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게도, 동구청 신청사 건립 추진 이전의 이장우는 대전복합터미널 추진 및 조기완공, 철도기관 공동사옥 유치, 대전 문학관 건립 등 무능은 커녕 치적이 화려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심지어 국회의원 시절에는 대전역세권개발사업까지 따냈을 정도. 당시에 이미 쇠락해가던 동구 입장에서는 대부분 미래를 건 역점사업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지금 동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 대부분이 이장우 때 이루어진 사업이다. 특히 대전복합터미널은 몇년째 삽도 못 뜨고 있는 유성복합터미널과는 딴판으로 속전속결로 끝난 덕분에(유성복합터미널이 추진부터 착공까지 걸린 기간의 반의 반도 안 걸리고 완공했다) 지금까지도 대전의 주요 관문이자 동구-대덕구 일대의 핵심 상권으로 기능하고 있을 정도. 그런데 여기서 만족을 못하고 마지막으로 당시 숙원사업 중 하나인 동구청 신청사를 유리궁전으로 지으면서 엄청난 예산낭비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치적은 묻히고 지금은 대부분 동구 예산을 말아먹은 구청장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 그런 탓에 동구는 대전의 다른 자치구들에 비해 빚이 많고 재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당시 동구 공무원들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냐 없냐 할 정도로 심각하게 쪼들렸다. 다행히 시에서 지원을 해준 덕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한때 지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000,#fff 동구민을 위한 혁신의 바람 동구가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관광 NO.1 / 복지 NO.1 / 도시혁신 NO.1 / 안전 NO.1 1자 4개가 서로 연결되어 바람개비의 형상을 하고 있고 가운데 '■'은 대전의 중심으로서 동구의 위상을 상징하고 내부의 꽃모양은 친절 서비스 정신을 상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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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width=33%><colbgcolor=#ffffff,#2d2926> 1995년 ~ 2000년 || ||
동구의 브랜드 슬로건
자유로운 공직 분위기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소통하고, 구민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한 정책을 적기에 바로 추진해 동구를 새롭게 구민을 신나게 만드는 행정을 추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역대 브랜드 슬로건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width=33%><colbgcolor=#ffffff,#2d2926> ||2022년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이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슬로건 ||
동구의 구정 슬로건
'~를 새롭게, 구(시,군)민을 신나게'라는 패턴은 대전 동구 말고도 민선 8기 국민의힘 지자체 상당수[8]
서울 강동구, 인천 옹진군, 충남 아산시, 경남 창녕군 등. 심지어 광역지자체인 충북(도지사: 김영환)도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라는 도정 슬로건을 걸어놨다.
일제강점기부터 발전한 다른 지역들(서울, 대구, 부산, 목포, 광주 등)은 n가(일제강점기에는 n정목(쵸메, 丁目)) 식의 법정동 지명이 그대로 존치되었으나 대전은 각 정목들이 모조리 쪼개져 각각의 동으로 분리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일제강점기 당시 원동, 인동, 효동은 모두 혼마치로 묶여있었다.(정확히는 원동이 혼마치잇쵸메(本町一丁目), 인동이 혼마치니쵸메(本町二丁目), 효동이 혼마치산쵸메(本町三丁目))
또한 삼성동도 있는데, 서울강남구의 삼성동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른 동네다. 자양동, 가양동도 마찬가지다. 용운동에는 대전대학교가 있는데 유명 야구선수 김태균과 류현진이 이 학교 출신이며, 한 때 음치개그로 잘 나가던 개그맨 김미연도 이 학교 무용학과 출신이다.
옥천군 방향으로 경부선세천역이 있는데, 이 역의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대청동(구 동면) 및 산내동(구 산내면)은 1989년 대덕군 폐지와 함께 면에서 동으로 전환된 지역으로, 아직까지 시골 지역으로 남아있다. 산내동은 산내 포도가 유명하다. 산내동 중 낭월동엔 천주교 공동묘지가 있으며, 한국전쟁의 비극인 '산내 양민학살'의 현장도 이 곳에 위치해 있다.
대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힌다. 사실 원래부터 낙후된 동네는 아니었고, 오히려 동구는 대전에서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서구와 유성구 일대가 개발되면서 동구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한다. 정부대전청사와 대전광역시청 등 관공서와 공공기관, 기업체와 상점들이 둔산신도시 등지로 이동하며 기존 원도심인 동구가 쇠퇴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전역과 대전복합터미널, 철도기관 공동사옥이 동구에 소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외부인들로 수입을 벌어들이는 형국이다. 이후 이 일대가 혁신도시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미래가 그리 어둡지는 않은 편이다.
