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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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38대 총리를 지낸 정치인. 총리 퇴임 이후 극좌 테러단체인 붉은 여단에 의해 납치, 암살되었다.
2. 생애[편집]
1916년 아풀리아 지역의 마글리에서 태어났다. 1934년에 바리로 이주하여 바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39년에는 이탈리아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의 회장이 되어 1942년에 징집될 때까지 재임하는 한편, 바리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였다.
전후에는 기독교민주당에 합류하여 당내 좌파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 법무장관(1955~1957), 교육장관(1957~1959), 당 사무총장(1959~1964) 등을 거쳐 1963년 12월 5일 조반니 레오니의 후임으로 총리가 되어 당내 우파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1968년까지 집권하였으나, 1968년 총선에서 연정 파트너였던 사회당-민주사회당 연합의 패배와 연정 탈퇴를 계기로 사임하였다. 첫 총리로서 모로는 사회당, 공화당, 민주사회당 등과 중도좌파 연정을 구성하고 긴급 주택 공급, 최저임금 인상, 연금제도 및 사회보장 개혁 등의 사회개혁을 실행했다.
1기 퇴임 이후에는 잠시 당내야당으로 물러났다가 외무장관(1969~1972, 1973~1974)을 맡았다.
1974년 10월 마리아노 루모르 총리가 사임하자 모로는 후임 총리로 임명되어 2년간 재임하였으나 사회당이 정부 지지를 포기하면서 1976년 7월 사임하였다. 모로는 총리 2기를 전후하여 유럽공산주의 노선으로 선회한 이탈리아 공산당과의 역사적인 타협을 주도하며 모든 진보적 세력의 총단결을 추구하고 유고슬라비아와의 트리에스테 영토 분쟁을 종식시키는 업적을 세웠으나, 이러한 정치적 노선은 국내외의 반대자들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78년 3월 16일, 극좌 테러조직인 붉은 여단에 의해 로마의 거리를 지나가던 중 습격을 받아 납치되었고[1] , 교황 바오로 6세 등의 석방 호소에도 불구하고 1978년 5월 9일 암살되었다.[2] 이 사건은 마르코 벨로키오의 굿모닝, 나잇에서 다뤄진다.
2012년, 가톨릭 교회는 모로에 대한 시복 절차를 개시하였다.
3. 성향[편집]
- 정치적으로 중도좌파 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하였으며, 현대 이탈리아 중도좌파의 아버지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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