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안현필

덤프버전 :

안현필
安賢弼


출생
1913년
사망
1999년 6월 20일 (향년 85~86세)
학력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영어영문학 / 학사)
약력
삿포로상업고등학교 교사
경기고등학교 교사
서울고등학교 교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무과장
EMI학원 원장

1. 개요
2. 생애
3. 저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영어 강사, 교육자, 저술가.

1950년대 ~ 60년대 중반 대한민국 최초의 영어 스타 강사였으며, 성문영어 이전 대한민국 중고교생들이 가장 많이 보던 영어 참고서 시리즈를 저술했다. 또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입시 단과 학원인 E.M.I. 학원의 원장이었다.

영어 교재로 '영어기초오력일체', '영어실력기초', '삼위일체'가 유명하다.


2. 생애[편집]


1913년 전라남도 제주도(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신문배달 등 아르바이트로 고학을 한 끝에[1] 도쿄의 사학명문 주오대학(中央大学) 법학과에 합격하였다. 원래는 정치가를 꿈꾸고 법학과로 들어갔는데 영어 원서를 몇 십페이지씩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영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여기에 흥미를 느껴 아오야마가쿠인대학(青山学院大学) 영어영문학과로 전과하였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홋카이도 삿포로 고교 교사를 역임했는데,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고교 교사가 된 사례라고 한다.

8.15 광복 후에는 귀국하여 경기고등학교서울고등학교 영어과 주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무과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강사를 역임했다. 6.25 전쟁 중에 대구에 국내 최초로 입시학원인 EMI학원을 설립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근처에 학원을 열었으며 이후 종로2가로 이전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용 영어 참고서를 다수 집필했는데, <영어실력기초>, <삼위일체> 등이 유명하다. <영어실력기초>는 출간 이래 500만부가 팔렸다고 하며, 성문종합영어가 유행하기 이전에 대표적인 영어참고서였다. 사실 옛날 일본식 5형식 영문법 이론에 기반한 책이다보니, 가르치는 내용은 성문종합영어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지루하지 않고, 독창적이며 재미있는 구성 덕분에 인기가 높았다.[2] 여러 책을 집필했지만, 그 골자는 영어 문장을 암기하고, 한국어에서 영어로 문장을 직접 영작해보는 것을 강력추천하고 있다. 그리고 빈 여백에 자신의 경험이나 조언(잔소리)을 적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1930년대생,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안현필의 교재로 공부할 정도.

한국전쟁 직후 거의 국민 대부분이 '골고루 가난했던' 그 시절, 안현필은 교재 판매와 강의로 벌어들인 수익 덕분에 당시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힐 만큼의 부자로 이름이 높았다.[3] 그러나 바쁜 생활로 인해 심장병, 당뇨병, 간질환 등을 앓는 등 건강을 크게 해쳤고, 1970년대 학원이 부도를 맞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훗날 현미밥 위주로 식생활을 개선하고 건강을 회복한 뒤, 1984년 <안현필 건강 연구소>를 세우고 건강 전도사로 나서기도 했다.[4]

그러나 1995년 4월 30일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도로에서 마주오던 승용차와 정면충돌하는 교통사고당해 한때 중태에 빠지기도 했으며, 1998년 한번 더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다리뼈가 부서지는 등 중상을 입고 난뒤 차도를 보이다가,[5] 1999년 6월 20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천록빌라 자택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타계하였다.


3. 저서[편집]


공부하는 순서는 '영어기초확립' → '영어실력기초' → '영어기초오력일체' → '삼위일체' → '영어연구' 순이라고 한다. '영어실력기초', '영어기초오력일체', '삼위일체'가 유명하다.

