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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망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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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Salamanca.
살라망카는 스페인 북서부 카스티야 지방 내에 위치한 도시로서 마드리드와는 200여km 정도 떨어져 있고 도시 인구의 상당수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살라망카는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의 살라망카 주의 주도고 이베리카 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캄포 데 살라망카(Campo de Salamanca)에 위치해 있다. 스페인 국립 통계청(INE)에 의하면 148,000명이 거주하고 있고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서 바야돌리드와 레온의 뒤를 이어 3번째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다.
도시의 역사는 2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철기시대에 최초의 거주민들은 지금 살라망카의 San Vicente라는 곳에 정착했고 도시는 다양한 민족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도시의 모습은 11세기 레온의 알폰소 6세의 사위인 라이문도 데 보르고냐(Raimundo de Borgoña)에 의해 시작되었다.
또한 이 도시는 교육으로 스페인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데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자 알폰소 9세에 의해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교가 있다.
파일:20190801_212633.jpg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도밍고 데 소토,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등 유수의 살라망카 학파 도미니코회 수도자와 지식인들이 수학했던 산에스테반 수도원. 1590-92년사이 제작한 조각가 후안 리베로 데라다의 스페인 후기 고딕/플라테레스코 양식의 걸작 정면으로도 유명하다.
살라망카를 비롯한 카스티야 지방 전통 건축물은 보통 이베리아 반도에서 구하기 쉬운 사암제질로 지어졌는데, 이 건물들은 저녁 일몰때 특히 강렬한 이베리아 중부고원지대 태양이 지면서 빛을 반사해 장미금색(rose gold)의 현란한 금빛 분홍색으로 변한다. 특히 살라망카는 도시 전경부터 하술된대로 대성당, 이 산에스테반 수도원, 교황청립대학 등 삐까뻔쩍한 거대 종교 건축물들이 카리스마 쩔게 자리잡고 있는지라 흔치 않은 흐린 날씨만 아니면 저녁마다 도시 경관이 휘황찬란한 적금색으로 변하는걸로도[4] 이름이 높다.
스페인 내전 시기에는 국민군의 임시본부였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대성당 옆 주교관저를 거처로 사용했다.
2. 교통[편집]
살라망카로 오는 방법은 시외버스(Avanza Bus) 혹은 기차(Renfe)를 타는 것이다. 두 교통편 모두 자주 운행하고 마드리드에서 살라망카까지는 약 두세시간 정도 소요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살라망카행 직행버스를 타거나 혹은 멘데스 알바로(Méndez Álvaro)역 근처에 있는 남부터미널에서 살라망카행 버스를 타면 된다.
기차의 경우에는 차마르틴(Chamartín)역으로 가면 되는데 기차 종류가 2가지가 있다. 일반 MD 기차와 최근에 생긴 알비아(Alvia)라는 기차인데 시간을 절약하고 싶다면 알비아를 타는게 낫다. 한시간이나 빨리 도착하기 때문.
살라망카 내에서는 도보로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살라망카를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지만 버스 역시 이용 가능. 버스 요금은 1유로고 버스 카드를 사용하면 더 낮은 금액에 이용할 수 있다. 버스카드는 Plaza Mayor 옆에 위치한 Plaza del Mercado 혹은 Gran Via의 Salamanca Transporte 사무소에서 구매 가능.
3. 교육[편집]
3.1. 대학[편집]
Universidad de Salamanca: 공립대학. 살라망카 대학교 항목 참조.[5]
Universidad Pontificia de Salamanca: 교황청립 대학. 본래 살라망카 대학교의 신학부였으나, 1854년 세속화의 영향으로 해체된 것을 1940년 교황 비오 12세가 복원하면서 지금에 이른다.[6]
여담으로 현재 교황청립 대학의 소재지인 구시가지의 17세기 지은 구 예수회 신학교 건물 겸 클레레시아 교회에는 일화가 있는데, 살라망카 대학은 전통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과 학풍을 이은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꽉 잡고 있던 기관으로, 15세기 말-16세기 들어서 스페인에도 영향을 끼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예수회와 스페인 가톨릭교회 내에서 영향력과 유명인 아웃풋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라이벌 관계였다.[7]
그리고 삐까뻔쩍하고, 무엇보다 적들의 수도(...)인
3.2. 어학원[편집]
도시 규모 치고는 스페인의 타 도시에 비해 어학원이 많은 편. 아래에 있는 어학원은 그 중 일부로 비용은 각 학원마다 차이가 크니 홈페이지에서 참고할 것.
