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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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교구에 대한 내용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서 참고하십시오.
성공회 서울교구(聖公會 서울敎區, Diocese of Seoul)는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경기도 전역과 강원특별자치도 북부를 관할하는 성공회 교구이다.
서울교구는 한국관구 소속 3개 교구 가운데 교세가 가장 강하다. 또한 공교롭게도 관구가 가맹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역대 대표회장 중 성공회 출신은 모두 서울교구에서 나왔다.[12] 대전교구와 더불어 한국 성공회의 모체라 할 수 있다.
||▲ 서울교구의 주교좌성당인 서울대성당
1. 개요[편집]
성공회 서울교구(聖公會 서울敎區, Diocese of Seoul)는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경기도 전역과 강원특별자치도 북부를 관할하는 성공회 교구이다.
2. 상세[편집]
서울교구는 한국관구 소속 3개 교구 가운데 교세가 가장 강하다. 또한 공교롭게도 관구가 가맹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역대 대표회장 중 성공회 출신은 모두 서울교구에서 나왔다.[12] 대전교구와 더불어 한국 성공회의 모체라 할 수 있다.
3. 역대 교구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성공회 서울교구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역사[편집]
4.1. 1890년 ~ 1965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성공회 조선-한국교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1965년 ~ 2000년[편집]
1965년 5월 27일, 서울대성당에서 이천환 바우로 신부[13] 가 존 데일리 주교를 주 집전자, 대만교구장 왕장영(王長齡) 야고보 주교[14] , 싱가포르교구장 케네스 샌즈버리(Kenneth Sansbury) 주교[15] 를 각각 부집전자로 하여 주교품을 받았다.[16] 그리고 그날 저녁만도에서 캔터베리 대주교의 교구설립승인서를 낭독한 후 존 데일리 주교가 주교좌를 이천환 바우로 주교에게 넘겨주고 이천환 주교가 승좌함으로서 서울교구가 설립되었다. 또한 서울교구의 설립과 함께 대전교구가 설립됨으로서 구성된 전국의회에서 서울교구장이 당연직 의장이 되었고, 이와 더불어 한국의 모든 교구의 교구장 중 우선권을 가지게 되었다.
서울교구는 설립 당시 10명의 사제[상세] 와 7개 전도구, 4130명의 세례신자로 출발했다. 그리고 교구 설립 당시 결정된 5년이내 자립과 성직자의 노화는 교구의 큰 문제였다.
1968년 11월에 열린 제2회 전국의회에서는 서울교구장의 의장(당연직)자리를 놓고 신임 대전교구장인 리차드 럿트 주교의 이의로 인해 두 교구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970년 4월에 열린 제6차 서울교구 의회에서는 교무국 설치안이 통과되었다.
1973년 8월, 1898년부터 75년간 천여 명을 돌본 성 피득 보육원이 폐쇄되었다.
1973년 9월, '교구행정에 관한 주교지침'이 발표되어 교무국의 권한과 그 기능이 규정되었다. 교무국은 이미 1970년 4월 설치된 바 있으나, 실무기구로서의 목적과는 달리 단순 자문기구에 그침으로서 그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중단상태에 이르게 되고, 일이 이렇게 되자 교구장 이천환 주교는 교구장의 권한을 교무국에 일부 내어주며[17] '교구행정에 있어 주교 한 사람이 결정하는 시대는 끝났으며, 이제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참여해야 할 것'이라며 일신된 교무국의 첫 국장[18] 으로 평신도인 이두성 윌리암을 임명하였다.
1974년 12월, 유신정권에 맞서 서울교구 성직자단이 서울대성당에서 '인권과 양심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아울러 '성직자의 신앙과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의 선언문 또한 발표했다.
1976년 2월, 교구장 이천환 바우로 주교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83년 11월 7일, 교구장 이천환 바우로 주교가 사임한다.[19] 같은 달 29일 참사대리로 박종기 스테반 신부가 선출되어 교구장직을 대리하게 된다.
1984년 5월 31일, 제2대 교구장으로 김성수 시몬 주교가 승좌한다.
1986년 10월, 도봉구 상계동[20] 에 첫 나눔의 집을 설립한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개헌국민대회가 서울대성당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 날 저녁 만도 종소리로 6.10 민주 항쟁의 막이 오른다. 동년 11월, 경찰이 서울대성당에 난입 및 파괴하여 10일부터 사제단이 일주일간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전국의 모든 성당에서 기도가 올려졌고, 특히 단식기간 중이었던 12일은 미사가 조도(朝禱)로 대체되었다.
1992년 9월 29일,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캔터베리관구 산하 서울, 대전, 부산교구 등 3개교구의 독립관구 설립을 윤허받았다.
1993년 4월 16일, 서울, 대전, 부산교구가 한국관구로 승격하며 동시에 본 교구장인 김성수 시몬 주교가 초대 관구장 대주교로 승품된다.
1995년 6월, 교구장 김성수 시몬 주교가 사임하고, 같은 해 11월, 제3대 교구장으로 정철범 마태 주교가 승좌한다.
