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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센터/붕괴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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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 중심에 있었던 대형 비즈니스 센터 마천루. 그 중 특히 1WTC와 2WTC가 커다란, 일명 '쌍둥이 빌딩(Twin Towers)'으로 유명했다.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야마자키 미노루(1912~1986)가 설계한 대표적인 모더니즘 성향의 마천루 건축물이었다.[4] 야마자키는 80층 높이로 계획하고 이에 맞추어 설계하려고 했으나 항만공사가 오피스 공간으로 930,000 m² 을 만족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여 110층 높이가 되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도 이만큼 높은 해운대 엘시티 랜드마크 타워는 물론이고, 이보다 훨씬 더 높은 롯데월드타워가 있어서 별거 아닌 높이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63빌딩이었던 2001년까지만 해도 뉴욕에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이 쌍둥이 빌딩의 독보적인 높이에 입이 벌어졌던 경우가 많았다.
1WTC와 2WTC는 2001년 9월 11일 비행기 두 대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었으며(9.11 테러), 또 다른 세계무역센터 5개도 모두 위 두 건물이 무너짐에 따라 나온 파편들로 인해 모든 세계무역센터가 철거되거나 붕괴되는 참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2. 상세[편집]
[5]
세계무역센터는 모두 7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쌍둥이 빌딩 1WTC와 2WTC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뉴욕 뉴저지 항만청에 의해 세계무역센터의 주요 건설 계획이 수립되었다. 원래는 이스트 강변에 세워질 예정이었고 설계도도 완성되었으나, 부지 매입에 실패하여 결국 허드슨 강변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세계무역센터가 지어질 터는 본래 작은 상가들이 즐비한 평범한 곳이었으며, 예로부터 라디오와 관련된 전자 상가들이 많아 라디오 골목(Radio Row)이라 불리웠다.관련 칼럼 이 라디오 골목은 1966년 기공식 이전에 일괄 철거되었다.
1966년 8월 5일에 기공식을 연 뒤, 2년 뒤인 1968년 8월, 1WTC가 착공했다. 이듬해 1월에는 잇따라 2WTC가 공사에 돌입했고 각각 1970년과 1972년에 완공되었다. 1973년도 개장식 당시에는 1WTC, 2WTC, 5WTC, 6WTC만 완공된 상태였는데, 4WTC는 1977년에 완공되었고, 3WTC와 7WTC는 1980년대 중반까지 건축이 진행되었다. 이후 7WTC가 1987년에 완공되면서 모든 공사가 끝났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공사비는 약 10억 달러였다.
지하에는 세계무역센터 몰(Mall at the World Trade Center)이 위치하여 WTC를 지하로 연결하였고 근무하는 직원들의 식사 및 쇼핑 공간 역할을 했다. 지하철 역(Chambers Street–World Trade Center)으로 연결되어서 많은 직원들은 지하철에서 내린 후 몰을 통해 출근한 뒤 다시 몰을 통과해 지하철로 퇴근하는 생활을 했다. 후술할 9.11 테러 당시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상층을 피해 많은 직원들이 대피한 장소이기도 하다.
정식 개장된 1973년부터 2001년까지는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함께 뉴욕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였고,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990년대 미국의 선전매체물에서는 세계무역센터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으니 말 다 한 셈. 또한 1WTC는 뉴욕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이자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가 일년 뒤(...)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현 윌리스 타워)가 그 기록을 깼다. 다만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라는 타이틀은 계속 갖고 있었지만 1998년에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개장하면서 그마저도 추월당했다. 그래도 서구권에서는 2001년까지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었다. 세계무역센터 마지막 시절인 2001년 당시 '초고층 건물 높이 순위'에서 1WTC는 5위, 2WTC는 6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세계무역센터 단지(7건물 모두 포함)의 가치는 11억 달러(한화 약 1조 4300억 원)였다.
공교롭게도 테러가 일어나기 20년 전인 1981년에 1WTC가 아르헨티나 항공 342편(보잉 707)과 충돌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곳에 쓰인 난방관의 총 길이는 318km이었고, 26만 톤의 공기를 식힐 수 있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6]
모건스탠리의 본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다수의 유수 기업들이 입주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리만 브라더스, 버라이즌, 뱅크오브아메리카, 보잉 등이다. 이곳에 입주해 있던 한국 기업들은 LG손해보험/증권[7] , 현대증권, 현대자동차, 동부캐피탈, 한일증권[8] 등이 있었다. 이 중 LG화재 사무실에서 9.11 테러 한국인 사망자[9][10][11] 가 나왔다. 그 외에도 한국지자체문화재단도 입주 중이었다.
3. 파괴와 재건[편집]
이 건물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고, 뉴욕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로 인해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어그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수난에 시달리는데, 1993년에 테러가 한 차례 있었고, 2001년에는 쌍둥이 빌딩을 작정하고 박살 내버리는 초대형 테러가 일어난다.[12]
3.1. 폭탄 테러[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1993 World Trade Center Bombing,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사건이라 부른다. 후술할 9.11 테러와는 별개다. 1993년 2월 26일, 알 카에다에 의해 이뤄졌다.[13]
쌍둥이 빌딩을 무너트릴 계획으로 지하 2층 주차장에 폭탄이 실린 밴을 터뜨렸고, 3WTC[14] 지하 부분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로 인해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있던 3WTC가 가장 크게 타격을 입어 영업을 중지했고, 6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테러리스트들은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원래 예정했던 코어 근처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밴을 주차했고, 이 때문에 폭발의 위력이 빌딩의 코어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였다. 빌딩의 코어에 좀 더 가까이 주차되었으면 붕괴도 어렵지 않았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 테러로 인해 세계무역센터는 보수공사와 여러 개선책을 마련하여 1995년 완전히 재개장했다. 이때 1,2WTC 로비에 화재 본부(Fire Command Desk)가 설치되었고, 이것은 8년 후 대책본부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