- Academia Berceo[9]
- ISLA[10]
- Salmínter[11]
- Enforex[12]
- Colegio Delibes[13]
- 살라망카 대학교 부설 Cursos Internacionales[14]
- Tía Tula[15]
- Mester[16]
- DILE[17]
- Colegio De España[18]
- Salmínter[19]
- Don Quijote[20]
- Hispano Continental[21]
4. 여담[편집]
스페인어의 표준 발음과 표준 철자법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는 포르투갈의 코임브라처럼 유서 깊은 대학가의 영향이며, 실제로 지역어 자체가 표준어에 가장 가까운 곳은 바야돌리드이다. 그와 별개로 구 카스티야 지역 자체가 전반적으로 표준어부심이 강해서 각기 자기 고장이 표준어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건 사실 어떤 의미에서 '표준어'를 말하냐 문맥마다 다른게, 카스티야란 특정 지방에서 일상적으로 말하는 구어로선 바야돌리드가 전통적으로 카스티야 지방의 실질적 수도 역할을 했으니 이쪽 말이 가장 '표준어'에 가깝긴 하지만 카스티야어는 동시에 세계적 언어인 '에스파냐어'이기도 하고, 살라망카 대학 자체가 스페인어권 전체에서도 가장 스페인 어학을 오래 연구해온 최고古의 대학이니 학술적인 의미에서 스페인어 표준어의 규칙이 살라망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살라망카 대학에서 나온것 또한 사실이다.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Antonio de Nebrija, 1444-1522)가 처음으로 카스티야어 표준 문법서를 펴냈을때[22] 카스티야 왕국에선 공부할수 있는 제대로된 대학이 살라망카 대학 밖에 없었으니[23] '살라망카 스페인어가 가장 표준어다'란 말은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 김치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같은 좀 자화자찬스런 발언이긴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당연히 현지인들 입말로 따지면 살라망카 지방의 입말 자체는 서쪽으론 포르투갈, 북쪽으론 사모라주 산악 지대까지 특히 반유목 목축업에 종사하며 왔다갔다 하며 게다가 중세부터 쏟아져온 스페인, 유럽, 근세 이후론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 말까지 섞였으니 표준말인지 아닌지 따지는게 무의미하다.
다른 지방들도 한마디씩 거들만한게 현대 행정구역상으론 분리된 라 리오하는 애초에 현존하는 카스티야어로된 최고 고문서가 보관된 수도원이 있고, 부르고스는 카스티야가 쬐그만한 백국이던 시절부터 중심지였고, 바야돌리드는 상술했다시피 지방 최대도시에 역사적 정치중심지였고, 아빌라는 예수의 테레사를 비롯한 유수의 카스티야어 종교 문학의 중심지였고, 팔렌시아, 소리아도 인구밀도 낮은 카스티야-레온 자치지방 내에서도 가장 인구 낮을만큼 폭망한 동네지만 어쨋든 중세 초기엔 중요한 수도원, 교회가 많고, 세고비아는 현대 카스티야어가 가장 다이나믹하게 형성되던 중세 후기-말기에 집중적으로 크면서 언어적 변화 과정을 보여주고... 구 카스티야+레온 3개주 자체가 뭐 역사말곤 아무것도 남은게 없고, 전반적으로 비슷비슷한 규모의 이웃 도시들이 서로 영향으로 주며 발전한 지방이다 보니 각각 지역마다 우덜말이 표준어라카이 주장할 건덕지기도 있고, 스페인이란 복잡하게 다양한 나라를 묶어주는 코드 자체가 바로 지역불문 폭발하는 애향심, 지역부심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스페인어 시험인 DELE 주최 기관이 이 도시에 있다 보니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몰린다. 물론 한국인들도 많지만 사는 사람들은 몇 명도 채 안 되는 편으로 나머지는 모두 다 학생이다. 전반적으로 낮은 인구 밀도와 유출, 고령화가 심각한 카스티야-레온 지역 전체에서도 가장 평균연령이 젊은 도시이다. 한식당은 2년 전에 자그마하게 한인 교회 목사 자제가 하던 카페가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가 마드리드로 이사를 가서 없다(...). 하지만 식재료같은 것들은 충분히 인터넷에서 시키지 않아도 중국 마트 같은 곳에서 조달이 가능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 루트인 은의 길(Via de la Plata)의 주요 지점 중 한 곳이다. 역사적으로도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와 연관이 많았으며 살라망카 교구는 오랫동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관구 산하에 있어왔다.[24] 구시가지 곳곳에도 순례길의 이정표인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문양을 볼 수 있고, 외벽의 가리비 장식 패턴으로 유명한 살라망카 공립 도서관(Biblioteca publica 또는 Casa de las conchas) 역시 순례길을 수호하던 산티아고 기사단의 단원이 거주하건 저택이다.
