장하는 매체에서는 거의 대부분 적으로는 최종보스로서, 아군에게는 최종병기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잦다.
11.1. 최종 보스인가?[편집]
야마토는 1945년 4월 7일에 오키나와 특공 중 격침되었으며, 이게 일본 해군 최후의 출격이라고 알려져 있다 보니 야마토가 일본 해군의 최종 보스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지만 이것은 고증에 어긋난다.
일본 해군 최후의 출격은 1945년 5월 12일에 실시된 안다만 제도 보급 작전이며, 이 임무를 맡은 배는 중순양함 하구로와 카미카제급 구축함 1번함 카미카제다. 이때 하구로와 카미카제는 전함 퀸 엘리자베스와 리슐리외를 주축으로 한 영국 동양함대 제61임무부대에게 포착된 것을 알자마자 작전을 취소하고 퇴각했으나, 스크류와 2번 주포탑이 고장난 상태에서도 보급품을 잔뜩 싣고 출격한 하구로의 속도는 늦을 수밖에 없었고 무거운 보급품을 짊어진 카미카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1945년 5월 16일에 일본 해군 최후의 해전인 페낭 해전이 벌어졌고, 하구로는 고장난 스크류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영국군 구축함들에게 포위되어 어뢰를 맞고 침몰했고 카미카제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중순양함이 구축함한테 지다니 졸전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스크류가 고장나서 포가 마구 흔들리는 판이라 아무리 포격을 해도 포탄이 적함에 맞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카미카제는 필사적으로 연막을 뿌리며 하구로를 도우려고 애썼고, 하구로는 항행불능이 되자 자기가 미끼가 되어 카미카제를 탈출시키려 했으며, 카미카제는 하구로가 침몰한 후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생존자를 구조했다.
야마토의 침몰로 일본 해군이 궤멸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것도 고증에 어긋난다. 일본 해군이 궤멸되는 마지막 전투는 1945년 7월 24일과 28일에 벌어진 구레 군항 공습이기 때문이다. 야마토가 마지막 판에서 격침된 것이 아니니 끝판왕이 될 수가 없다. 미군은 7월 24일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지만, 다수의 대형함들이 살아남았다고 판단하고 확인사살을 위해 7월 28일에 재공습을 결행했다.
그래서 실제로 일본 해군이 끝장난 날은 1945년 7월 28일이며, 이때 미군은 이세급 전함 이세,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 그리고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를 중요 목표물로 삼고 집중 공격을 해왔다. 그런데 이세와 하루나는 육지를 지킨다며 부포와 대공포를 대부분 몰수당했기에 제대로 된 저항이 불가능했고, 대공용으로는 별 효과도 없는 3식탄만 쏘는 처지였다. 게다가 대공화기가 남아있는 항공모함 카츠라기와 카이텐 모함 키타카미는 중요 목표물로 찍히지도 않았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대공포 50문을 갖춘 아오바만이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아오바는 일본에서 가장 낡은 중순양함이었던 데다가 침몰이라고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박살난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 해군과 육군항공대는 힘을 합해서 아오바를 공격해왔다. 대파착저한 고물 중순양함 하나 잡자고 미 해군과 육군항공대가 연속공격을 퍼붓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야마토를 2시간 만에 격침시킨 미 항모전단만이 아니라, 미 육군 항공대까지도 말이다. 구레 군항의 다른 배들은 물론이고, 야마토조차 이런 공격을 당한 적이 없었다. 영국 해군과 공군에게 집요하게 연속 공격을 당한 티르피츠는 유럽 최대의 전함이었으니 이해라도 되는데, 아오바는 아무리 봐도 그 정도로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오바는 집중 공격을 받아 대파착저되고 불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미군에 맞섰고, 미군 역시 아오바는 그 정도로 가라앉지 않는다며 전력을 다해 공격한 끝에 배를 쪼개버린 후에야 침몰이라고 인정했다. 미군이 이렇게까지 아오바를 집요하게 공격한 이유는, 아오바는 3번이나 침몰 직전에서 살아남은 전적이 있었고 심지어 대파 상태에서 섬으로 위장한 걸 1달이나 못 알아봐서 놓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어중간한 파괴로는 안심이 안 되었던 것.
