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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드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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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금융인.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이자 전 이탈리아 총리이다.
2. 생애[편집]
베네토 주 파도바 태생의 은행가 아버지와 남부 태생의 약사 어머니 사이에서 3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살 때 아버지가, 19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로마의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케인즈파 경제학자였던 페데리코 카페 밑에서 공부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1976년에는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1975년부터 대학 교수를 시작해 여러 대학을 거쳐 1981년부터 1994년까지 피렌체 대학 경제통화정책과 교수로 재직했다. 중간에 세계은행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한 적도 있고 1983년에는 지오반니 고리아 재무장관의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1년 이탈리아 재무부 국장에 역임돼 2001년까지 재임했고 2002년에는 골드만삭스 부회장 겸 전무이사에 임명됐다.
그리고 2005년 12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될 것이라고 언론보도되었고 2006년 1월 16일부터 임기를 시작해 2011년 10월 31일까지 역임했다.
2.1. ECB 총재[편집]
장클로드 트리셰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인 2008년부터 이미 마리오 드라기가 후임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처음에는 마리오 드라기를 반대했다.
그 이유는 마리오 드라기가 골드만삭스에 재직하던 시절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한 ERM 2 가입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당시 골드만삭스한테 분식회계 컨설팅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리오 드라기는 자신이 골드만삭스에 취업하기 직전에 이미 그 분식 회계용 스왑계약이 마무리 단계였고 본인은 골드만삭스와 그리스 정부의 협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독일의 반대를 '기권'으로 약화시키고 유럽의회의 인사청문회를 간신히 통과하여 2011년 11월 1일부터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올랐다.
2011년 유로존 위기 한복판에서 드라기가 총재직에 올랐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했다. 이 때문에 드라기는 유럽연합과 각 회원국 정부, EFSF, 유럽의회를 설득하여 유로화에 대한 양적완화를 시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2년부터 유럽연합 ECB에서도 양적완화가 시행되고, 2015년에는 일시적인 마이너스 금리(-0.1%)까지 도입하여 유로존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Whatever it takes)"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과감한 정책으로 폴 크루그먼에게서 "현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5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유로 신권에는 바로 이 사람의 서명(M. Draghi)이 들어가 있다. 2019년 에 크리스틴 라가르드 가 유럽중앙은행 총재로 지명되었는데 당시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여러 후보들을 언급하며 그 중 전 핀란드 은행 총재 에르기 리이카넨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바 있다.
2.2. 정계 입문[편집]
퇴임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자문기구인 사회과학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임명했다. #
2021년 2월에 주세페 콘테 총리 사임 이후 총리 제안을 받았다. # 콘테 1기 내각을 이루었던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의 지지를 모두 이끌어낸 데다 콘테 2기 내각을 구성했던 민주당 및 마테오 렌치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 #
거기에 더해 본인을 이탈리아 중앙은행장으로 임명해 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포르차 이탈리아 또한 드라기에게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총리 등극이 매우 유력시된다. 내각 인선이 끝나는 대로 이탈리아의 형제들[1] 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파의 지지를 받아 총리에 정식 취임할 것으로 전망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사실상의 거국내각이 출범한 것.
2.3. 이탈리아 총리 재임[편집]
자세한 내용은 마리오 드라기 내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총리직 이후[편집]
2023년 3월, 옌스 스톨텐베르그의 뒤를 이을 차기 나토 사무총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총리 시절 독일, 프랑스와 함께 대러시아 제재를 주도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왔다는 점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3. 기타[편집]
- 로마 출신 답게 AS 로마 팬이다.
- 유럽은행 총재 시절, 유로화를 구하면서 그에게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재밌는 점은 드라기 이전의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 중심 거국내각 총리였던 마리오 몬티 역시 별명이 슈퍼 마리오였다는 점. 더불어 외교장관은 루이지다.
- 성씨인 Draghi가 drago(드래곤)의 복수형인 탓에 드래곤과도 많이 엮인다.
- 공직자 재산 신고 현황에 따르면 국내·외에 건물 10채를 단독 또는 공동으로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채는 영국 런던에 소재한 것이다. 보유한 토지도 6개였다.# 이 때문에 총리 월급을 받지 않고 있다.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내각 시절에 기회균등부 장관을 맡았던 모멜 출신의 마라 카르파냐를 남부 및 지방 단결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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