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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람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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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산 왕조의 제6대 샤한샤.
2. 생애[편집]
바흐람 2세의 아들로, 부친이 280년대 초 사카스탄의 호르미즈드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뒤 그 지역의 왕이 되었다. 293년 바흐람 2세가 사망한 뒤, 타르투스의 아들 바넘과 메샨의 왕 아두르파로바이의 지원으로 샤한샤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나이가 어렸고, 조로아스터교의 대사제 카르티르(Kerdīr)는 일찍이 바흐람 2세에 의해 대귀족의 반열에 올랐지만 지난날 로마군에 의해 수도 크테시폰이 함락되는 등 로마 제국의 위협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미숙한 통치자가 샤한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그는 여러 귀족의 동의를 얻어 아르메니아의 왕 나르세스 1세에게 크테시폰으로 와서 샤한샤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샤푸르 1세의 아들이자 유력한 황위 계승권자였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황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20여 년간 칼을 갈아왔던 그는 마침내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즉시 군대를 일으켰고, 4개월 만에 크테시폰 외곽까지 이르렀다. 카르티르와 귀족들은 가르메칸 지방의 바쿨리에서 나르세스를 접견한 뒤 샤한샤로 추대했다. 나르세스는 바흐람 3세와 바넘에게 즉시 항복한다면 신변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동의했고, 나르세스는 수도에 입성했다. 그 후 바넘은 긴급 체포된 뒤 처형되었지만, 바흐람 3세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나르세스는 비사푸르에 세워진 바흐람 1세의 부조에 새겨진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고, 왕의 말 아래 쓰러진 적의 엎드린 형상을 추가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