파일:살라망카우주인.jpg
이 지역에 있는 살라망카 신성당(Catedral Nueva de Salamanca)은 입구 장식에 우주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사람들은 한동안 어떻게 1733년에 완공된 성당에 20세기에나 등장하는 우주인이 그려져 있는지를 궁금해 했고 각종 음모론이 떠돌았다. 실상은 20세기에 이 성당을 보수 공사했을 때 참여한 한 조각가가 새겨 넣은 것이지만 아직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25]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해당 건물은 대문 이미지에도 있는 살라망카 신주교좌성당이다.[5] #[6] #[7] 신학적으로도 대립 관계였다. 은총론에 있어서 몰리나(Louis de Molina, 1535~1600)를 중심으로 한 예수회 학파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했다면, 바녜스(Domingo Bañez, 1528~1604)를 대표로 한 도미니코 학파는 하느님의 '값 없는' 은총을 강조했다. 몰리나주의의 경우는 칼뱅주의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방어하기 위해 "인간이 지옥에 떨어지면 그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하느님 탓이 아니다"를 강조하고 싶어했다면, 바녜스주의의 경우는 "인간이 천국에 가면 하느님의 값 없는 은총 덕분이지 인간이 잘나서가 아니다"를 강조하고 싶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몰리나주의와 바녜스주의는 둘 다 가톨릭교회에서 단죄되지 않았다.[8] 실제로 살라망카 구시가지 풍경을 높은 건물이나 시외 언덕, 토르메스 강 건너서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주교좌성당의 거대한 위용이고, 그 바로 동쪽으로 프란시스코 비토리아 같은 유명한 도미니코회 학자들이 공부했던 산 에스떼반 수도원, 그리고 서쪽으로 이 구 예수회 신학교의 첨탑이다.[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1492년. 이러니 단순히 그라나다 정복,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같은 외부적, 정치적 사건 뿐만 아니라 내부 문화사적으로도 (스페인 관점에선) 1492년이 중세가 끝나고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 자체 학계 기준으론 근대사, 영미권 학계 분류상으론 근세가 시작한 해라 할만큼 중요한 것이다.[23] 바야돌리드, 시구엔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도 대학 비슷한 colegio mayor란 고등 교육기관은 있었는데 어쨌든 정식으로 교황청에서 univsersitas라 인가 받은건 살라망카 밖에 없었고 그 다음으로 오래된 정식 대학은 1241년에 인가받은 바야돌리드 대학이다. 1499년에 설립되어 19세기에 현대 마드리드로 이전하며 콤플루텐세 대학의 전신인 알칼라 데에나레스대학은 위상이나 규모는 스페인 제국 전성기에 살라망카 대학과 함께 스페인 지식인 사회를 양분할만큼 중요하게 컸지만 연혁 자체는 두번째로 오래되기는 커녕 카스티야-레온 연합왕국 내에서도 바야돌리드, 산티아고 대학보다 늦게 설립됐고 구 아라곤 왕국령까지 포함하면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대학보다도 역사가 짧다.[24] 현재는 바야돌리드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바야돌리드 관구 하에 있다.[25] 그 주변에 콘 아이스크림 든 용도 찾아보자 더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