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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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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대부.
1983년 현대자동차써비스 배구단 창단 감독을 맡은 이후 세 차례 대통령배 우승을 지휘하며 고려증권 배구단과 함께 현대를 한국 배구의 양강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2. 선수 경력[편집]
한국전력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1982년 대한배구협회에 의해 호주로 파견을 간 적도 있다.
현대자동차써비스 창단 감독을 맡아 창단 첫 해인 1983년 종별선수권대회와 실업 연맹전, 전국체전 등 전국 대회 3관왕을 이에서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던 대통령배에서도 1986년 제3회 대회를 시작으로 5회 대회까지 3연패 신화를 창조했다. 그래서 현대는 고려증권과 쌍벽을 이뤘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 아시아 거포 강만수, 문용관, 차주현, 이종경, 마낙길 등 내로라하는 왕년의 스타가 모두 송 감독의 현대 시절 제자다.
한편 '코트의 신사'로 불릴 만큼 깔끔한 예의와 자율적인 훈련을 강조했다.
1986년에는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4. 행정가 경력[편집]
대한배구협회 사무국장을 거쳐 한국배구연맹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했다. 여타 직책이라고 표현한 기사도 많아서 정확한 직책, 기간을 알기 어렵다.
5. 사망[편집]
2007년 1월 말에 받은 정기 건강 검진 때 폐암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 시기를 놓쳐 서울시립 보라매병원에서 방사선ㆍ약물 치료를 받는 등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며 투병해 왔다. 결국 12월 2일 별세했고 유가족은 빈소를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했다. 발인은 4일 오전 10시였다.
6. 수상[편집]
1986~1988년 대통령배 전국남녀배구대회 남자부 지도자상
7. 여담[편집]
아들 송원진은 아버지와는 달리 농구를 했으며 중앙대에 진학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프로 입단은 하지 못했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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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번 4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