관할 법정동은 소제동·신안동·원동·정동·중동이다. 대전군 대전읍에 속했다. 원래 각 법정동별로 행정동이 있었으나 1998년 원동·정동·중동이 합병되어 중앙동이 출범하였고, 2008년에 소제동·신안동(대신동에서 편입함)을 흡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인구는 3,965명.[P]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
대전역이 있는 중동, 북쪽으로 정동, 동쪽으로 소제동과 신안동, 남쪽으로 원동이다. 대전이 경부선 철도를 통해 성장한 도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곳은 그야말로 대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동네다.
역주변이 다 그렇듯 이곳 또한 상당히 낙후되어 있고, 정동쪽 골목으로는 쪽방촌이 형성되어 있다. 대전역만 나오면 아줌마들이 붙잡으며 호객행위를 하는것도 정동과 중동의 쪽방촌 골목인데, 웬만하면 따라가지 말자. 특히, 소제동쪽으로 가면 미칠듯한 괴리감이 드는데 소제동쪽이 역 뒤에 있다보니 대전역 건물이나 그 근처에 우뚝 세워진 건물과 1960~70년에 지어진 건물이 부조화를 이뤄서 그런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6.25 전쟁 당시 대전 점령 사진으로 나오는 지역이 바로 이 곳. 참고로 여기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곳의 쪽방촌들을 밀어내고 혁신도시를 세울 계획이 잡혀있는데 쪽방촌 주민들은 당연히 비대위까지 세우며 반발하고 있다.
대전역이 있고, 과거 구도심의 흔적 등도 있어 동구 도심 지역, 더 나아가 대전시내 도심 지역들중 보수세가 제일 강하다. 이곳은 박근혜 탄핵 뒤 치뤄진 19대 대선에서 이 지역은 홍준표 후보가 승리했으며, 보수정당이 최악의 참패를 당했던 7회 지방선거 대전시장 선거에서도 이 지역은 박성효 후보가 승리했다. 심지어 박성효 후보는 당시 대전 전체 행정동에서 동구 중앙동, 대청동, 서구 기성동 단 3곳만 승리했는데, 대청동과 기성동이 대전에 단 두 곳밖에 없는 미개발지인 것을 감안하면 대전 시내지역에서는 이곳만 유일하게 승리했다. 다만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이곳에서는 상위 10위안에 들지 못해 대전 도심에서 보수성향이 제일 강하다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관할 법정동은 신흥동·인동이다. 대전군 대전읍에 속했다. 원래 법정동별로 행정동이 따로 있었으나 2008년에 통합되었다. 인구는 15,345명.[P]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
대전역에서 원동을 지나 옥천방향으로 틀면 신흥동, 금산방향으로 틀면 인동이 나온다. 인동은 대전시 초창기 때 가장 번성했던 동네로 지금도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신흥동엔 야구로 유명한 충남중학교가 있으며, 이전에 있었던 판자촌을 대거 철거하고 신흥 SK뷰(1,588세대)와 같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대덕구 법동에 있던 대전동부경찰서가 이 곳에 신축하여 이전했다. 신흥동버스정류소에서 옥천, 금산, 보은방면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학교는 신흥초, 충남중이 있다.
관할 법정동은 가오동·천동·효동이다. 효동의 경우 대전군 대전읍에 속했고, 천동은 대전군 외남면에 속했다가 1932년 대전읍에 편입되었다. 가오동은 대덕군 외남면에 속했다가 1940년 산내면으로 넘어갔고 1963년 대전시에 편입되었다. 인구는 23,142명[P]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
으로 동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대전직할시 출범 이전에는 대덕군 산내면의 경계지역에 있는 변두리 동네였다. 요즘은 효동 바로 옆동네 신흥동에 신흥역이 개통되고 천동 재개발로 아파트단지가 생기고 가오동에도 소규모 신도시가 조성되어 점점 뜨더니 홈플러스 대전가오점과 CGV 대전가오[14]
원래는 롯데시네마가 운영했는데 CGV로 바뀌었다.
