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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무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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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갈리에누스 황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당했다.
2. 생애[편집]
출신성분이 어땠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기 어려우나,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이집트로 이주한 이들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우미치노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그는 기사계급이었고 필리푸스 아라부스 황제 휘하에서 갈리아 세 속주의 수송 감독관, 알렉산드리아 펠루시 감독관, 그리고 오스티아 항구의 식량운송관을 담당했다고 한다.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256년에 그를 이집트 플라에펙투스로 임명했다. 성직자이자 기독교 역사가 에우세비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의 서신을 자신의 역사서에 그대로 실었는데, 이에 따르면 많은 기독교인이 무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에게 탄압당하여 비참한 처지에 내몰렸다고 한다.
260년경,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에메사 전투에서 사산 왕조의 샤푸르 1세에게 참패하고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이에 동방의 잔여 로마군은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의 지휘하에 사산 왕조군을 격퇴한 뒤, 마크리아누스의 두 아들을 황제로 추대했다. 이때 아이밀리아누스도 마크리아누스 일가를 지지했다. 그러다 마크리아누스가 일리리쿰 전투에서 갈리에누스 황제가 급파한 아우레올루스에게 패하여 전사하자, 그는 황제를 칭했다. 이에 갈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 테오도투스가 이끄는 군대를 파견하였고, 테오도투스는 262년 3월 30일 테베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아이밀리아누스를 생포한 뒤 곧바로 처형했다. 하지만 테오도투스 역시 반란을 꾀하다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이렇듯 이집트를 다스려야 할 이들이 차례로 살해당하면서 이집트에서 대혼란이 벌어지자, 팔미라 제국을 건국한 제노비아는 이 틈을 타 이집트를 공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