이후에도 일본 해군이 남기는 했는데, 수상함들은 모두 숨거나 도망가느라 바빴고 극소수의 잠수함들만 활동했다. 확실히 망한 것이다. 그러니 구레 군항 공습은 마지막 판일 수밖에 없고, 최종 보스의 조건을 마지막 판의 보스로 정한다면 아오바에게 공격이 집중되었으니 야마토가 아닌 아오바가 최종 보스가 된다.
일본 해군의 기함이라는 의미에서도 야마토는 아니다. 레이테 만 해전 이후 일본 연합함대 기함은 경순양함 오요도였고, 구레 군항 공습 무렵에는 이미 육지로 사령부가 이전된 후였다. 당연히 오요도도 구레 군항 공습에서 얻어터졌고, 아오바와 달리 별 힘도 못 써보고 격침되었다.
태평양 전쟁의 주인공인 엔터프라이즈와의 악연에서도 비교할 수가 없다. 일본군 군함 중 최종 보스라면 엔터프라이즈를 상대로 전략적 승리를 한 번 정도는 따내야 하는데, 야마토는 엔터프라이즈에게 승리는 고사하고 공격이라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야마토는 엔터프라이즈와 마주칠까 봐 즈이카쿠를 미끼로 내던지면서 도망이나 다녔는데, 즈이카쿠는 그저 그런 배가 아니라 쇼카쿠와 함께 엔터프라이즈를 상대하며 태평양 전선의 구심점이 되어준 일본군 최고의 수훈함이다. 그런 배를 미끼로 던진 것. 거기에 진주만 공습의 말석에 참여했던 과거까지 겹쳐 윌리엄 홀시는 3함대 전부를 투입시켜 즈이카쿠를 침몰시켜 버린다.
주인공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최종 보스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엔터프라이즈의 비교대상 문단에서 야마토가 빈 수레 항목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나마 빈 수레라도 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전후에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가 대히트를 친 후, 일본이 국가 레벨의 '야마토 신성화 작업'이라는 프로파간다를 해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었다.
한국인과 연합군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사실 야마토만큼 고마운 배도 별로 없다. 제대로 사용되었다면 엄청난 위협이 되었을 야마토가 후방에 숨어있기만 했던 덕분에 연합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그만큼 부담을 덜었고, 야마토가 상식을 벗어나는 졸전을 벌인 덕에 미군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위기를 넘기고 승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딱히 하는 일은 없으면서 일본의 돈과 자원만큼은 열심히 먹어치워준 덕에 일본의 전쟁수행역량도 그만큼 낮아졌다.
생각해보면 야마토만큼 연합군에게 도움이 된 추축국 군함도 흔하지 않다. 심지어 야마토의 마지막 함장인 아루가 코사쿠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대승리를 거두었을 때, 운명의 5분을 이끌어낸 전설의 구축함 아라시에 제4구축대 사령관 자격으로 타고 있었다. 전쟁범죄 문제만 아니면 대단한 찬사(?)를 받았을 인물이다. 즉, 야마토는 멍청한 주인을 만난 덕분에 본의 아니게 세계 평화를 되찾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전쟁 후에 야마토가 성조기를 달았으면 참으로 어울렸을 것이다. 행적 자체가 USS 야마토였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만든 배가 아니어서 문제지만.
그런데도 야마토가 대중매체에서 최종보스로 출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크고, 아름답고, 유명하니까. 현실에서는 야라레메카였지만 스펙만큼은 세계 최대, 최강의 전함이었고,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덕분에 이름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외모도 굉장히 멋있게 생겼다. 최종보스로 나와서 주인공에게 짓밟혀도 된다. 주인공의 공격에 맥없이 패배하고 도주하거나 가라앉아도 된다. 현실에서 야마토는 구축함을 상대로 도망친 야라레메카니까. 야마토만큼 박살나는데 최적화된 배가 없다.
