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시테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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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소련의 장군.
2. 생애[편집]
가난한 카자크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래 성씨는 시테멘코프였으나 1916년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가 우크라이나의 전형적인 성씨인 시테멘코로 개명했다.
1924년에 교구 학교를 졸업한 뒤 모스크바 중앙 전신 건물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1926년 10월 노농적군에 징집된 뒤 크라신 포병학교에서 교육받았다.
1927년 9월 세바스토폴 방공학교로 전학 간 뒤 1930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세바스토폴의 우크라이나 군관구 제121방공포연대에서 복무했다. 1931년에 정찰소대장, 1932년에 포병포대장을 역임했다. 이후 1937년 12월부터 키예프 특수 군관구 제5전차여단의 전차훈련대대장으로 임명됐다.
2.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2.1.1. 독소전쟁[편집]
1941년 8월부터 중부전선 부참모장을 역임했으나, 과로를 견디지 못해 남서부 및 서부전선 사령관 보좌관으로 좌천됐다. 시테멘코는 노력 끝에 1943년 4월부터 제1작전참모장으로 임명됐으며, 독일 국방군과 일본 제국군 궤멸 계획을 세우는 소련군 최고사령부의 주요 지도자 중 하나로 꼽혔다. 테헤란 회담 당시 시테멘코도 최고사령관을 따라 참석해 전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1944년 2월부터 3월까지 세묜 티모셴코와 함께 독일 국방군의 약점을 찾아 서부전선 사령관으로서 승리를 쟁취했다.
2.2. 전후[편집]
대장이었던 시테멘코는 라브렌티 베리야 체포 당시 중장으로 2계급 강등당했다. 당시 국방장관인 니콜라이 불가닌은 시테멘코가 베리야와 함께 주요 군사 기밀을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왜곡해서 보고한 게 원인이라고 밝혔다. 1953년 7월 21일, 시테멘코는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누명을 벗겨달라는 편지를 보냈으나, 완벽하게 위협에서 탈출하진 못했다. 여전히 중장 계급장을 부착한 채 목숨을 부지해서 서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된 것으로 끝났다.
1956년 8월부터 상장으로 진급 후 정보참모장을 역임했으나 또 다시 눈엣가시에 들게 됐다. 그나마 자신을 아끼던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흐지부지하게 넘어갔다. 1957년 11월, 그는 강제 해임된 뒤 볼가 군관구 부사령관, 남캅카스 군관구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1968년 2월, 무사히 복권된 시테멘코는 다시 대장 계급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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