가 생겼고 심지어 스타벅스가 오픈했다. 가오동의 경우 2006년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고 이후로도 아파트가 계속 생기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10년 전에는 가오중과 대전맹학교, 대전혜광학교밖에 없었고 그 주변은 논밭이었다. 여담으로 아파트들이 은어송마을 n단지로 불린다. 특히 중앙동에서 강탈해온 동구청이 이곳 가오동에 위치해 새로운 동구의 중심지로 뜨고 있다.[15]
버스 노선은 동구 중심지답지 않게 512, 514, 608, 618밖에 없으며 이 네노선 전부다 배차간격이 15분이상으로 상당히 규모에 비해 불편한 편인듯 하나, 가오동의 중심이 되는 홈플러스 사거리 기준으로 5분 정도만 걸어내려와도 511을 탈 수 있고 조금 더 걸으면(이곳은 가오지구 소속이지만 이미 대성동이기는 하다) 급행 2번을 탈 수 있다.
다만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면서 혜광학교와 맹학교가 더 외딴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로는 효동현대아파트(1,056세대), 은어송마을1,3~6단지 등이 있으며, 500세대가 넘는 아파트단지들도 많다. 리더스시티 개발이 완료되면 인구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1995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원도심의 마지막 방송국이자 희망이었던 대전방송 사옥이 대전천변 효동에 있었다. TJB의 모기업인 우성사료의 본사 부지였다. 우성사료는 본사를 오정동으로 이전하고 기존 본사 사옥을 TJB로 활용하였던 바 있다. 현재 TJB는 도룡동 신사옥으로 이전하였고 구 사옥에 2017년 대전국악방송이 들어섰다.
관내 학교는 가오초, 천동초, 대전가오중, 대전가오고 및 특수학교인 대전맹학교, 대전혜광학교가 있다.
동구에서 신도시로 개발한 몇 안되는 곳이라 그런지 동구 내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높다. 20대 대선때도 다른 지역이 줄줄이 쓸려나가는 와중에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당선인에게 동구 내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곳이다.[16]
단 같은해 지방선거 대전시장 선거에서는 이장우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물론 동구 최저 득표율이긴 하지만.
판암역, 판암차량기지통영대전고속도로판암IC가 있으며 옥천으로 나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다. 옥천로 주변에 있는 주거지역으로 대부분의 인구는 법정동 판암동에 몰려 있다. 아파트단지는 주공아파트1~2차(2,146세대), 삼정 그린코아 포레스트(1,245세대) 등이 있다. 학교는 판암초가 있다.
둘 다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둘 다 대전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대동은 1931년 대전읍에, 용운동은 1940년 대전부에 편입되었다. 대동의 경우 1972년에 행정동이 1,2동으로 분리되었고, 1998년에는 대1동이 신안동과 합병되어 대신동(대2동은 대동으로 개칭)이 되었다가 2008년에 대동과 대신동이 합병되어 지금에 이른다. 법정동으로 남아 있던 신안동은 중앙동에 편입되어 나갔다. 용운동은 행정동의 변천이 없었다.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고 맹인촌도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많은 거주지역이어서 전형적인 달동네 이미지였으나, 대동역이 있는 대동오거리 주변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이스트시티1단지(1,345세대), 새들뫼휴먼시아1~2단지(1,272세대) 등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낙후된 이미지는 탈피하였으나, 대동의 원주민들이라 볼 수 있는 저소득층들은 대동이 재개발되면서 상당수 더욱 좋지 않은 동네로 쫓겨났다. 지금 대동 아파트단지 거주자들의 대부분은 대동이나 인근 동네의 원주민들이 아니라고 봐도 좋다. 학교는 대동초, 한밭여중, 대전여고가 있다.[17]
대전여자고등학교는 대전에서 성적과 대학진학률이 낮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특히 성적은 2014년 졸업생까지는 인문계고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이유를 보면, 지금은 덜하지만 2009~2010년도 까지만 해도 대전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소득을 보면 저소득층으로 불리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이 대전여고 전교생의 50% 이상으로 나올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던 동네이기 때문이다. 인문계(일반계)고의 극빈자가 전교생의 50% 수준이라면 다들 놀라는 수준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워낙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많았었다. 교사들이 기초생활수급자 학비 지원 신청서를 교실에서 대놓고 뿌려도 학생들이 신경 쓰지도 않았을 정도다. 이는 대전여고뿐 아니라 인근의 다른 초중고 역시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대동도 그렇고 대동 주변 동네도 그렇고 워낙에 가난한 저소득층들이 워낙 많이 살았기 때문.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생긴 관계로 이렇게 가난한 학생들이 많지는 않다.