아군으로 나올 때도 써먹기가 좋은 게, 주인공 일당은 일본군 수뇌부보다 훨씬 똑똑하다. 일본군이 야마토를 가지고 했던 한심한 짓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내가 몰아도 그것보단 잘 하겠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야마토를 유능하고 똑똑한 주인공이 써먹는다면 당연히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스펙상으로는 분명 세계 최강의 전함이었고, 배에 있는 결함들도 주인공 일당이 해결해주면 되며, 일본군 따위보다 훨씬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다. 현실 역사에서 스펙이 모자란데도 스펙을 넘어선 전과를 보인 배들도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한 마디로 야마토의 강력한 스펙에 걸맞은 활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야마토의 이름만 딴 군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그림이 잘 나오는 군함이 없으니, 적군의 최종보스 포지션으로도, 아군의 최종병기 포지션으로도 등장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 대중매체용으로 최적화된 군함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대중매체 출연이 잦을 수밖에 없다.
11.2. 드라마[편집]
-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승리했다는 내용의 대체역사를 다룬 미국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 시즌 3에서는, 일본 제국의 괴뢰국 '태평양 합중국'의 수도인 샌프란시스코에 입항, 금문교를 통과하는 모습과 인근 해역에 정박한 장면이 묘사되었다.
11.3. 애니메이션 & 코믹스 & 소설[편집]
- 우주전함 야마토에 등장하는 주력함이자 주인공. 사람들에게는 야마토의 잔해를 건져다가 그걸 우주전함으로 개조했다는 설정이 퍼져있는데, 실제로는 야마토의 잔해는 두 동강나 떨어져 있는 데다가 부품으로 못 써먹을 수준으로 썩어있어 야마토의 잔해로 위장하여 그 아래에서 건조중이었다. 다른 수훈함들을 놔두고 굳이 야마토를 고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원작자인[14] 마츠모토 레이지는 아주 간단하게 "가장 큰 전함이라서 골랐어."라고 대답했다. 상세는 야마토(우주전함 야마토) 참조.
-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람보에서 등장한다. 남미 가상 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부 장군이 야마토를 건져올려 현대기술로 수리해서 그 나라로 쳐들어오는데, 정부군 해군들이 아무리 펑펑 쏴도 끄덕도 안한다... 그러나! 역시 람보 홀로 이 배 안으로 들어와 안에서부터 그야말로 먼치킨 위력을 보여주면서 차례로 때려부수고 주포 탄약을 탄약고로 집어 던져 폭발시켜 결국은 바다로 허무하게 가라앉는다. 이를 멀리서 본 반란군 장군이 "형편없는 고물덩어리 같으니라고!" 마구 화를 내자 부관이 말하기를 "그러기에 차라리 비스마르크를 꺼내오는 게 나았다니까요."[15]
- 지팡구에서는 쿠사카와 그 부하들에 의해 탈취되어 두꺼운 장갑으로 미 함대의 포격을 받아내며 미 함대 한가운대에 파고들어 함내의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계획에 사용. 원폭의 폭발을 저지하려는 이지스함 미라이와 근거리 전투를 벌이며 측거의 같은 소소한 부분이 파손되거나 한다. 본디 미라이는 당시 세계관 기술력으로 보면 완벽한 오버 테크놀러지인 이지스 함이라는 특성상 미 해군 항공모함 와스프를 격침시킬 때처럼 장거리에서 하푼, 토마호크등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야마토를 일방적으로 무력화하여 격침시킬 수 있었다. ...가 아니고 엄밀히 따지면 핵도 없는 주제에 하푼과 토마호크로는 야마토를 격침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고한 야마토의 승조원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16] 카도마츠 이등해좌의 판단과, 미라이의 승조원을 제외하고는 가장 미라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쿠사카의 지휘가 겹쳐 전함용 대공포탄인 3식 통상탄으로 미라이의 이지스 시스템을 파괴[17] 하고 승조원들을 여럿 부상시키는 등 선전. 최종적으로 내부에 아무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미라이의 미사일에 격침당했으며, 수중에서 함선 내부의 원자폭탄이 폭발하여 잔해조차 남기지 못했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2기에서는 워록의 참패와 교훈을 잊은 높으신 분들이 네우로이 코어를 박아넣어 야마토[18] 를 네우로이로 만들었다. 