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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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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瀏
1619년(광해군 11) ~ 1680년(숙종 6)
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1] 으로, 평산 신씨의 시조이자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의 23대 후손이다. 주요 참여 전투는 나선정벌이 있으며 주요 서적은 북정일기가 있다.
2. 주요 행적[편집]
1619년 경상도 인동도호부 약목면 복성리(현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2][3] 에서 아버지 신우덕(申祐德, 1581 ~ 1663)[4] 과 어머니 벽진 이씨 이정립(李廷立)의 딸 사이의 4형제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차례 문과에 응시 했으나 번번히 낙방하고 1645년(인조 23) 무과에 급제해 1648년 선전관이 되었고 1650년 비변사 낭청직을 거쳐 1655년(효종 6년) 훈련원 부정 겸 내승이 되었다. 1656년 혜산진첨절제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함경북도 병마우후(兵馬虞侯 : 종3품 무관)가 되었다.
이후 1658년 신류는 함경도의 총포수 250여 명을 거느리고 나선 정벌에 참전, 흑룡강까지 원정하여 큰 승리를 얻었다. 자세한 전투 기록은 나선정벌 문서 참고. 이후 나선 정벌 때의 공으로 가선대부에 올랐고, 이후 경상도 김해 부사를 지내고 1669년(현종 10년)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 1674년(현종 15년) 황해도 병마 절도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펼쳤고 그 영향으로 이듬해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1677년(숙종 3년) 포도대장에 임명되었다가 1679년(숙종 5년)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파직되었고 이후 1680년 고향으로 낙향하였다가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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