'여자고등학교'라 불리지만 인문계가 아닌 특성화고(전문계)이다. 중구 신일여고 또한 전문계 여자고등학교이면서 인문계처럼 여고라는 교명을 쓰고 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관계로 교명을 바꿨다고 한다. 이래서 대성이나 신일이나 어린 학생들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인문계 여고로 착각하는 경우도 흔히 보인다.
과거에는 대전탑이라는 건축물이 교차로 중심에 로터리 형태로 있어서 대전탑로터리라고도 불리었다. 1970년 한진건설(현 한진중공업)이 지어서 대전시에 기증한 이 건축물은 도로확장과 교통량 증가 등의 문제로 1990년 철거되고 양 옆에 있던 동상은 대전톨게이트 입구에 옮겨졌다. 대전탑이 있을때 교차로의 모습. 현재 모습 (길 옆에 작게 만듦.)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전군 회덕면에 속했으며 1963년 대전시에 편입되었다가 1979년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분리되었다. 인구는 20,172명.[P]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
대전광역시 주관문 중 하나인 대전복합터미널이 이곳에 있다. 이전부터 대전IC가 인접하고 고속터미널이 있는 대전에 관문이라는 이점으로 둔산신도시나 원도심만큼은 아니어도 꽤 많은 기업체들이 이곳에 위치해있다. 대표적으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 한국전력공사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 CJ제일제당 충청지사, 조선일보 충청지사 등등.
과거 서로 인접해 있던 고속터미널(1979년)과 동부시외터미널(1980년)이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터미널 이용객 팽창 및 시설물 노후화로 이용객들의 불편함이 발생하였다. 결국 두 고속/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합해 대전복합터미널이 건설되었으며 2011년 12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과 주요 광역시급 노선은 물론이고 전국의 거의 모든 시 단위 도시를 연결한다. 대전복합터미널 본관(서관)의 1층은 고속버스,시외버스 매표창구와 큰 대합실로 이루어져 있고 2층은 신세계스타일마켓, 3~4층에는 이마트[28]
그리고 이마트 옆에는 홈플러스
가 5~7층에는 주차장이 있다. 구름다리로 연결된 별관(동관)에는 지하1층 박차장, 1층에는 하차장, 2층 대형 서점인 영풍문고 대전점과 3층 CGV 대전터미널점등이 있으며,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예식장은 아예 건물 확장을 하여 호텔까지 문을 열었다. 복합터미널 승객수가 평일 5만에서 주말은 7만 이상이라고 한다. 터미널 앞 동서대로가 10차선 입구쪽 출입도로는 6차선이다.
터미널과 그 상업시설로 인해 용전동은 대전 동부권의 중심 상권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역효과로 고속버스+시외버스+주차차량+마트고객이 합쳐져 가장 교통체증이 심하다던 서구 괴정동 롯데백화점을 능가하는 헬게이트를 형성하였다.[29]
특히 주말에 가 보면 레알 헬게이트를 볼 수 있다. 경찰이 항시 나와 교통정리를 해도 답이 안 나온다.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덕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1940년 대전부에 편입되었다. 1970년에 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으나 2008년에 도로 합병되었다. 인구는 11,084명.[P]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
용전동 복합터미널 도로 건너편에 있는 동네로, 옛 성남2동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달동네 이미지가 남아있다.[31]
구 성남2동 내 일부 지역은 2016년 초까지 도시가스도 놓이지 않았다.
