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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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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룹 커맨더맨의 멤버에 대한 내용은 준형(커맨더맨)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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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의 1군 전력분석코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광주일고 시절 이대형, 김대우, 고우석, 김주호 등과 함께 활약하였고[1] , 인하대에 진학한 이후 오준형은 4년 간 7승에 그쳤으나, 졸업반인 4학년 당시 9경기에 출전해 4승을 올리는 등(방어율 0.78) 상승세를 타며 나름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되었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2.2.1. 입단[편집]
이러하여 200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정영일과 함께 KIA 타이거즈에 지명받았다.[2] 당시에는 양현종을 1차 지명에 안뽑고 왜 갑자기 오준형을 뽑냐고 술렁거리기도 했으나, 당시 계약금을 후려치려고 2005 시즌 꼴찌였던 KIA가 2차 지명권이 1번인 점을 이용해서 오준형을 1차로 뽑고 양현종을 2차 1라로 뽑은 후 계약금을 후려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로도 1차 지명인 오준형의 계약금이 1억 8천만 원인데, 2차 1라운드인 양현종은 계약금이 2억으로 오히려 더 많다.
2.2.2. 2007 시즌[편집]
6월 2일, 사직 롯데전에 구원투수로 첫 등판을 하여 1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다음날인 3일에는 2회부터 4이닝을 4안타 1실점으로 막아냈다.
6월 9일, 홈에서 열린 SK전에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여 6이닝 4피안타 1실점을 하며 데뷔 첫 승을 신고했다. 구속은 최고 144km/h의 묵직한 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를 이용하여 당시 선두를 질주하던 SK를 잡기도 했다.
10월 19일, KBO 슈퍼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2.2.3. 2008 시즌[편집]
그러나 그 이후 부상으로 계속 2군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며 KIA팬들에게 서서히 존재감이 잊혀져갔다.
2.2.4. 군 복무[편집]
경찰 야구단에 합격하여 무사히 전역하였다.
2.2.5. 2012 시즌 ~ 2013 시즌[편집]
2012 시즌에 1경기에 출장하여 2이닝을 던지며 7타자를 상대하여 1피안타를 기록한 것이 현역 시절 마지막 1군 등판기록이 되었다. 2013 시즌은 1군 등판 없이 2군에만 있다가 시즌 후, 방출된 후 팀의 원정기록원으로 합류했다.
3. 프런트 경력[편집]
김여울 기자의 트위터를 통하여 2014 시즌부터 KIA의 원정기록원으로 합류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 후 2017 시즌부터는 이상화와 함께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며 2019 시즌까지 활동했다.
2023년부터는 다시 스카우트로 활동하게 된다.
4. 지도자 경력[편집]
2020 시즌부터는 1군 전력분석코치로 합류하며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자, 구단 유튜브에서 방석호 전력분석코치와 함께 오랜만에 얼굴을 나타내며 중계를 맡았다. 대체적으로 팬들의 반응은 우리 팀에서 계속 일하는 지도 잘 몰랐는데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는 반응.
5. 여담[편집]
- 어머니가 수완지구에서 '오가네 숯불구이'라는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선수들이 수완지구에 많이 거주하고, 선수 가족이 운영하다 보니 식당 곳곳에 선수들의 싸인과 사진이 걸려있다.
6. 연도별 성적[편집]
7. 관련 문서[편집]
[1] 투수와 1루수는 김대우과 고우석이 번갈아 맡았으며, 포수 김윤권, 2루수 윤드로, 유격수 김주호, 좌익수 이창석, 중견수 이대형, 우익수 서정 등 3학년으로 라인업을 꾸렸다. 오준형은 1년 후배인 김성계와 함께 투수 대기조였으며 2학년이던 모창민은 주전 3루수였다. 2002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및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2] 이 당시는 1차 지명을 2명 지명할 수 있었다. 정영일은 그 후로 알다시피 지명을 거부하고 미국에 진출하여 KIA는 1차 지명권을 날린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