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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저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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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명칭이 복주인 한국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안동시 문서 참고하십시오.867년 건설된 서선사(西禅寺)와 시가지
민장강과 타이장구의 마천루들
1. 개요[편집]
중국 동남부 푸젠성의 지급시이자, 푸젠성의 성도.[1] 인구는 765만 명이다. 시가지 자체만 무려 450만명이 거주하며, 강을 따라 마천루가 즐비하여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한다. 한자 독음은 복주로, 복건 지방의 '복'에 해당한다.
얼핏 보면 항구도시로 착각하기 쉽지만 민장 강 하류에 위치해 있으며, 강북의 구도심과 하중도의 신도심이 7개의 다리로 연결된 구조이다. 현재는 강 하구를 가로지르는 다리들 때문에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하지만, 여러 하중도를 중심으로 여러 부두가 설치되어 있다. 대략적인 위치는 원저우와 취안저우/샤먼 의 사이에 있고, 대략 100km 정도씩 떨어져 있다.
여담으로, 같은 푸젠성 소속도시인 샤먼은 부성급시인데, 푸저우는 성도인데도 그냥 지급시이다. 실제 인구나 경제규모로도 푸저우가 그냥 밀린다. 다만 역사성으로는 푸저우가 압도적이다. 5-10세기에 세워진 사찰이 많으며, 그중 화린사는 송대의 건축물이 남아있는 몇 안되는 장소이다. 19세기 중반에는 현지의 유럽인 공동체가 세운 성당들도 남아있다. 푸저우시 롄장현의 마쭈 열도는 중화민국이 실효지배중이다. 중국판 서해 5도라고 볼 수 있다.
2. 역사[편집]
송대인 964년에 세워진 화림사의 금당. 남중국 최고의 건물이다.
도시는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 때에 민중(閩中)군에 속했다가 기원전 202년에 한나라에 의해 야(冶)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푸저우라는 이름은 당나라 대인 725년에 붙여졌고 오대십국 시대에 푸저우는 민나라(閩 893 ~ 945년)의 수도였다. 당송 대에 여러 불교 사원들이 지어졌는데 동시에 유학도 흥하여 주희가 머물기도 하였다. 명나라 대에는 당시 쇠퇴해 가던 남쪽의 취안저우를 대신한 무역항으로 기능하였다. 정화의 대원정 함대가 출항한 곳도 바로 푸저우였고 1842년의 난징 조약에서 청나라가 서구에게 개방한 5개의 항구 중 하나였다. 청말의 흠차대신 임칙서가 이곳 출신이다.
1933년부터 1934년까지 잠시동안 건설되었던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공화국(中华共和国)[2] 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3. 휘하 행정구역[편집]
3.1. 시할구[편집]
- 구러우구(鼓楼区)
- 타이장구(台江区)
- 창산구(仓山区)
- 마웨이구(马尾区)
- 진안구(晋安区)
- 창러구(长乐区) - 중화민국 영토인 푸젠성 롄장현 쥐광향이 명목상 관할구역으로 포함되어 있다.
3.2. 현급시[편집]
- 푸칭 시(福清市)
3.3. 현[편집]
- 민허우 현(闽侯县)
- 롄장현(连江县)
- 뤄위안 현(罗源县)
- 민칭 현(闽清县)
- 융타이 현(永泰县)
- 핑탄 현(平潭县)
4. 교통[편집]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이 존재한다. 그러나 해당 공항은 대한민국에는 제주국제공항과만 연결되어 있어서 제주도 거주자가 아닌 사람이 푸저우에 가려면 샤먼을 거쳐서 가야만 한다. 그 외에는 푸저우 지하철이 2개 노선으로 개통되어 있는 상태이다. 사실 한국인들 입장에서 푸저우는 푸젠성의 샤먼이나 푸젠성 내부 객가인들 거주지와는 다르게 성도인 것 빼면 딱히 놀게 없는 도시이기는 하다.
철로로는푸저우역과 푸저우난역이 있다.
5. 여담[편집]
타이완에 있는 푸저우역과는 이름의 발음이 같은 동명이역이다. 푸저우에서 타이완 섬까지 직선 거리로 200km 가량 떨어져 있다. 또한 대만 치하인 난간 섬(중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는 같은 푸저우에 속한다.)으로 가는 배도 있다.
푸젠성의 푸가 이 도시이다. 젠은 현재 싼밍시에 속하는 젠닝현(建寧縣).
6. 출신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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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젠성 내 최대도시는 경제특구 지역인 샤먼시이다.[2]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신인 중화소비에트공화국과는 다른 국가다. 설립주체 역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중국공산당이 주체지만 이 중화공화국은 생산인민당(生产人民党)이 주체였다. 다만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서로 국경을 마주하였기에 영향를 많이 주고받기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