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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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평안남도에 위치한 도시.
2. 상세[편집]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237,133명이라 적지 않지만 일단 평안남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시이다. 물론 모두 20만명 정도 선이라 서로 비슷하다. 광복 당시에는 덕천군이었고 6개 면 59개 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면적은 1,039km²였다.
도시 최대 산업은 탄광업으로 한반도 최대 규모의 탄전지대인 평남북부탄전 한가운데 있어 무연탄 채굴이 활발하다. 슬레이트와 석회석 역시 많이 난다.
또한, 북한 최대의 자동차 공장인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가 이 곳에 위치해있어 북한의 자동차 생산량 절반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인근에 '덕천공업대학'이라는 공장학교를 건립하여, 승리자동차공장을 비롯하여 덕천시와 주변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관리일꾼들을 대상으로 기술과 관리업무를 교육시키고 있다. 또한, 덕천견직공장이 있어 예로부터 이름난 '덕천향라(견직물의 일종)'를 생산하고 있으며, 대동강변에는 '대동강 발전소'라는 이름의 댐식 수력발전소가 건립되어있다.
3. 역사[편집]
고구려의 영토였다. 고구려 멸망 이후 통일신라와 발해의 변경지대로 방치되었다가 고려 태조 대에 북진정책으로 수복하였다. 947년(정종 2년)에 덕성진(德城鎭)을 설치하였고, 그 후 이 일대를 요원군(遼原郡) 또는 장덕진(長德鎭)이라 부르다가 1001년(목종 4년) 덕주(德州)로 개칭되었다. 1413년(태종 13년)에 덕주를 '덕천(德川)'으로 고쳐 평안도 덕천군이 되었다. 덕천군으로 고친 직후 맹산현(孟山縣)과 통폐합해 잠시 덕맹현(德孟縣)으로 격하되었으나 1415년에 덕천군으로 원복되었다.
1896년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평안남도 덕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내면(郡內面)과 무릉면(武陵面)을 병합해 군무면(郡武面)을 신설하였다. 1917년 태극내면(太極內面)과 태극외면(太極外面)을 합쳐 태극면(太極面)으로 하고 군무면을 덕천면으로 개칭하였다. 1935년 덕안면(德安面)이 폐지되어 덕천면과 일하면으로 분할편입되었고 태극면이 영원군으로 이관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6.25 전쟁 당시 김일성이 평양을 버리고 임시수도 강계시로 도망칠 때 이 곳에 잠시 머물렀으며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 남부 잠도면과 잠상면이 북창군으로 분리되면서 떨어져나갔다. 이후 1987년 시로 승격되었다.
지난 2017년 4월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에 실패해 이 도시가 큰 피해를 입었다(...)#
4. 교통[편집]
교통면에서는 평덕선이 지난다. 덕천역(평덕선)이 시의 중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