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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른베르크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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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헝가리의 전 축구인.
2. 생애[4][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슈테른베르크는 축구 선수 생활 초기에 헝가리의 몇 클럽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1925년의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슈테른베르크는 헝가리에서의 축구 선수 자격이 일시 정지되었고 이탈리아에서 2시즌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2부 리그 소속의 AS 노베세에서 뛰었고 그 다음 시즌에는 안드레아 도비아[5] 에서 기량을 인정받아 주전이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1927년부터 외국인 출전 제한 정책을 펴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우이페슈트에서 1년간 뛰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 축구계에는 헝가리 선수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감독으로 더 유명하게 될 벨러 구트먼도 뛰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슈테른베르크의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은 계속 되었는데 뉴욕 자이언츠에서 뛴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축구 전쟁으로 미국 리그가 쪼개졌다. 슈테른베르크는 이민자가 많던 하코아로 팀을 옮겼고 이 곳에서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다 미국 리그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건너갔고 우이페슈트에서 우승의 주역이 되며 활약하였다. 슈테른베르크는 이후 프랑스의 레드 스타 파리에 건너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2.1.2. 국가대표팀[편집]
슈테른베르크의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1928년 3월 중유럽 컵 이탈리아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미국 생활 4년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고 1934년에서야 다시 뽑힐 수 있었다.
1934년 월드컵에서 슈테른베르크는 주장으로 출전했고 헝가리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의 마지막 출전은 1936년 5월 이탈리아전으로 헝가리는 1대3으로 패했다.
2.2. 감독 생활[편집]
레드 스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잠시 위페슈트에서 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이후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양발 사용이 가능하고 육체적으로 강한 수비수였다고 전해진다.
4. 수상[편집]
4.1. 클럽[편집]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우승 2회: 1932–33, 1934–35(우이페슈트 FC)
- 뉴욕주 챌린지 컵 우승 1회: 1929(뉴욕 자이언츠)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준우승 1회: 1933–34(우이페슈트 FC)
- 마자르 쿠파 준우승 1회: 1932–33(우이페슈트 FC)
4.2. 감독[편집]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준우승 1회: 1937–38(우이페슈트 FC)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서양식 이름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출처: 위키피디아, 11v11[5] UC 삼프도리아의 전신. 1946년 산피에르 다베네세와 안드레아 도비아가 합병하여 지금의 삼프도리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