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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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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대한민국군인.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행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수록되었다.


2. 생애[편집]


1910년 태어났다. 1937년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간도특설대의 기박련[1] 연장(連長)으로 근무했다.

1944년 2월 열하성 유수림자 일대에서 팔로군을 토벌하면서 그가 속한 부대가 행한 잔인한 행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마을을 수사하는 중 XX연장과 그의 통신병이 한 팔로군이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총을 쏘아 죽였다. 연장은 군도로 팔로군의 머리를 벤 후 그 머리를 유수림자에 가지고 가서 철가마에 삶아냈다. 그 연장은 팔로군의 두골(머리뼈)을 기념으로 남겨두었다.


간도특설대 복무 중 경운장 6위·5위 훈장을 수훈했다.

광복 후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제1기로 졸업하면서 육군 8번(10008)의 군번을 부여받았다. 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서 보급과장 등을 지내던 중 194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1967년에 국립서울현충원에 현충탑 내 위패 봉안실에 위패가 봉안되었으나[2] 2015년 부인이 사망하여 부부위패봉안당에 위패가 재봉안되었다.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중 유일하게 위패가 안장되어있다.



[1] 중기관총 2정, 8cm 박격포 1문이 포함된 부대[2] 안장사유는 국방경비대 복무중 순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