다만 강제적으로 네우로이화로 만들어서 그런지 10분 정도가 한계인듯. 만재 7만톤이 넘는 야마토가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에서 밀덕들은 경악했다. 다른 네우로이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약간씩 손상을 입는 것은 네우로이의 재생력으로 보완하는 상태에서 네우로이 둥지까지 진격하여 주포 포격으로 둥지의 코어를 파괴하려 했으나, 포격 직전 네우로이에게 컨트롤을 탈취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10분이 지나도 네우로이화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미야후지 요시카가 열풍환으로 코어를 파괴한 이후 네우로이화가 해제되면서 바다로 추락했다. 극장판에서는 어떻게 된 것인지 증가장갑을 달고 라인강에서 포격지원을 해준다. 월드 위치스 위키아에 따르면 설정상 2기에서 박살나서 좌초된 야마토를 어떻게든 끌고 와서 복구시켰다고.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에서는 인류의 적인 미지의 적, 안개의 함대의 총기함으로 등장한다. 멘탈 모델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공주님 스타일.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한 것은 작품이 더 연재되어야 알 수 있을 듯. 애니메이션판인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아르스 노바- 한정으로는 두번째 극장판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아르스 노바- Cadenza에서 그녀의 정체는... (스포일러!)
- 달려라 부메랑에서는 합숙에서 이탈하여 귀당원 팀과 승부를 내다 번개에 부메랑을 반파시키고 온 강차돌과 돌진군단+토쿠다 사우르스가 버려진 구 일본군의 방공호 내부를 탐사하던중 지하로 떨어졌을때 발견했으며 이 버려진 야마토급 전함에서 유일한 감독의 DASH 01(이후 슈퍼 부메랑)과 레이스를 펼쳤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버려진 중국군 기지와 중국 전함으로 소개된다.
- 역시 일본 해군은 강해 짤방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야마토가 야마구치 다몬의 기함으로 등장한다. 미군의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와 포격전을 벌여 서로 중파된다. 또한 과달카날의 핸더슨 기지를 포격한다. 그리고 이게 야마토의 활약 전부다. 이후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려는 에놀라게이를 막으려다 시나노와[19] 함께 원자폭탄을 맞는다. 무사시는 별 활약없이 역사대로 레이테 해전에서 미군 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아 격침됐다.
- 하이스쿨 플릿에서는 요코스카 해양학원의 배로 등장했다. 단 1번함 야마토가 아니라 2번함 무사시 미사키 아케노의 친구인 모에카가 함장, 도중 만악의 근원인 RATt 덕분에 대다수 승조원이 감염, 함장을 비롯한 비감염된 인원들은 함교에 갇혀있어야 했다.
- 청의 6호 만화판에서는 적 세력이 무려 잠수함으로 마개조한 뒤에 주력함으로 써먹는다. 함 대부분이 물에 차 있게 개조되어 침수가 거의 무의미하고 승조원들도 아가미가 달린 강화인간들이다. 우람한 몸집으로 해저를 누비며 주포로 어뢰를 쏘는 맛간 연출이 일품. 애니메이션판에서는 나가토로 하향되었다.
- 이 세상의 한구석에에서도 배경으로 야마토가 등장한다.2분 15초부터 필리핀 해 해전 이후 방공을 강화한 사양으로 나오며 이맘때쯤 되면 구레 사람들에겐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 같다. 종전 후 스즈의 시아버지가 태우는 설계도 중에 야마토의 도면이 있었다.
-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 등장. 작중 연합군 함대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야마토가 고가 미네이치 제독의 기함으로 투입. 18인치 구경의 거포를 자랑하며 영국 함대의 기함 후드를 격침시키는 등 나름 활약을 하지만 후드가 격침되어서 극대노한 왕립 해군의 킹 조지 5세급 전함들과 보조함들의 투혼에 끝내 격침되고 사령관 고가 미네이치 제독도 전사한다. 2번함 무사시는 원 역사의 티르피츠가 당했던 톨보이 폭탄을 맞고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함께 수장되어 전복된다. 그래도 별다른 활약도 못하고 호텔 노릇이나 하다가 미 해군 함재기들의 공격에 격파된 원 역사를 생각하면 나은 최후일까...
