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박유진(농구)
덤프버전 :
||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 선수였다. 현재는 창원 LG 세이커스의 코치 겸 D리그 감독이다.
마포중학교 3학년 때 농구를 하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설득했지만 반대가 심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양문의 코치의 테스트를 받고 용산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동기 정선규와 함께 전국대회 2관왕(제22회 협회장배, 제8회 학산배)을 달성했다.
그 뒤 한양대학교로 진학해 1년 선배였던 김종학과 성준모, 2년 후배 양동근과 함께 뛰었으며 흡사한 플레이와 안정적인 포스트 운영으로 코맥스배 2000 농구대잔치 예선경기에서 고려대를 누르고 4강 진출에 기여했다. 심지어 대학 3학년 시절 제38회 전국대학농구1차연맹전에서 미기상을 수상받았던 데다 마지막 학년 때는 주장도 맡은 경력을 지냈다.
대학교 졸업 후, 2라운드 1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입단해 루키 시즌 백업으로 15경기 출전했지만 2년차 때는 한 경기도 나가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해 2005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제대 후 원 소속팀으로 복귀했을 때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대표팀에 차출된 이규섭과 서장훈의 대체 멤버로 활약했다가 2007-2008 시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홈페이지 제작 업체에 취직했다가 코치였던 서동철의 연락을 받고 2011년 고양 오리온스의 매니저에 부임했으며 이후 오리온스의 전력분석관을 맡아 2015-2016 시즌에 우승을 함께 했다.
이후 박도경 홍보팀장의 연락을 받고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직해 2022년까지 전력분석관을 맡은 뒤 이듬해 2022-2023 시즌부터 코치 겸 D리그 감독을 맡게 되었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 선수였다. 현재는 창원 LG 세이커스의 코치 겸 D리그 감독이다.
2. 아마추어 및 선수 시절[편집]
마포중학교 3학년 때 농구를 하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설득했지만 반대가 심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양문의 코치의 테스트를 받고 용산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동기 정선규와 함께 전국대회 2관왕(제22회 협회장배, 제8회 학산배)을 달성했다.
그 뒤 한양대학교로 진학해 1년 선배였던 김종학과 성준모, 2년 후배 양동근과 함께 뛰었으며 흡사한 플레이와 안정적인 포스트 운영으로 코맥스배 2000 농구대잔치 예선경기에서 고려대를 누르고 4강 진출에 기여했다. 심지어 대학 3학년 시절 제38회 전국대학농구1차연맹전에서 미기상을 수상받았던 데다 마지막 학년 때는 주장도 맡은 경력을 지냈다.
대학교 졸업 후, 2라운드 1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입단해 루키 시즌 백업으로 15경기 출전했지만 2년차 때는 한 경기도 나가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해 2005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제대 후 원 소속팀으로 복귀했을 때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대표팀에 차출된 이규섭과 서장훈의 대체 멤버로 활약했다가 2007-2008 시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선수 은퇴 후[편집]
은퇴 후 홈페이지 제작 업체에 취직했다가 코치였던 서동철의 연락을 받고 2011년 고양 오리온스의 매니저에 부임했으며 이후 오리온스의 전력분석관을 맡아 2015-2016 시즌에 우승을 함께 했다.
이후 박도경 홍보팀장의 연락을 받고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직해 2022년까지 전력분석관을 맡은 뒤 이듬해 2022-2023 시즌부터 코치 겸 D리그 감독을 맡게 되었다.
4. 여담[편집]
- 고등학교 시절 당시 MBC에서 방송된 일요일 일요일 밤에 허재 편에서 잠깐 카메라에 비추기도 했다.
5. 관련 문서[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20:58:16에 나무위키 박유진(농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