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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알 말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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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라크의 제74대 총리이자, 제7·10대 부통령이다.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1950년 6월 20일 카르발라 근처의 자나자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무함마드 하산 아비 알마하신은 이라크 왕국에서 벌어진 1920년 이라크 혁명 당시 활동했던 시인이자 정치인으로 유명했다.[1]
1979년 7월 16일 불법정당인 이슬람다와당의 소속임을 들켜 요르단을 통해 시리아로 망명했고, 이후 1982년 이란 테헤란으로 옮겨가 1990년까지 이 곳에서 지냈다. 1990년 이란을 떠나 다시 시리아로 돌아왔고, 다마스커스에서 당 신문 편집자로 일하면서 다와당 다마스커스 지부장이된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4월에 조국으로 돌아왔고 이라크 임시 정부의 부지도자로 올라서게 되고 제헌위원회 위원으로 새 헌법을 출범하는 데 일조한다.
2.2. 총리 시절[편집]
2005년 12월 총선에서 승리한 이라크 국민연맹이 이브라힘 알 자파리가 전후 첫 총리로 임명되었으나, 리더쉽에 대해 비판을 받으며 총리직을 내려놨고, 이후 2006년 4월 22일 미국이 선거에 개입하면서 CIA가 새 총리를 물색하던 중 알 말리키가 이란의 영향을 덜 받는 인물로 떠올랐고 새 총리로 임명된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와는 달리 알 말리키는 이란의 쿠드스부대 지휘관인 가셈 솔레이마니가 선호하던 인물이였고, 시아파와 쿠르드 지도자와 합의를 주도하면서까지 밀어준 인물이였다.
총리가 된 이후, 알 말리키는 반란자들을 벌할 것을 맹세했다.
2010년 12월 22일 의회의 만장일치로 2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2011년 2월 5일에는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더 이상 출마하지 않을 것을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반수니파 정책을 시행하면서 수니파였던 경제부장관의 집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에 대해 반발해 약 1년간 벌여진 수니파 시위를 무자비하게 짓눌렀다.[2] 결국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테러집단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충돌을 피할 수 없었고, 알 말리키 정부 당시 이름만 올려 월급은 받지만 실제로 복무는 안하는 일명 유령군인들이 증가했었던 당시 부패한 상황에서 결국 전쟁에서 밀리게 된다. 2014년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마저 빼앗기게 된다. 결국 푸아드 마숨 대통령이 하이다르 알 아바디를 새 총리로 임명했고, 이에 반발했으나 결국 당내부와 국제사회의 요구에 총리직을 내려놨다.
2.3. 이후 행보[편집]
총리직을 내려놓은 이후, 상징적인 지위인 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1] 이후 이라크 왕국의 교육부장관이 되었다.[2] 이는 향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성장을 부추겼다고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