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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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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중국의 6개 국유대형상업은행 중 하나로, 중화민국 시대에는 4대은행의 범주에 속하였고 현재는 5번째로 거대한 은행이다. 중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현대은행이기도 하다.
2. 역사[편집]
청나라 광서제의 명령으로 설립되었는데, 당시부터 교통은행이었다. 교통은행이 딱히 교통과 관련있는 사업도 하는 것이 아님에도 교통은행인 이유는 당시 교통은행을 설립한 기관인 우전부(邮传部)가 우정사업 및 철도교통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북양정부 때는 교통은행의 행장으로 량스이(梁士诒)를 임명했다. 그러나 량스이는 홍헌제제를 지지한 사람이었고, 그 이유로 리위안훙이 량스이를 체포하려고 하자 해외로 도피하게 된다. 량스이가 물러난 이후 선출된 행장인 차오루린(曹汝霖)은 일본 제국이 중화민국 정부와의 합의하에 세운 대부업체인 니시하라 샷칸(西原借款)과 협업하여 만주에 엄청난 출자를 하였다. 이후의 교통은행 행장인 장쉰(张勋)은 청나라의 부활을 위해 해당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려서 군대를 조직해 베이핑시로 진군시키지만 실패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교통은행은 상하이의 건물을 매입하였으나 본사를 옮기지는 않았다. 2차 직봉전쟁 당시 북양군벌이 교통은행을 몰수하자 량스이가 다시 교통은행에 복귀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장제스가 주도한 국민혁명으로 인해 다시 중화민국이 교통은행을 점거하면서 량스이는 재수배당한다.
1928년, 중화민국 입법원은 교통은행조례(交通銀行條例)를 통과시켜 본격적으로 국유화를 하고 이 때부터 본사가 상하이로 옮겨진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중화민국은 교통은행의 일부 물적, 인적 자산을 대만으로 이전 후 1960년 영업을 재개하다 2003년 국민당 소유의 중국은행과 합병하여 조풍은행(兆豊銀行, Mega International Commercial Bank)이 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중앙인민정부 재정부 산하 국영기업이 되었고, 1958년에 본토 은행이 중국인민건설은행과 합병되고 홍콩 사업자만 살아남는다. 해당 은행이 다시 본토에 설립된 시기는 1986년 7월 24일로, 당시 개혁개방 기조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이 재설립을 승인하였고 이듬해 4월 1일에 본격적으로 재개업한다.
이후 2005년 6월 23일에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고, 2007년 5월 15일에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된다.
2014년 7월 4일 중국인민은행에 의해 대한민국을 담당하는 위안화 청산결제은행으로 지정되었다.[1]#
3. 대한민국 지점[편집]
대한민국에는 2005년에 개업하였고, 2014년에 위안화 청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여담으로, 한국 지점은 서울지점 딱 1개소 뿐인데 사이트는 웬만한 대한민국 대형은행급으로 잘 갖춰져있다. 실제로 보면 기타 중국의 은행들의 한국 지점은 한국에 거주중인 중국인을 대상으로 짜여져 있고, 한국인 계좌개설도 잘 해주지 않는데, 교통은행은 대놓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시도중이다.
[1] 위안화 청산결제은행(RMB Clearing & Settlement Bank)은 자본시장 개방이 제한된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확대한 정책으로 해외에서 위안화 결제대금의 청산·결제를 담당하는 인민은행의 역외지점 역할을 하여 1개 국가 당 1개의 중국계은행이 지정된다. 미국의 경우 중국공상은행, 일본의 경우 중국은행이 위안화 청산결제은행이다.