안현필의 책은 50년대 중반에 출간되어 성문영어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며 전국 학생들에게 애용되었다고 한다. 1967년 성문종합영어가 발간되긴 했으나, 안현필의 책들은 1970년대까지 성문종합영어와 더불어 상당히 인기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도 70년대 서울 대형 단과 학원에서도 성문영어 강의가 다수였지만 안현필의 책은 그다음으로 많은 강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성문종합영어가 출간된 후에도 곧바로 성문영어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아니라 10여년간 성문영어와 공존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성문영어가 1967년 성문종합영어가 처음 발간되었는데 성문종합영어는 당시 서울대 본고사를 대비하기 위한 최종 보스 포지션에 있던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는 책이었고, 이후 고1이나 중학생들을 위한 성문기초영문법, 성문기본영어 등은 나중에 발간되었다. 특히 고등학교 저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인 성문기본영어는 의외로 늦은 시기인 1977년에야 발간되었다. 때문에 70년대 후반 까지는 '영어실력기초'가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다.

또 해설이나 해석이 매우 부족하여 강의 없이 혼자 독학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책인 성문영어 시리즈와 달리 안현필의 책은 설명이 비교적 자세히 달려 있었다. 성문영어 자습서가 나온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때문에 성문영어가 나온 후 70년대에도 마땅한 영어학원이 없던 지방에서는 성문영어를 독학으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대신 안현필의 책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70년대에도 성문영어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던 안현필의 책이 결국 밀려나게 된 것은 77년 성문기본영어 출간에 이어 82년, 맨투맨영어의 등장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맨투맨영어는 자세한 설명과 해석을 덧붙였기 때문에 성문영어를 대신해서 독학용으로 사용되던 안현필 저서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안현필의 저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영어실력기초'이며, 출간 이래 500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오늘날 성문기초영문법 포지션에 해당하는 책으로 보인다.

'영어기초오력일체'는 당시 중3 ~ 고1 기준의 책으로, 고입 연합고사, 고입 검정고시, 대입 학력고사, 기타 각종 시험을 보고자 하는 수험생을 위한 기초 영어 교재, '영어실력기초'를 공부한 후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볼 수 있는 Work book 스타일의 영문법 수험서라고 소개되어 있다. 영문법 기초를 닦기 위한 입문서로 널리 학습되었다고 한다.

'메들리 삼위일체'는 당시 일본과 한국에서 대입 영어 참고서로 각광받던 A. W. Medley의 삼위일체(Trivium the Threefold Path to English)를 편역한 것이다. 메들리의 삼위일체는 일본에서 오랬동안 영어를 가르쳤던 영국인 A. W. Medley가 일본 학생들을 위한 영어 교재로 지은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1951년 처음 번역 출판된 이래 여러 사람들이 번역하여 출판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책이다. 안현필의 삼위일체는 메들리의 원작에 안현필 본인의 해설을 추가했기에 인기가 많아 곧 대세를 차지했다고 한다. 안현필 편저 메들리 삼위일체는 이후 송성문이 자신의 종합영어를 저술할 때 많이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현필은 E.M.I 학원에서 오력일체 강의는 하지 않고, 주로 '영어실력기초'와 상위과정을 강의했는데, 상위과정은 본인의 프린트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1] 이때 폐결핵에 걸렸는데, 약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자연식과 자연적인 생활 방식만으로 폐결핵을 치유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 때의 경험으로, 이후 안현필은 개인적으로 건강법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다. 안현필에게는 형이 두 명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모두 폐결핵으로 20대가 되기 전에 요절했다.[2] 표절 의혹이 있는 성문종합영어에 비해, 안현필의 책은 본인이 직접 사용하던 강의록에 바탕을 뒀기 때문에 표절 논란에서 좀더 자유로웠다. 그의 책에는 영어 유머가 자주 등장하는데, 20세기 초중엽에 돌아다니던 영국발 유머를 많이 싣고 있어서 21세기 기준으로 보기에는 옛날 표현들(예: urchin(악동), say(감탄사), hang it(비속어) 등)이 많다.[3] 이로 인해 주변에서 돈 좀 빌려달라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곤란했다고 한다.한때 전국 소득랭킹 10위 안에 들 정도[4] 냉수마찰의 효과를 인정하는 주장도 했다. 사실 냉수마찰 자체가 일본 제국 시기 일본에서 유행하던 건강법이 당시 조선 반도에까지 퍼진 것이라, 일제 시대를 거쳐왔고 일본에서 공부까지 했던 안현필 역시 냉수마찰에 친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5]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