- 대체역사소설 대영제국 함장이 되었다에서도 등장. 역사가 바뀌어서 영국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전쟁 중 영국의 편으로 참전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전해 패전한 미국에서 뜯어온 전함 '오하이오' 설계를 야마토급에 도입해 3중 바닥과 3중 어뢰 방어 격벽을 도입하는 중방어를 보여준다. 작중 영국 해군의 인빈시블급 순양전함 3척을 나가토와 함께 상대해 단신으로 2척을 격침시키는 위엄을 보여주며 주인공 루이스 제독을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작중 최후반을 장식하는 연합군 함대와의 함대 결전에서 로열 네이비의 라이온급 전함 4척과 미 해군의 노스 캐롤라이나급 전함 2척의 집중 포격을 받아 끝까지 고전하나 끝내 1번함 야마토가 격침되고, 2번함 무사시는 미군이 오키나와를 침공하자 무려 20인치 주포를 장착하고 원 역사의 야마토와 비슷하게 옥쇄에 나서나 연합군 항공모함들의 집중 공습에 격침된다.
- 대체역사소설 높은 하늘의 한국인에서는 USS 아이오와와 뉴저지의 충각돌격과 함상강습으로 인해 별다른 파손없이 미국에 접수되어 USS 야마토, USS 무사시가 된다. 타 전함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부대시설로 인해 호텔 야마토라고 불리며 많은 장성들이 노리고 있는 중.
- 대체역사소설 격랑의 바다에서 등장. 필리핀 전역에서 쿠리타의 2함대 소속으로 자매한 무사시와 나가토급 전함 2척, 공고급 순양전함 2척 외 다수의 순양함과 구축함들과 동행한다. 324화에서 여러 요인이 겹쳐져 운좋게도 나름대로 건재한[20] 상태로 미군의 상륙함대를 공격하러 진입하는데, 이들을 탐지한 아이오와급 전함 2척 외 다수의 전함과 보조함을 위신한 미군과 조우하게 되어 그토록 꿈에 꿈꾸던 함대결전이 벌이게 되어 쌍방에선 뇌격과 거함거포가 오고가는 혈전을 벌인다. 무사시나 무츠 등의 배들은 원 역사를 생각하면 치열한 포화를 주고 받다가 격침되어 나름 수혜를 받았던 반면, 야마토만은 원 역사처럼 조함 실수로 항주하는 어뢰를 달고 빤스런(...)을 하게 되었다가[21] 미처 제독이 출격시킨 항공대에게 격침 당하고 만다.
11.4. 게임[편집]
- DEAD AHEAD에서 나오는 안타레스 전함 오미크론은 야마토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일본 연습 비행이 패치 되어 연습 전투에서도 볼 수 있다.
- 다라이어스 2에서는 태양계를 침공한 베르서 제국의 지구 분견대중 일부가 야마토의 폐허를 활용해서 병기로 개조하는듯 한데, 지구 스테이지에서 상대하는 보스중 하나로 등장한다. 정확히는 집게 형태의 보스인 MY HOME DADDY가 야마토급 전함을 지고 다니는 모습을 YAMATO로 부른다.
- 캡콤의 슈팅게임인 1943에서는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미쳐 날뛰는 난이도 만큼이나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속편인 1943改에서도 최종보스로 등장했으나, 사기 무기인 샷건으로 인해 그 위용이 난이도가 좀 어려운 일반보스 급으로 떨어졌다.
- 스트라이커즈 1945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일본 오카야마 스테이지 보스 키이(紀伊. 워싱턴 조약 때문에 실제로 건조되지 못한 전함에서 이름을 따왔다.)의 이름을 빌려서 등장. 키이급이 실제로 건조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해서인지 포탑배치는 딱 야마토급 전함과 판박이다.
