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강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손님"
고급스러운 복장을 한
여주인이 여관의 정문에서 라스를 맞이했다. 아무래도 고급 여고나인 모양이었다. 겉모습만 보고 일반 여관일 것이라 생각했던 라스는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야숙을 해야할 판이니 비싸더라도 묵을 수 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싼 방으로 부탁드립니다."
"예~! 일인실로 모시겠습니다!"
여주인이 손뼉을 치자 하인이 방으로 안내했다. 이불에선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고 뽀송뽀송해서 바로 몸을 뉘이고 싶게 만들었다. 라스의 내면의 충동질에 갈등하고 있을때 하인들이 목욕물이 준비되었다 알려주었다. 여독을 풀기엔 그만한 것이 없었다. 하오리를 걸친 하인이 들어와 양팔을 걷으며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을 땐 조금 놀랐지만 말이다.
"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저희 적강장의 기본 서비스 입니다. 서비스 서비스!"
"아, 네... 저기, 식사는 가장 싼 걸로 부탁드립니..."
"예입! 목욕이 끝날 때를 맞춰 식사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라스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저녁을 준비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라스는 참담한 마음을 표할 길이 없었다. 연회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 찐 떡향이 코를 자극했다. 커다란 냄비에는 내륙에선 구하기 힘든 통문어가 맛있는 보랏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야들야들하게 기름기를 머금은 육고기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여주인은 상차림을 보고 넋이 빠진 라스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식기 전에 드시지요."
"아니... 제 저녁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희 적강장에서는 나그네의 여독을 풀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로 추가 비용을 청구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과연! 고급 여관은 제가 상상하던 곳 이상이었군요!"
라스는 상상하지도 못한 극진한 대접에 감탄, 또 감탄하고 말았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가는 순간 그는 자신을 절제할 수 없게 됐다. 먼 길을 이동해야되는 동안에는 건량 같은 걸로 식사 같지도 않은 식사를 해야 했고, 어디에 묵더라도 항상 검소한 식단을 지향했던 라스에게 적강장에서의 저녁 식사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포근한 잠자리, 몸을 녹이는 듯한 목욕, 그리고 그 몸을 다시 채우는 산해진미로 가득한 저녁상은 그야말로 천상의 것처럼 느껴젔다. 라스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수도승처럼 금욕한 삶을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잠자리에 몸을 뉘일 때 까지 라스는 일생에 최고의 하루라 생각했다. 밖에서 소란스라운 소리가 들려와 그의 잠을 방해하기 전에는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손님. 그게..."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밥을 가져와란 말이야, 밥을!"
라스는 허리에 검을 차고 객실을 나섰다. 밖에는 그와 같은 떠돌이 무사로 추정되는 젊은 사내가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라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그네라면 지붕을 빌려 이슬을 피할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진 못할 망정?"
"뭐야? 넌 누군데 감히!"
사내는 대번에 칼을 뽑았다. 하인들은 대경을 하여 여주인을 그에게서 멀찌감치 모셨다. 라스는 몇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사내의 검이 다른 사람들을 해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하였다. 라스가 보기에 사내는 애송이 검사였다. 어디서 굴러먹으며 고생은 한지 모르겠지만 검에 휘둘리는게 풋내기 티를 벗지 못한 채였다. 라스는 칼을 뽑지 않고 그를 흠씬 두들겨 주었다.
"으어억? 누구냐? 전장에서도 너처럼 싸우는 무사는 본적이 없다!"
"견문이 좁군."
"너, 너어..! 내가 누구 아들인지 알고...?!"
"네가 누군지도 궁금하지 않은데 네 아비가 궁금할까?"
따악!
정수리를 내리치자 사내는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난동을 피우던 작자를 처리하자 적강장의 하인들이 환호했다. 라스는 여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지었다. 이들의 극진한 대접에 조금이라도 답례를 했다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무사님!"
"아니요. 당연한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굉장히 강하시던 걸요? 역시 전쟁터를 누비던 역전의 용사다우세요!"
여주인은 라스를 치켜세워주었다. 라스는 구태여 자신은 전쟁터에서 구르던 무사가 아니라 떠돌이 해결사라 정정하지 않았다. 그저 기뻐하는 여주인에게 마주 웃어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