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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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전직 한국프로야구 선수이자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비운의 인물.
2. 선수 경력[편집]
전주고 - 원광대를 거쳐 1986년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한다. 첫 해는 쟁쟁한 입단 동기들에게 밀려[1]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해태 2군에 짱박혀 있었지만, 두 번째 해인 1987년 9승 5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78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OB와의 KBO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킬러로 유명한 OB 에이스 최일언과 두 차례 선발 대결을 펼쳐 모두 선발승을 따내며 해태의 KBO 한국시리즈 우승의 디딤돌이 된다.
그리고 이듬해는 후기리그 2/3을 소화한 시점(8월 27일)까지 7승 6패 3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생애 첫 10승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1988년 8월 27일 다음 경기 출전을 위해 자신의 차량으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이동 도중 천안삼거리휴게소에 진입하려다 앞에 있던 트럭과 충돌하여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향년 27세. 당시 팀의 선배였던 이순철도 조수석에 동승하고 있었지만 그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안전벨트를 맨 상태에서 토막 잠을 자고 있어서 화를 면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구단 측이 소속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음에도 유가족에게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3. 여담[편집]
- 최동원은 김대현의 죽음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주도한 계기였다고 한다.[2] 함께 운동한 선수가 세상을 떠났지만 합법적으로 도울 방법도 없었고, 예전부터 야구선수의 최저연봉 하한선 제도, 연금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색깔론보다 동정론이 우세했던 당시가 기회였다 생각했다고.
- 참고로 최동원과 선동열의 4번째 맞대결 때의 해태 선발 투수가 바로 이 선수였다.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 vs 최동원 문서 참조. 경기 당일 어깨 컨디션이 너무 안좋던 김대현이 1회 1타자만 잡고 선동열에게 넘겨준 것.
- 마구마구에는 김도현이라는 가명으로 나온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송유석이 술회하길 온갖 잡일을 다하고 타자들에게는 하루종일 배팅볼만 던지던 배팅볼 투수로 일하다가 패전처리 투수부터 등판 기회가 주어졌고 김대현의 사망으로 투수가 부족해지자 더욱 중용됐다고 한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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