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크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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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 지휘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활약하였다. 동생 프리드리히 크뤼거는 학살로 악명높은 전범이지만 발터 크뤼거는 전선에서만 활동하여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2. 초기 행적[편집]
프로이센 왕국의 육군대령이던 알프레드 크뤼거의 아들로 당시 독일 제국 영토이던 스트라스부르(현재는 프랑스령)에서 태어난 발터 크뤼거는 프로이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1908년 소위로 임관하여 제1차 세계 대전 때 제100경보병연대에 배속되었다. 종군 중 두 번의 부상으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은 크뤼거는 전후에는 군에 남지 않고 자유군단에 가입하여 발트해 지역에서 싸웠다.
3. 슈츠슈타펠 입대[편집]
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독일 국방군에 있었던 크뤼거는 1935년 4월에 친위대 중령으로서 무장친위대의 전신인 친위대 특무부대 게르마니아 연대에 이적하였다. 동생인 프리드리히 크뤼거도 돌격대에서 친위대로 이적했다. 얼마 후 크뤼거는 바트 퇼츠의 친위대 사관학교 교관이 되었는데 1939년 1월에 친위대 대령이 되어 1940년 1월부터 10월까지 경찰부대 참모장교가 되었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41년 4월에 친위대 소장으로 진급한 크뤼거는 1941년 8월부터 12월까지 제4SS 경찰장갑척탄병 사단장으로 일했는데 이 사단은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레닌그라드의 포위를 맡았다.[1] 1942년 1월에 친위대 중장으로 진급한 후 1943년 3월부터 10월까지 제2SS장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사단장을 맡아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했다. 그리고 43년 8월 그는 백엽 기사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이후 제6SS소속 무장군단(라트비아인 의용병 군단)을 이끌다가 1944년 6월에 친위대 대장이 되었다. 그의 부대는 1944년 9월까지 동부전선에서 싸우다 9월 부터는 라트비아에서 싸웠다.
1945년 1월 11일 그는 백엽검 기사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5. 패전과 최후[편집]
1945년에 군단은 라트비아의 쿠를란트에서 항복하여 동프로이센으로 퇴각하는 것을 소련군에게 발각되어 쫓긴 크뤼거는 나치 독일이 항복한지 2주 후인, 1945년 5월 22일에 자결했다. 동생이던 프리드리히 크뤼거도 앞서 5월 10일에 자결했다.
6. 평가[편집]
프리드리히 크뤼거는 폴란드의 SS 경찰고급지도자로서 유대인 학살에도 관여했지만 형인 발터 크뤼거는 기본적으로 전선의 무장친위대에서만 활동한 전형적인 군인이었기에 유대인 학살과 관련이 없어 동생보다 평판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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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일로 그는 기사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