옛 성남1동(현.성남동 구성2지구)은 KT를 제외한 모든 통신사에서 비대칭형 동축케이블을 설치해주고 일부 성남로32번안길 뒤에 성남쓰레기장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 대전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으나 몇몇 곳이 헐리고 주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많은 수가 떠났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달동네 철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스마트뷰(1,115세대) 등 고층 아파트가 재차 들어섰다. 과거 보신탕집, 조그만 사글셋방 비슷한 허름한 1~2층 건물에 만(卍)자 깃발을 걸어놓은 점집, 암자가 흔했던 곳이었던 만큼 토박이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동구 유일의 종합병원인 대전한국병원이 있으며 학교는 성남초가 있다.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대전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1931년 대전읍에 편입되었다. 1970년에 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으나 2008년에 도로 합병되었다. 인구는 13,402명.[*P ]
대전역과 상당한 지근거리에 있으나, 도로 하나 차이로 중앙동 5형제로 분류되진 않았다. 하지만 동네분위기는 별 차이 없다. 대신 한밭교육박물관이 이 곳에 있는데 한 때 초등학생들의 주 단골 방문지였으나 지금은… 그리고 바로 그 앞 건물은 박물관이 아니니 조심하자.[32]
관할 법정동은 구도동·낭월동·대별동·대성동·삼괴동·상소동·소호동·이사동·장척동·하소동이다. 구 대덕군 산내면의 동쪽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 인구는 19,748명.[*P ]
대전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며, 대청동과는 달리 비교적 개발이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시가지는 가오동에 붙어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대성동과 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낭월동에 형성되어 있으며 세대수로 가장 큰 아파트단지는 은어송마을2단지코오롱하늘채(1,241세대), 석천들주공아파트(1,072세대)이다. 남대전IC 바로 앞에는 중부권광역우편물류센터가 있다. 학교는 산내초, 산흥초, 은어송초, 대전은어송중과 소년원인 대산학교가 있다.
대청동과 같이 보수세가 강한 동구 내에서 외곽지역을 끼고 있는 동네이지만, 이곳은 남대전IC 인근에 물류단지도 있고, 대청동과 달리 일부 지역이 개발되고 있어 민주당계 정당이 어느 정도 선전하는 편이다.
[1] 45개 법정동, 16개 행정동[2] 2023년 10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3] 동구 가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 오관영, 강정규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 박철용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 박영순 비례대표 : 김영희[4] 동구 가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 이재규, 성용순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 정용, 김세은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 이지현[5] 동구 제1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 송인석 (초선) 동구 제2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 이상래 (초선) 동구 제3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 정명국 (초선)[6] 이 여파로 이장우는 5회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나, 이후 2016년 말 전까지는 유효했던 친박 버프를 받아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거기에 대전광역시장까지 되는 업적도 이루었다.[7] 우습게도, 동구청 신청사 건립 추진 이전의 이장우는 대전복합터미널 추진 및 조기완공, 철도기관 공동사옥 유치, 대전 문학관 건립 등 무능은 커녕 치적이 화려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심지어 국회의원 시절에는 대전역세권개발사업까지 따냈을 정도. 당시에 이미 쇠락해가던 동구 입장에서는 대부분 미래를 건 역점사업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지금 동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 대부분이 이장우 때 이루어진 사업이다. 특히 대전복합터미널은 몇년째 삽도 못 뜨고 있는 유성복합터미널과는 딴판으로 속전속결로 끝난 덕분에(유성복합터미널이 추진부터 착공까지 걸린 기간의 반의 반도 안 걸리고 완공했다) 지금까지도 대전의 주요 관문이자 동구-대덕구 일대의 핵심 상권으로 기능하고 있을 정도. 그런데 여기서 만족을 못하고 마지막으로 당시 숙원사업 중 하나인 동구청 신청사를 유리궁전으로 지으면서 엄청난 예산낭비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치적은 묻히고 지금은 대부분 동구 예산을 말아먹은 구청장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8]서울강동구, 인천 옹진군, 충남아산시, 경남창녕군 등. 심지어 광역지자체인 충북(도지사: 김영환)도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라는 도정 슬로건을 걸어놨다.[9] 대전역 주변은 거의 외자 돌림. 