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윤씨(광해군)
덤프버전 : (♥ 0)
1. 개요[편집]
조선 광해군의 간택 후궁.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서 유일한 서출 자식을 낳았으나 인조반정이 일어나는 바람에 처형되었다.[1]
2. 가계[편집]
아버지는 능성 현령을 지낸 윤홍업(尹弘業)이며, 어머니는 창원 유씨 유필영(兪必英)의 딸이다.
가계를 살펴보면 꽤 명문가 집안인데, 윤홍업의 할머니 조씨는 중종의 딸 효정옹주의 시누이이고 이모 강씨는 효정옹주의 맏며느리이며, 동생 윤홍달은 윤두수의 조카인 윤환의 사위이다.
귀인 윤씨의 여동생은 광해군비 문성군부인 류씨의 조카인 류영립(柳英立)에게 시집갔고, 오빠 윤현(尹玹)의 아내는 인조의 동생인 능원대군의 처외사촌이다.
3. 생애[편집]
1617년(광해군 9년) 후궁 간택에서 홍매의 딸과 함께 선발되어 숙의(淑儀)에 봉작되었고, 이듬해 소의(昭儀)로 품계가 올랐다. 이후 귀인(貴人)으로 한 단계 더 승격되었다.[A][2]
1619년(광해군 11년) 4월 8일 산실(産室)을 설치하라는 기록이 있어 이때 임신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해 6월 23일에 옹주를 낳았다.[3]
그러나 1623년(인조 1년) 3월 13일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귀인 윤씨는 음행(淫行)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군문(軍門) 밖에서 사형에 처해졌다.[4]
4. 여담[편집]
- 《춘파일월록》에 따르면, 김개시가 정몽필을 매우 사랑하여 양아들로 삼았는데 귀인 윤씨를 중매하여 정몽필과 음행하게 하였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귀인 윤씨가 낳은 딸은 나이 5세였다. 아버지가 폐주였으므로 옹주로 봉작받을 수 없었고, 외삼촌의 집에서 자라다가 박징원의 처가 되었다. 혼인할 때는 인조가 혼수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5]
- 보쌈-운명을 훔치다에서 소희정이 귀인 윤씨 역을 맡아 연기했다. 드라마 상에서는 딸인 왕녀가 다 자란 성인으로 나오며 화인옹주라고 불렸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20 19:35:41에 나무위키 귀인 윤씨(광해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출처] 서치상. (2020). 광해·인조 연간의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 상량문 연구. 건축역사연구, 29(1), 65-76.[1] 광해군의 후궁들 중 자식을 낳은 경우도 그 자식이 성년까지 성장한 경우도 전부 귀인 윤씨의 딸뿐이고 광해군의 후손들은 전부 이 딸이 낳은 후손들이다.[A] 서치상. (2020). 광해·인조 연간의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 상량문 연구. 건축역사연구, 29(1), 65-76.[2] 정확한 진급 시기는 미상이나 1622년(광해군 14년)에 귀인으로 칭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그 이전에 귀인에 봉작된 것으로 보인다.[3] 현재 경상북도 울진군 나곡리에 있는 광해군 왕녀 태실비로 확인 가능하다.[4] 다만, 《계해정사록》에서는 4월 9일에 처형하였다고 썼고, 《연려실기술》에서는 사약을 받았다고 썼다. [5] 인조실록 44권, 인조 21년 4월 18일 신사 1번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