- 함대 컬렉션에서도 의인화되어서 등장. 일본 전함급의 끝판왕급으로 등장한다. 고증을 살려서 연비, 수리비용, 수리시간, 자원소모량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위엄을 증명하듯 처음부터 강력한 46㎝ 3연장포를 사용 가능한 것이 특징. 자세한 것은 각 항목 참고. 야마토급 레시피에서 특정 가구를 배치하고 건조를 돌리면 야마토 대신 무사시가 나온다.
- 중국 게임 전함소녀에서는 미드웨이 이벤트에서 심해함선 'YAMATO로 등장한 이래로 작중 공인 동네북 신세이다. 심해 야마토에게서 잘라냈다는 설정의 뿔이 제독 집무실 장식품으로 등장하고, '존재 자체가 심해 함대의 패배 플래그', '퇴근도 못하고 해적단[23] 에게 얻어맞는 신세' 등의 자학 개그마저 구현되었을 정도다. 다만 성능 자체는 흉악하기에 난이도 높은 스테이지에서 본격적인 적 기함으로 등장할 경우에는 쉽사리 격침시키기 어렵다. 2018년 봄 이벤트에서는 심해 무사시가 보스로 등장한다. 2023년 봄 이벤트에서는 4번함 111이 보스로 등장하는데, 미완성이라 그런지 심해 야마토와 무사시와 달리 해골 같은 모습이다. 한편 함선소녀 버전 야마토는 2022년까지 구현되지 않고 있다. 다만 2022년 6월 야마토급 전함으로 보이는 함선소녀의 부분일러가 공개되어 유저들을 설레게 했으나 전체일러가 공개되면서 야마토급이 아닌 것으로 확정되었다. 3번함 시나노는 장갑항모로 등장한다.
- 중국 게임 벽람항로에서는 아직 야마토와 무사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월오쉽 콜라보를 통해 후술되는 프로토타입 J형 모델 이즈모가 프로젝트 함선으로 추가되었고, 3번함 시나노가 중앵 끝판왕 항공모함으로서 한정건조 추가되었다. 벽람에 이즈모, 시나노가 나온 대신 야마토와 무사시가 안나오고, 정작 칸코레에서는 반대가 된 것이 아이러니. 2022년 9월 10일 일섭 5주년 방송을 통해 무사시가 UR 등급 전함으로 발표됐다.
- 마브러브의 공식 OST 미래로의 표효 PV와 얼터너티브 본편 및 TDA에서 포격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전후 미국의 도움으로 연합함대가 재건되고 BETA 대전 발발후 신규 기술로 업그레이드되어 미사일도 갖고 있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 일본 전함 트리 10티어 최종 테크로 등장하며 프로토타입 중 J형 모델이 이즈모(A-140)라는 이름으로 9티어에, 자매함 무사시 역시 9티어로 등장한다. 전함 항목과 프리미엄 선박 항목 참조
야마토의 경우 다른 함선들도 많이 추가된 상황에서도 순양함들의 화력이 엄청나게 강해서 자칫 잘못하면 전함들이 불타죽는 와중에 메타가 저격전으로 바뀌어서 여전히 쓸만한 함선이다. 18.1인치의 독보적인 구경은 일부 함선들을 제외하곤 오버매치를 보장하고 야마토의 시그마는 충분히 초장거리 저격을 할수 있는 명중률을 자랑한다. 포탑선회가 느리고 근접전에서 잘 드러나는 8각시타텔 약점때문에 근접전은 지양해야한다. 너무 근접하면 덩치도 큰데다 민첩성이 떨어지기때문에 순양함한테 불타 죽기 딱 좋다. 제작진이 18.1인치의 강력한 함포라는 야마토만의 장점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오버매치 시스템과 엄청난 사거리, 높은 명중율을 이용해 저격을 적당히 하면서 필요하다면 특유의 엄청난 어그로와 높은 체력, 약점부위를 제외한 매우 단단한 장갑을 이용해 팀의 방패가 되어주면서 승부를 봐야 하는 함선이다.