동구도 그렇지만 대전광역시 전체적으로도 한글자짜리 동명이 많다. 유성구에는 궁동, 갑동, 죽동 등 서구에는 변동, 내동. 대덕구에는 법동, 장동. 중구에는 목동.[10]일제강점기부터 발전한 다른 지역들(서울, 대구, 부산, 목포, 광주 등)은 n가(일제강점기에는 n정목(쵸메, 丁目)) 식의 법정동 지명이 그대로 존치되었으나 대전은 각 정목들이 모조리 쪼개져 각각의 동으로 분리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일제강점기 당시 원동, 인동, 효동은 모두 혼마치로 묶여있었다.(정확히는 원동이 혼마치잇쵸메(本町一丁目), 인동이 혼마치니쵸메(本町二丁目), 효동이 혼마치산쵸메(本町三丁目))[11]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의 인구가 합산됨.[12]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 인구가 제외됨.[괄호] AB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3] 구 오정신용협동조합[P] ABCDEFGHIJKL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14] 원래는 롯데시네마가 운영했는데 CGV로 바뀌었다.[15] 버스 노선은 동구 중심지답지 않게 512, 514, 608, 618밖에 없으며 이 네노선 전부다 배차간격이 15분이상으로 상당히 규모에 비해 불편한 편인듯 하나, 가오동의 중심이 되는 홈플러스 사거리 기준으로 5분 정도만 걸어내려와도 511을 탈 수 있고 조금 더 걸으면(이곳은 가오지구 소속이지만 이미 대성동이기는 하다) 급행 2번을 탈 수 있다.[16] 단 같은해 지방선거 대전시장 선거에서는 이장우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물론 동구 최저 득표율이긴 하지만.[17] 대전여자고등학교는 대전에서 성적과 대학진학률이 낮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특히 성적은 2014년 졸업생까지는 인문계고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이유를 보면, 지금은 덜하지만 2009~2010년도 까지만 해도 대전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소득을 보면 저소득층으로 불리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이 대전여고 전교생의 50% 이상으로 나올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던 동네이기 때문이다. 인문계(일반계)고의 극빈자가 전교생의 50% 수준이라면 다들 놀라는 수준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워낙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많았었다. 교사들이 기초생활수급자 학비 지원 신청서를 교실에서 대놓고 뿌려도 학생들이 신경 쓰지도 않았을 정도다. 이는 대전여고뿐 아니라 인근의 다른 초중고 역시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대동도 그렇고 대동 주변 동네도 그렇고 워낙에 가난한 저소득층들이 워낙 많이 살았기 때문.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생긴 관계로 이렇게 가난한 학생들이 많지는 않다.[18] 과거에는 우송공업대도 있었다. 2009년에 같은 우송재단의 전문대학인 우송정보대와 통합하여 우송정보대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동캠에 있던 우송대학교가 서캠퍼스로 내려오고 서캠이었던 우송정보대가 동캠으로 올라가면서 우송대학교 서캠퍼스로 변했다.[19] '여자고등학교'라 불리지만 인문계가 아닌 특성화고(전문계)이다. 중구 신일여고 또한 전문계 여자고등학교이면서 인문계처럼 여고라는 교명을 쓰고 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관계로 교명을 바꿨다고 한다. 이래서 대성이나 신일이나 어린 학생들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인문계 여고로 착각하는 경우도 흔히 보인다.[20] 참고로 우암사적공원과 대전보건대는 불과 몇백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21] 사실 가양동에서 넘어오는 인도가 있는 쪽 담장 너머로도 보인다.[22] 과거에는 대전탑이라는 건축물이 교차로 중심에 로터리 형태로 있어서 대전탑로터리라고도 불리었다. 1970년 한진건설(현 한진중공업)이 지어서 대전시에 기증한 이 건축물은 도로확장과 교통량 증가 등의 문제로 1990년 철거되고 양 옆에 있던 동상은 대전톨게이트 입구에 옮겨졌다. 대전탑이 있을때 교차로의 모습. 현재 모습 (길 옆에 작게 만듦.)[23] 중구 대사동 보문맨션 아파트도 거의 대전에서 처음 생긴 아파트라는데 언제 준공되었는지 정보가 없다.[24] 부자들이 입주하니까 부자의 자식들이 근처에 있던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잘 했다 카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그 중학교 이름 앞에 대(大)를 붙여서 부르고 다니곤 했다.[25] 현 우송대 서캠퍼스 국제교육센터[26][27] 대전 가양동은 佳(아름다울 가)를 쓰고 서울 가양동은 加(더할 가)를 쓴다.[28] 그리고 이마트 옆에는 홈플러스[29] 특히 주말에 가 보면 레알 헬게이트를 볼 수 있다. 경찰이 항시 나와 교통정리를 해도 답이 안 나온다.[30] 건물이 5층이라면, 지하에 노래방, 1층 식당, 2층 룸싸롱, 3층 이발소, 4층 안마방, 5층 전화방 단위면적당 유흥업소 밀집율은 안양 인덕원과 선릉역 주변을 바르고도 남을 정도.[31] 구 성남2동 내 일부 지역은 2016년 초까지 도시가스도 놓이지 않았다.[32] 삼성초등학교 학교 건물이다. 개교년이 1911년이므로 100년이 넘었다.[33] 실질적인 성장은 서구가수원동에서 했다. 현재 본가도 가수원동에 있다.[34] 배우 김학철의 둘째 형으로 제8대 대덕구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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