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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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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은 중장이다.
2. 생애[편집]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출생으로 순흥초등학교(64회), 소수중학교(25회), 대구 덕원고등학교(1회)를 졸업하였다. # 이후 1983년 육군사관학교(43기)에 입교하여, 1987년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3. 주요 직위[편집]
- 대위
- 제30기계화보병사단 작전처 작전장교
-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훈육장교
-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군사학처 학술/훈련교관
- 전역 2021년
- 법무법인 YK 형사센터 고문 #
4. 여담[편집]
- 휘하 병사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위관장교 시절부터 일처리는 FM으로 하면서 깐깐했지만, 스마트하고 젠틀하고 피지컬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저런 사람이 지휘관이면 전쟁나도 따라갈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주변 간부들 사이에서도 별은 무조건 다는데 몇 개를 다느냐가 문제라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11]
- 주위에서 보는 시선은 덕장에 가깝다. 한 예로, 35년의 군 생활을 마감하는 김정우 당시 특수전사령부 주임원사의 전역식을 기념하고자 특수전학교에서 실시하는 공수훈련에 주임원사와 동반강하하는 전우애를 발휘하여 모든 훈련 부사관들에게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 이 모습은 SBS에서 운영하는 채널 비디오머그에 업로드 되어 이례적으로 42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감사와 격려의 댓글로 화제가 되었다.
- 살갑고 편하게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향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모로 부하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장군이였다. 사단장 재임 시절 훈련시 장병들의 휴식 여건 만큼은 반드시 챙겨주도록 지시 하였으며, 사비를 들여 사단 전 병력에게 계절 과일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모 GOP 대대 순시 중 대대에 구비된 붕어빵 기계로 만든 붕어빵을 대접 받은 후 사단 내 전 GOP 대대에 장병들을 위한 붕어빵 기계 비치를 고려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부하들을 위한 지휘를 선보였다.
- 알자회 회원이 아닌데도 언론이나 웹상에서 알자회로 언급되었다. 언론상에 나온 알자회 김정수는 5년차에 전역한 다른 사람이다.[12]
- 2020년 12월 장성 인사시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이동하였다. 2021년 12월 장성 인사에서 이영철 국방정보본부장을 제외한 육사 43기 소장~중장 전원의 용퇴가 확정되면서 전역했다.
- 키가 매우 크다. 실제로 본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185cm라는 썰이 있다.
- 육영수 여사를 묘하게 닮았다.
- 스포츠맨으로 초등학생~중학생 때엔 핸드볼과 육상 선수를 했고 고등학교에선 학업에 집중해 육사에 들어왔으며 사관생도 당시엔 럭비부 운동생도였다. # [13] 럭비 훈련에 많은 시간을 쏟느라 군사학 등을 연마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위관급 장교 초기에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14] 사석에서도 자신이 럭비부에 있을 때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 할 만큼 럭비부였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중장까지는 무난하게 잘 올라왔으나 박근혜 정부 시절에 청와대 근무이력이 걸려 진급에서 미끄러졌다. 같이 중장으로 전역한 동기 중 황대일 장군은 소장과 중장을 2차에 진급했기 때문에 그나마 김정수 중장이 더 우위에 있었고 윤의철 장군은 워낙 이미지가 나빠서 대장 진급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안준석 장군과 김정수 장군 둘 중 하나가 대장 진급 가능성이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비서관을 지낸 안준석 장군이 승리한 것.
- 현재는 한밭대와 성균관대에서 초빙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다.
- 군 복무 중이던 2004년 2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군인 중에서 석사 전공이 사회복지학인 경우는 드물다[15] . 대부분 경영학, 국제학, 정책학, 정치학, 북한학 등 군과 관련이 있는 학문을 전공하기 때문이다.
- 2023년 8월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국가안보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5. 관련 문서[편집]
[1] 모 예비역 장성 초빙강연에서는 1965년으로 소개된바 있어 교차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임. 모교인 대구덕원고등학교 1회 졸업식이 1983년 2월 10일에 있었던데다 같은해 3월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른년생일 가능성도 있다.[2] 사회복지학 전공[3] 석사 학위 논문: 선택적 복지제도의 군 적용방안에 관한 연구 (2004. 02.)[4] 박사 학위 논문: 군조직에서 진성리더십이 조직효과성에 미치는 영향 : - 공정성의 매개효과와 MZㆍ기성세대의 조절효과를 중심으로 (2023. 08.)[5] 매우 독실한 신자다. #[6] 전임자 신인호, 후임자 권영호[7] 전임자 최병혁, 후임자 권영호[8] 전임자 김성일, 후임자 강인순[9] 전임자 남영신, 후임자 소영민[10] 전임자 정진경, 후임자 강창구[11] 영관급 때까지는 실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장성 진급 이후부터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12] 사실 그 시대에 김정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기는 했다. 비슷한 연배로 대한민국 육군 대장과 해군 대장 중에 동명이인이 있는데 바로 육사 1기수 선배인 김정수 육군 제2작전사령관과 같은 해에 임관한 동기급(해사 41기)인 김정수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이 있으며, 야구선수 김정수 등 동명이인이 상당히 많다.[13]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최병혁 대장 역시 키 185 이상 장신으로 생도 시절 럭비를 했다.[14] 3군사관학교 합동 체육대회에 각군 사관학교가 자존심을 걸고 목숨을 걸고 경기를 치렀기에 운동선수 생도들은 군사학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2003년 폐지되었다. #[15] 본인의 임관 3년 후배인 3사 25기 출신 장광선 장군도 석사 전공이 사회복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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