그리고 자매함 무사시 역시 야마토의 너프 버전으로 9티어에 등장한다. 개장 전 야마토급 고증에 맞게 대공이 빈약하며 함포회전과 장전 스펙이 고증급으로 너프되어있다. 그래도 화끈한 18.1인치 주포의 화력과 단단한 장갑은 어디 안가기 때문에 7티어를 만나면 벌레눌러죽이듯 찢어버릴 수 있고 10티어 상대로도 살짝 불리하지만 활약가능. 다만 항공모함 맛집이기 때문에 항공모함 방이라면 가급적 단독행동은 자제하자. 그리고 광고에서는 어뢰맞고 폭침당한다.[24] 여담으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컬렉션에서 무사시와 함께 사진으로 등장한다.
- 콘솔 버전인 월드 오브 워쉽 레전드에서는 정규티어 위의 특별 티어인 전설 티어의 대표함선으로 등장한다. 획득은 무료로 가능하지만 기간이 2~3달은 걸린다는것이 큰 단점. 월드 오브 워쉽 레전드도 기본적인 메카니즘이 월드 오브 워쉽과 동일하기 때문에 오버매치의 유리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2.0 이전 버전)에서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더불어 추축국 진영의 대형 중장갑 타겟으로 등장한다. 파괴시 전술점수 32점을 획득하며, 상대방은 제공권의 최대 32%를 잃는다.
- Naval Front-Line의 일본 해군 최종 종착점이다 .미 해군 아이오와급과 같이 레벨 60급의 전함이다.
- 네이비필드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등장. 1편에서는 느린 속도와 짧은 팔 때문에 슈퍼 야마토를 향한 마지막 고비.
- 네이비필드2에서는 11티어 전함으로 구현되었는데. 산탄이 심한데다 내구력도 동급에서 가장 떨어지지만, 강력한 공격력과 대공능력, 정찰기 7기 탑재로 커버 가능하다.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 후소급의 뒤를 이어서 등장한다. 퍼시픽 일본 사이드 엔딩에서는 금문교 앞에 나타나 미국의 항복 서명을 받는 장소로 쓰인다. 위에 언급된 드라마판 높은 성의 사나이의 야마토 등장 장면을 보고 이것을 떠올린 사람도 많은 듯.
- Naval Creed:Warships에서도 일본 전함의 상징이니 당연히 등장, 5티어 1차전함으로 나오며, 18.1인치의 화력과 사거리가 상당히 좋고 철갑이 아쉽지만 고폭 또한 좋은 전함, 슈퍼 야마토를 앞둔 마지막 고비이지만, 나크내 메타상 진짜 최종으로 치는 사람이 이따끔씩 있다, 성능이 약간 차이가 나는 색놀이 버전도 있다.
- 스타크래프트에서 그 유명한 전투순양함들의 주포인 야마토 포(Yamato Cannon)[25] 의 어원이 된다. 명색이 인류 역대 최대구경의 함포였던 만큼 테란이 사용하는 무기들중 핵공격만이 범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로 등장하는데, 설정상 베헤모스 반응로 내부에서 핵폭발을 한번 일으킨 뒤 그 에너지를 통째로 에너지 덩어리로 전환하여 발포하는 무기다. 심지어 테란 연합때는 모든 전투순양함이 야마토 포를 탑재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병기.[26]
- 스타 트렉 온라인에서는 갤럭시-X급의 후계 함급으로 야마토급이 등장한다. 디자인 요소는 갤럭시급의 후계함인 안드로메다급과 공유하고 있다. 갤럭시 드레드노트처럼 함재기를 발진할 수 있으며 페이저 스파이널 랜스를 사용할 수 있다. 수상호텔급 행적을 보여주는 원본과는 다르게 준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 판타시 스타 온라인 2에서는 업데이트된 행성 지구의 거대 레이드 보스로 등장했는데, 넷우익들이 난리를 쳤고, 개발자가 해명을 하는 등 시대를 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끝내 함수부분의 국화문양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야마토 발표 라이브 때 유튜브 중계 라이브를 본 외국인들도 디렉터가 마약 한 사발 쳐드셨냐면서 욕을 바가지로 했다. 물론 넷우익들이 발광한 것과는 다른 의미.
