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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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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山南)
본관안동 권씨
출생1885년 8월 12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달서면 내당동
(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사망1947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상훈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권영해는 1885년 8월 12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달서면 내당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경북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 소재한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3.1 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이상백·이내성 등과 함께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약속한 3월 12일이 되자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동민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불을 붙였으며 오후 8시에는 뒷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그 후 다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한 그는 3월 14일 오후 9시경에 2백 명의 동민과 더불어 뒷산에서 다시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 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제 형사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8.15 광복 후 서울에서 조용히 살았고 1947년 6월 2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영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