4.3. 2000년 ~[편집]
2005년 4월, 후임 교구장으로 박경조 프란시스 신부가 선임되어 서울교구 부주교로 서품된다.
2005년 11월, 교구장 정철범 마태 주교가 퇴임하고, 제4대 교구장으로 박경조 프란시스 주교가 승좌한다.
2008년 5월, 후임 교구장으로 김근상 바우로 신부가 선임되어 서울교구 부주교로 서품된다.
2009년 1월, 교구장 박경조 프란시스 주교가 퇴임하고, 제5대 교구장으로 김근상 바우로 주교가 승좌한다.
2015년 10월, 관구장 겸 교구장 김근상 바우로 주교의 집전으로 선교 125주년 기념 감사성찬례가 서울대성당에서 봉헌된다.
2016년 11월, 후임 교구장으로 이경호 베드로 신부가 선임되었다.
2017년 2월, 교구장 김근상 바우로 주교의 비리문제가 불거졌다. 23일에는 교구 성직자원 명의의 교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까지 발표되었고, 이에 3월 1일자로 발표한 교구장 사목서신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에서 사임의사를 밝혔다.[21]
2017년 4월, 교구장 김근상 바우로 주교가 퇴임하고, 제6대 교구장으로 이경호 베드로 주교가 승좌하였다.
2018년 7월, 본 교구의 은퇴주교인 김근상 바우로 주교가 돌연 기독교방송 이사장에 선임되어 취임한다. 이 취임을 놓고 기독교방송 노조는 그의 비리문제를, 관구에서는 관구 법규를 들어 반대의사를 내비쳤고, 결국 그 이듬해 5월 퇴임한다.
2024년 4월 13일,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임시교구의회에서 후임교구장으로 현 대학로성당 관할사제인 김장환 엘리야 신부가 선임되었다.
5. 교구 조직[편집]
5.1. 교무국[편집]
5.2. 선교교육국[편집]
5.3. 사회선교국[편집]
6. 관할구역[편집]
6.1. 주교좌교무구[22][편집]
6.2. 중앙교무구[편집]
6.3. 강남교무구[편집]
6.4. 서부교무구[편집]
6.5. 남부교무구[편집]
6.6. 강화교무구[편집]
6.7. 소개[편집]
각 교회마다 분위기나 성향은 다양하나 서울과 가까울수록 광교회적인 성향이 강하다. 전례는 감사성찬례 문서 참조. 현행 전례에 옛 앵글로-가톨릭적인 흔적이 남아 있다[24] . 몇 군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한국에서 가장 크고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활동이 있는 곳은 단연 서울주교좌대성당이다. 주일을 포함하여 매일 성공회 기도서에 따른 감사성찬례를 거행하며, 연령별 및 성별 소모임, 복사단, 성가대 같은 모임도 대단히 활성화되어 있고, 다양한 강연과 행사가 진행된다. 2016년 5월과 10월 전례 연구의 차원에서 1965년판 공도문에 따른 감사성찬례가 봉헌된 바 있다.
- 성공회 기도서에 따른 감사성찬례를 원하지만 서울주교좌성당은 너무 멀다면 수원교회도 좋은 옵션이 될 수 있다. 인구가 많은 도시에 위치한 만큼 감사성찬례 횟수도 많고, 모임도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 강화읍성당은 성당이 사적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제대와 세례대도 등록문화재이기 때문에 성당과 제대를 함부로 고칠 수가 없어서 여전히 전례적 동쪽(Ad Orientem) 방향으로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단, 감사성찬례는 최신판 성공회 기도서에 따른다.
- 찬양예배 및 중보기도와 같이 비성공회 개신교와 비슷한 요소가 비교적 많이 있는 교회로는 광명교회[25] , 분당교회[26] , 오산세마대교회[27] , 항동교회[28] 등이 있다. 특별히 오산세마대교회는 격주로 전통 감사성찬례와 찬양예배를 번갈아가며 봉헌하고 있다.
- 대한성공회와 또 다른 분위기인 영국성공회의 교회음악을 경험하고 싶다면 강남교회[29] 를 가보면 된다. 영국 튜더 왕조 시대의 앤섬(Anthem)이나 다양한 곡조의 앵글리칸 찬트(Anglican Chant) 그리고 대한성공회에서는 유일하게 전례력에 따른 그레고리오 성가 형식의 부속가(Sequence)를 복음서 낭독 전 층계송으로 부른다.
- 정의와 평화의 사명을 강조하여 진보적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교회를 찾고 싶다면 교회명에 '나눔'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곳을 찾으면 쉽다. 또한 파주 교하씨앗교회[30] 나 희년교회[31] , 평화통일 운동 사역에 앞장서는 동두천 나눔교회[32] , 성소수자 사목으로 유명한 길찾는교회[33] 를 찾을 수 있다.