-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 있는 맵 중에서 '군함 정박지' 라는 곳이 있는데, 맵 중앙에 이 배가 정박하고 있다.
- 어비스 호라이즌에 야마토와 무사시가 등장한다.
- 워쉽 플릿 커맨드에서 5성 전함으로 등장한다.
- Hearts of Iron IV에서 일본을 선택한 후 해군중점트리를 타고 "궁극의 전함" 포커스를 완료하면 건조 중인 "초중전함 야마토 클래스" 2개를 얻을 수 있다. 궁극의 전함 포커스로 얻는 것을 제외하면 항공모함에 비해 퍼먹는게 너무 많아 가성비가 안좋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굳이 야마토를 뽑는 사람이 있다
JS Yamato Aegis
- 모던 워십에서도 3티어에서 게임 내 전함으로 등장. 일반 야마토와 현대화된 야마토 이지스가 있다. 일반 야마토는 인게임 최고 수치의 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구축함 이하는 비명횡사하고 순양함이나 항모도 몇방 두들기면 바로 격침시켜버리는 전함다운 화력이 특징. 단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이 게임은 현대전이 배경이지 2차대전이 배경이 아니라는 것. 현대화 개장형으로 나온 미주리와는 다르게 2차대전 그모습 그대로라 방공은 수만 많지 대함 미사일들이나 적 항공기에겐 거의 의미가 없어 멀리서 적 항모의 공격을 받거나 타 군함들의 대함 미사일 집중사격을 받으면 기만체를 방출하는 거 말고는 피할 방법이 없어 큰 피해를 입는다. 여기에 느리고 둔해 어회를 피할 수도 없고, 대잠무장 또한 없어 잠항한 채로 SLBM과 어뢰를 쏴대는 잠수함을 상대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특히 강력한 함포 위력 때문에 어그로가 심해 집중사격당하고 격침되기 십상이라 노가다 용도나 한방딜뽕 용도로나 쓰이는 배다. 함포 리드샷 난이도 탓에 멀리 있는 구축함을 맞추기 어려워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투력이 급감하는 전함 특유의 단점은 덤.
11.5. 영화[편집]
- 남자들의 야마토에서 등장. 당시 야마토에 탑승한 생존자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군국주의적 모습을 띄어 논란을 제공한 영화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현재 일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한다. 하지만 정확한 해석으로는 군국주의 상징인 야마토가 침몰하는 모습은 일본이 그렇게 목맨 함대결전 사상의 몰락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맞다는 해석.영화에서 묘사된 야마토의 최후1영화에서 묘사된 야마토의 최후2영화에서 묘사된 야마토의 최후(앞의 1, 2가 한번에 나오는 버전. 좀 더 길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2차 세계 대전 갤러리에서도 왈가왈부가 있었는데 결론은 해상 재난 영화로 결론이 났다.
- 후속작이라 하긴 그렇지만 비슷한 분위기의 일본 영화 아르키메데스의 대전에서도 등장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만화판의 이야기인 신형 함선 선정 사업에 대해 다루기에 잘 안 나오나,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기에 야마토가 침몰하는 5분 간의 오프닝 전투 장면과 후반의 미니어처 모형 그리고 건조되어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사열 뒤 처녀항해에 나서는 모습으로 나온다. 백미라 할 수 있는 초반 전투장면에서 야마토의 96식 25mm 고각기총은 위 남자들의 야마토에서 고증을 지키며 묘사한 것과는 달리 탄창을 장전수가 붙잡고 버티지도 않고 준수한 발사속도를 보여줘서 성능에 대한 고증이 다르고 침몰하는 모습도 차이가 많이 난다. 반면 주포인 94식 40cm 45구경장 함포에서 사용된 3식 통상탄의 대공 발사시 폭발모습은 남자들의 야마토와 다르게 제대로 고증했다.
- 미드웨이(2019년 영화)에서는 함대 기함으로서 험준한 파도를 가르며 항해하는 모습으로 잠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