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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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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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샤를 7세의 대관식.jpg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백년전쟁 시기인 1429년 6월 29일 ~ 7월 16일, 프랑스군이 도팽 샤를을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로 옹립하는 대관식을 거행하기 위해 랭스로 행진하면서 벌어진 전역.


2. 상세[편집]


1429년 5월 8일 오를레앙 공방전에서 잔 다르크의 활약으로 잉글랜드군을 물리친 아르마냑파 프랑스군은 6월 18일까지 루아르 원정을 단행해 오를레앙 인근 루아르 강 계곡에 주둔하던 잉글랜드군을 물리치고 6월 18일 파테 전투에서 존 파스톨프 휘하 잉글랜드군 5,000명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파리로 몰아냈다. 상황이 이렇듯 유리해지자, 잔 다르크는 도팽 샤를에게 랭스로 행진해서 대관식을 거행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샤를은 부르고뉴파의 지배를 받고 있는 랭스로 가기를 거부했다. 그는 슐리슈흐르와흐에 한동안 머물다가 군대를 오를레앙으로 철수시킨 뒤 그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려 했다. 하지만 잔은 역대 프랑스 국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한 랭스로 가야만 프랑스 백성들이 그를 진정한 국왕으로 받들 것이라며 자신의 뜻을 고집했다. 6월 21일, 잔은 플뢰리 수도원에서 샤를과 대면해 하느님의 뜻이 그가 프랑스 국왕으로 군림하는 데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고 랭스로 행차해달라고 호소했다. 잔 다르크에게 감화된 많은 장군과 병사들도 그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6월 22일, 도팽의 대평의회는 장시간 논의한 끝에 기옌에서 군대를 집결여 랭스로 진군하기로 결의했다. 6월 29일, 프랑스군은 기옌에서 랭스를 향한 원정에 착수했다. 당시 잔 다르크에게 매료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프랑스군의 규모는 12,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파리에 도사리고 있는 잉글랜드군이 중도에서 요격할 수 있고, 부르고뉴파가 순순히 자기 땅인 랭스를 내줄 리 없었기에, 이 진군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래서 샤를은 아내 마리 드 앙주와 아들 루이는 이번 원정에 참여하지 않게 했다.

당대 연대기에 따르면, 프랑스군은 랭스로 진군하는 동안 각지에서 달려온 민병대 덕분에 숫자가 급격하게 불어나 나중에는 말을 탄 사람이 33,000명, 보병이 40,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이를 과장으로 간주하지만, 프랑스인들이 열띤 호응을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본다. 프랑스군은 보니쉬르루아르와 생파흐고에 무혈 입성한 뒤 오세르로 향했다. 오세르의 수비대는 성문을 열기를 거부했지만, 프랑스군이 성벽 밖에서 쉬면서 재보급하는 것은 허용했다.

프랑스군은 오세르를 지나쳐 생플로랑탱으로 이동해 역시 무혈 입성했다. 7월 4일, 그들은 도팽 샤를의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 헨리 6세가 잉글랜드 겸 프랑스 국왕이 되게 한 트루아 조약이 체결된 장소인 트루아에 도착했다. 부르고뉴군 500~600명이 주둔한 이곳은 성문을 열지 않았고, 오세르와는 달리 적대 행위를 거리낌없이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잔은 편지를 보내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기를 권유했다. 이에 트루아 시민들은 리샤르 신부를 잔에게 보냈다.

리샤르는 마녀를 퇴차한다면서 잔에게 성수를 뿌렸다. 하지만 잔이 화를 내기는 커녕 경건한 태도로 리샤르를 대하자, 그는 금새 잔에게 감화되어 트루아로 돌아가서 잔이 성녀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트루아 시민들이 항복하려 하지 않자, 장군들은 트루아를 그냥 지나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잔은 "하느님이 정당한 국왕으로 옹립하시려는 샤를 왕자님을 받들지 않는 자들을 내버려두면 화근이 될 것이다"라며 반대했고, 프랑스군은 공성전을 준비했다. 그 모습을 본 트루아 주민들은 그제야 항복 의사를 밝혔지만, 샤를 7세와 지휘관들만 트루아에 들어오게 했다. 이리하여 프랑스군은 트루아에 도착한 지 5일만에 그곳의 항복을 받아냈다.

당시 부르고뉴파와 잉글랜드군은 이권다툼을 벌이느라 사이가 매우 소원해졌고, 크하벙 전투 때 아르마냑파 프랑스군을 상대로 힘을 합쳐 싸웠던 것과는 달리 개별적으로 작전을 세우고 서로 협력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일전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니, 잉글랜드군이 부르고뉴를 도울 의지가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부르고뉴 측이 단독으로 아르마냑파를 막아야 했지만, 민심이 그쪽으로 완전히 쏠려서 많은 도시가 곧바로 항복하고 병사들도 전의를 상실했으니 승산이 없었다. 급기야 트루아 마저 샤를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량공 필리프는 랭스를 떠나 파리로 도주했다.

7월 11일, 아르마냑파 프랑스군은 트루아를 떠나 샬롱앙샹파뉴로 향했고, 7월 14일 항복을 받아냈다. 7월 16일 프랑스군이 랭스에서 21km 떨어진 샙트소에 있는 랭스 대주교의 성에 도착했다. 이후 샤를은 랭스 시민들에게 성문을 열 것을 촉구했고, 주민들은 선량공 필리프와 잉글랜드군이 구하러 올 때까지 6주 동안 저항하겠다는 서약을 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였다. 샤를은 내일 거행할 대관식에 관해 랭스 유력 인사들과 협상했다. 협상이 끝난 뒤, 샤를은 "부르고뉴와 잉글랜드에 대한 묵인과 불복종으로 인해 랭스 주민들에게 선고된 처벌, 벌금 및 몰수를 폐지하는 특허 서신에 서명하고 저녁 식사를 한 뒤 랭스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잔 다르크는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파일:Jeanne_d'Arc_-_Panthéon_III.jpg
샤를 7세의 국왕 즉위 장면을 그린 그림인 랭스의 잔
(Joan in Rheims, 쥘 외젠 르네프뵈(Jules-Eugène Lenepveu) 작, 1889, 캔버스에 유화).
이미지는 Tijmen Stam가 올렸으며 원본 그림은 19세기 이래 프랑스 팡테옹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1429년 7월 17일 일요일, 샤를 7세는 랭스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당시 왕관, 홀, 지구본 등 역대 대관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물건들은 여전히 잉글랜드가 소유한 생드니에 있었고, 대관식에 참석한 성직자는 랭스의 르노 샤르트르 대주교, 라온의 기욤 주교, 샬롱의 장 자르브뤼켄 주교 등 3명 뿐이었다. 샤를은 샤르트르 대주교 르노로부터 신성한 암풀라(Holy Ampulla )에 담긴 기름에 머리를 적심으로써, 자신이 프랑스의 진정한 국왕임을 널리 알렸다. 이날 대관식에 참석한 잔은 한쪽 무릎을 꿇고 샤를에게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고귀하신 왕이시여,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고 당신을 이 랭스 시로 데려가서 거룩한 대관식을 치르기를 바라셨던 하느님의 뜻이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왕이며 프랑스 왕국이 속해 있어야 할 사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베드퍼트 공작 존은 샤를 7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1429년 11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헨리 6세의 잉글랜드 겸 프랑스 국왕 대관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수많은 프랑스인들은 이미 샤를을 프랑스의 국왕으로 여겼고, 잉글랜드는 갈수록 수세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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