- 동탄교회는 공동체가 복음주의 성향이 강하다. 관할사제가 미사 중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7. 여담[편집]
-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성당 주임사제였던 윤달용 모이서 신부가 북한 조선인민군에 의해 순교했다. 피란을 가지 않고 남아있다 북한 점령군의 교회에 대한 횡포에 항의한 것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한다.[34]
- 2004년 서울교구 최초[35] 의 여성 사제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김기리 미리암 신부. 그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김문환[36] 교수의 1남 1녀 중 둘째로, 어려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에 다녔으나 성공회로 옮겨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서품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오랫동안 인내하고 싸운 끝에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37]
- 2020년 2월에서 5월 사이에 코로나19 감염방지를 위해 한동안 서울교구 모든 성당이 문을 닫았었다. 몇 달 뒤 8월 18일에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일일 감염자가 200명을 넘어서인 듯하다.
8. 합의사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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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 북한선교교구장 겸직[1] 제17·18대 세계성공회 한국관구장 주교[2] 관구헌장 제3절 '교구장 대리'(제77조~제80조)에 근거한 직책. 천주교의 '교구 총대리'에 해당하는 직위이나, 그보다는 권한이 적다. 관습상 '교구 총사제'라고도 하며, 교구 성직자원 의장이 겸직한다.[3] 평택성당 관할사제 겸직[4] 춘천시, 강릉시, 속초시, 철원군, 화천군, 인제군, 양구군, 고성군, 양양군, 홍천군, 횡성군[5] 교구장 주교 1명(이경호 베드로), 은퇴주교 4명(김성수 시몬, 정철범 마태, 박경조 프란시스, 김근상 바우로)[6] 사실상 6명. 주교좌교무구를 책임지는 서울대성당 주임사제가 있기 때문이다.[7] 총사제 포함[8] 교적상의 교구민이다. (교구의회 보고, 2023년)[9] 교구 홈페이지[10] 교구 유튜브[11] 사실상 대성당만을 위한 특수교무구이다.[12] 참고로 초대 서울교구장인 이천환 바우로 주교부터 현임 교구장 이경호 베드로 주교까지 모든 교구장 주교가 대표회장을 역임했다.[13] 사제로서의 마지막 임지는 수동성당 관할.[14] (1900~1970), 초대 사바교구장, 초대 대만교구장 역임.[15] (1905~1993), 제6대 싱가포르교구장 역임.[16] 이들 주교 외에도 아서 차드웰 주교(한국교구 보좌주교, 1963년 은퇴), 홍콩교구장 로널드 홀(Ronald Hall, 何明華) 주교, 쿠칭교구장 니컬러스 앨런비(Nicholas Allenby) 주교 등이 참석하였다.[상세] 한인 9명, 외인 1명(리차드 럿트).[17] 내어준 권한 중 무려 '인사권'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18] 제3대[19] 동년 1월 10일에 이미 사임의사를 밝힌 바 있다.[20] 1988년 노원구가 신설되며 노원구로 이관된다.[21] 다만, 즉각적인 퇴임은 아니고, 후임 교구장으로 선출된 이경호 베드로 신부의 주교서품일로 예정된 4월 24일에 교구장 승좌식까지 거행함으로서 퇴임시기를 앞당긴 것 뿐이었다.[22] 사실상 대성당만을 위한 특수교무구이다.[주교좌] 주교좌성당은 명목상 관할사제가 교구장이나, 실질적으로 주임사제가 그 업무를 모두 대리함[종신부제] 종신부제임[협동사제] 서울대성당 협동사제 신분으로 외국인교회 담당[협동] A B C D E F 협동사제임[나눔의집] A B C D E F G H I [원장] A B C D E F G 원장사제임[관리] A B C 관리사제임[부제] A B [23] 미얀마 출신[촉탁] [24] 1939년판 공도문이나 1965년판 공도문 등 옛 방식에 따라 봉헌하는 감사성찬례에서 원래 대한성공회의 고교회 풍모를 확인할 수 있지만 전례연구 차원에서 아주 드물게 봉헌된다. 대한성공회는 19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예비미사가 끝나면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퇴장해야 할 정도로 천주교의 트리엔트 미사와 같이 보수적이었으나 현재는 기존 공도문에 따른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교회는 사실상 없다.[25] 광명시 아방리 2길 10[26]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 255 티에스로드2 빌딩 7층[27] 오산시 세남로 14번길 25. 지도에는 '제자교회'라고 나온다[28] 서울시 구로구 항동로2길 9[29]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42길 34[30] 파주시 노을빛로 109동 14호[31]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93. 대학로교회 성당을 함께 사용한다.[32] 동두천시 광암로 6번길 46[33]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한강대로76길 11-44.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성당을 함께 사용한다.[34] 그는 전쟁 직전 천주교로 교단을 옮길 뜻을 밝히고 이를 준비 중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35] 한국 성공회 전체에서는 5번째 여성 사제이며, 최초의 여성 사제는 부산교구 민병옥 카타리나 신부.[36] 1988 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 잡고의 작사자.[37] 김기리 신부는 기혼이며 남편 또한 성공회 사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